맛있지도 않은데, 설에 왜 나이를 ‘먹을까’?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한국인은 나이도, 욕도, 겁도 먹는다고 해 시간을 몸속에 내재화...’나잇살’ 뜻 새겨야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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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설 연휴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는 노래에 이런 것이 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왜 설 전날은 ‘까치 설날’이라고 할까?

‘설’은 새해의 첫날을 일컫는 말이지만, 본래는 ‘한 해’(年)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모음만 교체된 ‘살’이라는 말을 파생시켰는데 이는 잘 알다시피 나이를 세는 단위이다. 즉 ‘설’이 지나면 먹는 나이라는 뜻이다. 즉 한 ‘살’을 먹었다는 말은 ‘설’을 맞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이지만 모음의 교체로 작은 의미 차이를 전하는 단어들의 쌍이 많이 있다.

모음만 교체한 단어쌍

짐승의 수를 셀 때 쓰는 ‘마리’도 본래 ‘머리’를 뜻한다. 세 ‘머리’는 세 ‘마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인(人)당’의 의미로 ‘두(頭)당’이라는 말을 쓰듯이 머리의 수로 개체수를 세는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할 때의 ‘실마리’도 바늘에 꿰어야 할 ‘실머리’에서 온 것이다. 실머리를 꿰면 실 전체를 꿸 수 있는 것과 같이 실마리를 찾으면 사건 전체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풍미에 대해 말할 때도 음식의 경우에는 그것이 ‘맛’(味)이 있다고 하는 반면, 옷이나 차림새의 경우에는 ‘멋’이라고 한다. 또 물건이 오래되면 ‘낡다’라고 하는 반면, 사람이 오래되면 ‘늙다’라고 한다. (크기, 부피가) ‘작다’와 (수량이) ‘적다’도 같은 어원이다.

‘맑다’와 ‘묽다’, ‘밝다’와 ‘붉다’도 동일한 의미에서 출발한 단어쌍이다. 또한 ‘야위다’-‘여위다’, ‘고소하다’-‘구수하다’, ‘아장아장’-‘어정어정’-‘방글방글’-‘벙글벙글’, ‘살살’-‘슬슬’ 같은 수많은 음성상징어의 음상(音相), 즉 한 단어 안에 표현 가치가 다른 모음이나 자음이 교체됨으로써 어감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현상도 여기에 속한다.

나이의 단위인 ‘살’에서 우리는 동서양의 시간관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나이 개념은 서양의 만(滿) 나이와 다른데, 이는 시간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서양인에게 ‘나이’란 인간이 탄생한 후 지난 시간을 말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현상을 해석함에 있어, 인간을 주체로 보고 시간은 객체로 본다. 그래서 영어에서 나이를 물을 때 쓰는 ‘How old are you?’(너는 얼마나 늙었느냐?)는 ‘태어난 이후 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냐?’를 뜻한다. 그러다 보니, 이에 대한 대답으로 ‘25년 3개월’과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영어 원어민이 나이를 개월 수까지 표현하는 것을 알았을 때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마 독자들도 그러하리라.

까치 설날, 섣달은 시간 개념에서

서양에서는 시간이 단지 과거에서 와서 미래로 가는 단일방향의 지속이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시간이 그 같은 단일 방향의 지속이 아니다. 시간은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라는 네 개의 단위가 나타내는 여덟 글자, 즉 사주팔자(四柱八字)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은 10간과 12지의 결합으로 60갑자(甲子)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의 시간관처럼 ‘지속’일 때는 모든 시간이 동질적이다. 똑같은 시간이 계속 흘러갈 뿐이므로, 그 가운데에 특별한 날이 있을 수가 없다. 앞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10년 3개월이 지났으면 나이는 10살 3개월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의 시간관처럼 단위를 이루는 시간에는, 모든 시간이 동질적이지 않다. 단위에는 시작과 끝과 같이 경계를 이루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앞선 단위가 끝나고 새로운 단위가 시작하는 경계에 있는 시간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래서 ‘설’이라는 말은 한 해(年) 중에서도 해가 시작하는 날을 뜻하는 말(‘설날’)로도 쓰이고, 한 해가 끝나는 날을 뜻하는 말(‘까치 설날’)로도 쓰있다. 이때 ‘까치 설날’은 과거에 ‘아찬 설’이라고 했는데, 이는 작다는 뜻의 ‘앛’에 접미사 ‘안’이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다 ‘아찬 설’에서 본래의 ‘작은’이라는 관념이 잊혀지면서 ‘아찬’과 발음이 유사한 ‘까치’와 결부되면서, 다시 말해 이것이 ‘까치’에서 온 말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되면서 ‘까치 설’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른바 민간어원설이다.

한편 일년의 맨 마지막 달을 ‘섣달’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작은 설’이 들어 있는 달이라는 뜻의 ‘설+달’로부터 기원했기 때문이다.

‘설날’과 ‘까치 설날’(작은 설날)이라는 단어들의 존재는 이러한 개념들이 우리에게 중요했음을 알려 주는데, 실제로 예전에는 ‘묵은 세배’라 하여 섣달 그믐날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로 가족과 친지 등 윗사람이나 조상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인사를 드림으로써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작은설’(까치설)의 풍습이다. 그만큼 한 단위에서 다른 단위로 넘어갈 때는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한 해의 첫날은 새로운 단위가 시작하는 날이니 만큼 당연히 정신을 가다듬고 세배도 드리고 떡국도 먹으면서 성대히 보내야 한다.

나이는 왜 ‘먹는다’는 단어와 조응했을까

그렇다면 한국인의 사고에 서양인에게서처럼 개인이 주체가 되어 체험하는 지속의 시간 개념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그것은 지속의 개념일 뿐 아니라 나아가 나이를 우리 몸 안에 내재화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재화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표현이 입증한다. 어떻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한국어에만 있는 이 독특한 표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추상적인 행위나 활동은 본래 개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보다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경험, 예컨대 신체경험 같은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화 방식 자체는 모든 언어에 다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가운데 특히 먹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행하는 원초적인 행위이다. 이처럼 한국어에는 음식물이 아님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체물도 아닌 추상적 대상인데도 먹는다고 하는 독특한 표현들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할 뿐 아니라, 마음도 ‘먹고’. 또 욕도 ‘먹는다’. 심지어 겁도 ‘먹는다’. 왜 그럴까?

마음을 먹는다면 토해내기가 어려워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다는 추상적인 행위를 비유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나타내준다. 또 남이 나에게 욕하는 것을 단순히 ‘듣는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먹는다’고 하면 고막을 두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못 먹을 것을 입을 통해 내 몸에 들여 오는 것이니 분노의 느낌이 더욱 생생하다. 겁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로 공포의 심리가 체화되는 것이니 말을 할 수가 없는 그 상황이 더욱 실감난다.

그렇다면 나이는 왜 먹는 행위로 표현할까?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가 내 몸에 들어앉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일까? 세월이 내 몸 안에 내재화되는 것을 ‘나잇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는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찌는 살, 그래서 내 몸에 남는 살이 있으니 이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도 쓰인다. “나잇살 먹은 사람이 왜 그러세요”라면서.

나이를 먹을 수 있는 한국인들. 시간을 몸 안에 내재화할 수 있는 우리들! 이번 설에는 좋은 일을 하자고 굳게 마음을 먹자. 나이를 한 살 먹은 만큼!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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