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보수화? 변심은 끝나지 않았다

[박정인의 언론비평] 민주당을 향한 분노..많은 장면과 이유들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향하는 마음이 오래갈까

지난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투기 사건이 터지자 분노한 청년들이 긴급 촛불집회를 열고 기득권의 부패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투기 사건이 터지자 분노한 청년들이 긴급 촛불집회를 열고 기득권의 부패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거니 말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경향신문 칼럼에 써서 한때 회자됐던 글의 일부이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크로스, p61)

결혼은 기성 세대와 2030 세대 간에 생각의 간극이 가장 큰 쟁점이 됐다. 2030은 더 이상 ‘결혼 적령기’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살다가 좋은 사람 만나면 20대 초반이든 40대 중반이든 아무 때나 결혼하면 된다.

안 해도 그만이다. 많은 젊은 여성들은 아이 낳고, 남편과 시집식구 챙기느라 삶이 방해 받고 경력이 단절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싫으면 말 일인데 엄마든 누구든 그걸 묻는 게 불편하다. 무엇보다 결혼할 능력도 여건도 모자란다는 게 걱정이다.

고민은 그 뿐만이 아니다. ‘3포 세대’라는 말이 있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을 뜻했다. 이 말이 익숙해질 만 하니 5포 세대, 7포 세대가 나왔다. 5포는 취업과 내 집 마련 포기가 더해졌고, 7포는 인간관계, 희망 포기가 추가됐다.

이제는 더 포기할게 있을까 싶었는데 건강과 외모관리도 포기한다는 9포 세대 선언이 뒤따랐다. 그리고 급기야 10포의 완성을 보고야 말았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는 게 열 번째 포기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직장이란 무엇인가. 출산이란 무엇인가. 내 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세상에 대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2030 세대가 ‘보수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대부분 최근 몇 차례 선거와 이번 대선기간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2030 세대의 정치성향을 근거로 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30 세대의 표심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뚜렷하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대 투표자 47.6%와 30대 투표자 56.9%의 지지를 얻었다. 미래통합당 홍준표 후보가 얻은 20대 지지율 8.2%와 30대 지지율 8.6%는 근처에도 못가는 수치였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기준)

민주당의 2030 지지율은 이후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하락세를 이어가더니 급기야 지난 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극적인 역전을 허용했다. 당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0대 55.3%, 30대 56.5%의 지지를 얻은 반면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각각 34.1%와 38.7%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기준)

2030 보수화 주장은 대부분 이런 통계에 근거한다. 건국 이래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꿨지만 어쨌든 지금의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뿌리를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하지만 진보세력이 2030 세대의 변심을 ‘보수화’라며 섭섭해 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무책임한 판단일 수도 있다. 보수세력이 그것을 반가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30의 정치성향 변화는 ‘보수화’라기 보다는 ‘화가 났다’고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 화가 난 상대는 기득권층이다. 기득권층 전반이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이고, 변화하려는 몸부림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이다.

그들이 보기에 특히 기득권층의 주류는 여권이고 비주류는 야권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공천파동 탓에 참패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시작으로 만 5년 동안 항상 선거에서 이겨왔다. 심지어 국회마저 180석이나 과점했으니 기득권 주류가 맞았다.

기득권 전체가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득권과 무관하면서 힘도 있는 정치세력을 찾기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대안인 비주류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3포 세대란 말이 시작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들은 왜 지금 와서 유난히 더 화를 내며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것일까? 이유가 궁금하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화가 난 젊은이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희망이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대로라면 10포 가운데 상당 부분은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돌아갔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 정부는 약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려한 조치라고 박수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반대로 ‘노력해서 정규직 시험에 붙어도 소용없구나’라며 화를 냈다.

저녁마다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 때만 해도 롤모델이자 멘토였던 조국 전 법무장관과 부인이 갖가지 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더욱 화가 났다. 친한 교수 한 명 없는 엄마 아빠가 연구실 인턴경력증명 한 장 만들어주지 못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가고 취직할 수 있을 거라던 믿음에 상처가 났다.

“피아노 선율보다 빙판에 스치는 퍽 소리가 좋았어요”

아이스하키 선수 한수진은 퍽(puck) 소리가 좋아서 평생을 함께 할 것 같던 피아노를 버리고 빙판으로 달려갔다. 정정당당한 경쟁을 거쳐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됐다. 버겁기는 하지만 내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서 반드시 한 골을 넣을 거라고 다짐도 했다.

그런데 결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남북 단일팀을 만든다는 발표가 나왔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북한 선수들과 자리를 나눠야 했다. 한수진은 참았는지 모르지만 이를 보는 많은 2030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접었다. 그들은 내 자유의지와 정당한 노력을 통해 얻은 권리를 국가가 한 순간에 훼손할 수 있다는데 놀랐다.

“가상화폐 거래는 도박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8년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이 내놓은 이 말이 또다시 2030의 분노를 불렀다. “자기들은 부동산 투기에 벤쳐 주식 투기까지 별 짓 다해서 돈 벌어 놓고, 왜 우리 세대는 투자도 못하게 하냐”는 원성이 빗발쳤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근본적인 철학이 ‘탈 중앙화’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2030의 분노는 더욱 컸다. 정부는 사안을 ‘위험한 도박’ 대(對)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라고 봤지만 상당수 젊은이들은 ‘탈 중앙화의 대세에 기득권층이 부당하게 제동을 건’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까지가 2030이 여권으로부터 등을 돌린 몇 가지 이유들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2030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제외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같은 기득권이긴 해도 야당이니까 최근 들어 2030에게 딱히 손해를 입힐 일이 없었다. 정부 여당의 정책들을 따끔하게 비판하는 걸 보니 한번쯤 대안으로 고려해 볼만 했다. 여기에 홍준표와 이준석의 개인기도 한몫 했다.

젊은이들 보기에 홍준표는 전에는 꼰대 같았는데 야당이 된 뒤 하는 얘기에선 나름 ‘사이다’ 느낌이 났다.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촌티에서 역설적인 매력도 느껴졌다. 홍준표는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려고 <#청년의 꿈>이라는 사이트를 열었고 사이다 못지 않게 시원한 콜라를 빗대 <홍카콜라> 방송을 진행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야당에 대한 2030의 막연한 호감은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 불과 1년 만에 정치적 엑소더스로 발전했다. 4.7 재보선에서 여당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엑소더스의 정점은 야당의 대표 경선이었다.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36살 정치인 이준석이 거대 야당 국민의힘의 대표로 당선되던 날, 수락연설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1. “젊은 친구 연설문이 영 어색하네.”

2. “ㅋㅋ 임재범의 <너를 위해> 패러디구만.”

3. “헐! 이준석이 우리 짤을 연설에 쓰잖아.”

이 세 반응을 두루뭉술 하게 세대별로 나누면 1번은 50대 이상, 2번은 40대, 3번은 2030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1번은 물론 2번까지도 본질을 꿰뚫지 못한 반응이었다. 본질은 누구의 언어를 쓰는가 하는 것이었다.

20말30초 세대이자 최연소 지방의회 의원인 인천 연수구 조민경 의원은 이준석의 연설을 이렇게 평했다. “이 대목은 인터넷에서 굉장히 많이 소비되고 ‘짤’로 돌아다니는 청년들의 일종의 놀이문화, 밈이거든요…이준석 대표가 ‘지금 우리들만 아는 언어로 내가 얘기하고 있어’라고 2030 청년들에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21.10.29., 한겨레)

길 걸어 낯선 집을 찾아왔는데 나와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주인이 내가 쓰는 언어로 환영을 해준다면 반갑지 않겠는가. 2030은 이렇게 국민의힘이 열어놓은 문 안으로 피크닉 가듯 걸어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2030 보수화 주장의 근거가 된 동화 같은 전개다. 하지만 동화는 국민의힘이나 보수에게 꼭 완벽한 해피엔딩을 가져다 줄 것 같지는 않다.

굳이 ‘피크닉 가듯’ 걸어 들어갔다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2030이 보수로 전향했다기 보다는 여당에 대한 실망감을 홍준표,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내 친구’ 정서로 달래는 정도 같다는 뜻이다. 윤석열 후보에 대한 2030 지지율이 후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출렁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윤 후보가 홍준표, 이준석과 갈등하던 지난 해 12월 중순경 윤 후보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19%에서 9.5%로 불과 2주일새 반토막이 났다. 같은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결과다. (한국갤럽 조사 2021. 12.14~16, 2021.12.27~28) 내 친구와 싸우는 후보는 노땡큐라는 메시지다.

보수화됐다고 하면 지향하는 가치가 바뀌어야 하는데 자유경쟁시장, 규제완화, 작은 정부, 안보우선주의 같은 보수의 가치들을 2030이 보편적으로 지지한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해고를 쉽게 해 기업경영을 지원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2030 다수가 공감할지 회의적이다.

2030 세대는 특정 정파나 가치에 믿음을 바치기 보다는 개별 정책별로 지지 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동산 정책은 국민의힘, 대기업 정책은 민주당, 노동정책은 정의당 같은 식으로 나만의 정책 포트폴리오를 짠다. 다원화 된 사회에 걸맞는 다당제적 사고다.

이대녀들이 이대남 못지 않게 민주당 정부에 피해의식을 느끼면서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국민의힘을 외면하는 게 선택적 지지의 사례이다.

그래서 2030이 앞으로도 계속 국민의힘에 마음을 줄지는 미지수다. 그러기에는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갈증이 깊다.

우리 앞에는 고령화와 양극화, 성장정체, 세대갈등, 심지어는 청년층 내에서의 젠더 갈등까지 많은 난관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2030은 어느 정치세력이 각각의 난관들을 헤쳐나갈 해법을 내놓는지 지켜보다가 카톡과 틱톡으로 재빠르게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소문에는 진보나 보수 같은 막연한 단어들 대신 정치인의 이름과 말, 정책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소문을 주고받으며 고민한 뒤 또 어느 세력에게 손을 내밀지 궁금하다. 만일 2030이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게 실망해 기성 정치권 내에서 대안을 찾는 시도를 접는다면 어떻게 될까? 거리로 나설까? 아니면 메타버스 세상에서 그들만의 정부를 세울까?

그때가 돼도 기성세대는 젊은층이 보수화했다, 진보화했다며 논쟁만 벌이다가 영영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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