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트로피는 두 개, 청구서는 한국으로?

[박상기의 협상강국 만들기] 큰소리치는 트럼프가 진짜 두려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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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부 정치를 의식한 치열한 명분 싸움 트럼프(중간선거 지지율 부담)와 이란 지도부(굴복 비판 방어) 모두 전쟁을 끝낼 이유가 확실하지만, 패배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강경책을 펴며 물밑에서 이행 순서와 명분을 다투고 있습니다.
  • 비공개 실용 타협으로의 수렴 가능성 압박과 전쟁 지속의 비용이 커짐에 따라, 결국 제3자 중재를 통해 해상 통행 등 실질적 양보와 제재 완화를 교환하며 양측 모두 “우리가 이겼다”고 주장하는 방향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큽니다.
  • 한국 외교에 떨어질 청구서 경계 트럼프가 외교·정치적 실책의 비용을 동맹국에 전가하려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 단순 양보로 시간을 벌기보다 자금 집행 조건, 사업성 검증, 상응 조치를 명확한 조항으로 묶어 이유없는 비용까지 물지 말아야 합니다.

11월 중간선거, 기름값만 바라보는 유권자

“결국 그들은 포기할 것이다.” 지난 9월 29일 트럼프가 이란을 향해 던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란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죠. 10월 4일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우리의 일곱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호르무즈는 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궁금합니다.

두 나라, 정말 끝까지 가겠다는 걸까요. 아니면 서로 먼저 전화하기 싫다는 걸까요.

필자는 이럴 때 달력부터 봅니다. 트럼프에게는 11월 중간선거가 기다립니다. 이란 지도부에는 국민과 강경파 앞에서 ‘미국에 굴복했다’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할 사정이 있죠. 둘 다 전쟁을 끝낼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패배자로 찍히는 건 질색입니다. 결국 상대에게서 받아야 할 것 중에는 국내에 보여줄 ‘승리의 명분’도 있습니다. 합의문보다 국내용 해명문이 더 어려운 판입니다.

우선 트럼프 성적표부터 볼까요. AP·NORC의 9월 24~28일 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은 31%. 생활비 대응 지지는 17%였습니다. 성인 2,140명 조사에 표본오차는 ±2.9%포인트입니다. 대통령은 미국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설명하는데, 유권자는 휘발유값만 묻지요. 애국심으로 계산해 달라고 하면 주유소에서 받아줄까요.

더 신경 쓰이는 건 자기편입니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생활비 대응 지지는 올해 1월 70%에서 9월 44%로 내려왔습니다. 26%포인트가 빠진 겁니다. 민주당이 욕하는 건 익숙한 일입니다. 그런데 응원하던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보고 조용해지면, 그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트럼프가 잃을 것들

역대 대통령들은 어땠을까요. 갤럽의 1946~2014년 중간선거 분석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50% 미만이면 여당은 하원에서 평균 37석을 잃었습니다. 50%를 넘으면 평균 14석을 잃었습니다. 대통령 본인은 출마도 안 했는데, 같은 당 의원들이 계산서를 받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37석’이라고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기존 의석수와 선거 구도도 봐야 합니다. 지난 2022년 바이든은 지지율 40%에서 9석을 잃었습니다. 그 9석으로 하원 다수당이 바뀌었죠. ‘생각보다 조금 졌다’며 안도했는데, 하원의장 사무실 열쇠는 넘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중간선거 직전 지지율과 대통령 소속 정당의 하원 의석 변화

지지율은 Gallup의 선거 전 비교자료. 의석 증감은 1998~2014년 Gallup 표, 2022년 미국 하원 기록 기준. 역사적 사례이며 2026년 의석 예측치가 아니다.
지지율은 Gallup의 선거 전 비교자료. 의석 증감은 1998~2014년 Gallup 표, 2022년 미국 하원 기록 기준. 역사적 사례이며 2026년 의석 예측치가 아니다.

공화당 안에서도 심상찮은 말이 나옵니다. 낸시 메이스 하원의원은 9월 16일 CNN 방송에 나온 인터뷰에서 중간선거를 두고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의 공식 전망은 아닙니다. 그래도 상대 당의 악담보다 자기 당 의원의 걱정이 더 쓰라린 법이죠.

그런데 선거에서 잃는 게 의석뿐이라면, 그나마 정치 이야기입니다. 트럼프에게는 가족 사업의 장부도 있습니다.

로이터의 9월 28일 보도를 보죠.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참여하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기업 벌컨 엘리먼츠. 투자 약 석 달 뒤, 이 회사에 국방부의 6억 2,000만 달러 대출이 발표됐습니다. 민주당은 경위를 따지고 있습니다.

회사는 투자자에게 대출 주선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1789캐피털도 위법의 증거 없는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거래의 선후관계만으로 특혜를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 옆에 가족 회사의 투자 명세서가 놓이면, 질문은 꽤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누구에게, 얼마나 좋았느냐고요.

본격화할 레임덕

필자는 수년전부터 무리한 군사·외교정책이 트럼프를 예상보다 빨리 레임덕에 빠뜨릴 것이라고 예견해왔습니다. 미국 대통령사에서도 이례적으로 빠른 권력 약화가 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민주당은 의회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 가족 사업 등을 조사할 계획이고, 백악관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반박합니다. 레임덕과 함께 새 자료가 드러나면 트럼프 본인과 가족의 사법 리스크도 부각될 수 있습니다. 다만 위법성·증거·대통령 면책은 별도 판단입니다. 약해지는 것은 법적 권리보다 책임 추궁을 막아내는 정치적 힘입니다.

‘탄핵소추’라는 불명예도 다시 거론됩니다. AP통신은 민주당이 탄핵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탄핵은 확정된 당론이 아닙니다. 하원 소추는 단순 과반, 상원 유죄 결정은 출석 의원 3분의 2가 필요합니다. 중대한 위법 증거와 공화당의 대규모 이탈까지 겹친다면 파면, 또는 압박에 따른 사임이라는 불명예 퇴진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확정된 경로는 아닙니다. 이란에 보낼 경고문과 의회에 낼 답변서. 트럼프는 어느 쪽이 더 쓰기 싫을까요.

종전을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판을 끝내면 되지 않을까요. 바로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상대 시설을 파괴하는 것과 상대의 결정을 바꾸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이터는 9월 2일 트럼프 참모들이 선거 전 확전을 억제하려 하며 탄약 재고 보충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방부는 임무 수행 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것만으로 미국의 군사적 쇠퇴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더 때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나은 합의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이란 역시 버티는 대가를 치릅니다. 경제적 고통은 타협의 필요성을 키웁니다. 그러나 항복으로 받아들여질 합의는 지도부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때 굴욕까지 요구하면 추가 충돌을 택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 비용을 지도자들만 치르는 것도 아닙니다. 민간인의 생계와 안전이 걸려 있습니다. 필자는 상대의 정치적 생존 조건을 파악하는 일이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냉정한 판단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란과의 협상은 어떻게 되고 있나

그런데 여기서 장면이 바뀝니다. 트럼프는 제재 완화 제안 보도에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반면 카타르는 양측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죠. 9월 30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답변이 이란에 전달됐고, 주요 쟁점은 ‘조치의 이행 순서’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앞에서는 ‘줄 것 없다’고 하는데, 뒤에서는 무엇을 먼저 주고받을지 따지고 있다는겁니다. 협상장 문밖의 확성기와 문안의 계산기는 원래 소리가 다릅니다.

다만 합의가 임박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란은 10월 4일 핵사찰과 제재 완화를 교환한다는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접촉과 제안의 교환입니다. 최종 합의는 아닙니다. 아직 받지 못한 양보를 먼저 선전하면 상대의 공개적인 부인을 부를 수 있습니다. 자랑을 서두르다 실물을 놓치는 겁니다.

지금은 제안의 결렬(Deadlock)과 이행 순서의 교착(Stalemate)이 겹친 상황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서로 받을 만한 양보, concession입니다. 단순히 양을 반씩 나누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과 우리가 내줄 수 있는 것을 맞춰야 합니다.

트럼프가 시급한 성과를 원한다면 이행 시점도 거래 대상이 됩니다. 필자가 달력을 먼저 보는 이유입니다. 협상에서는 같은 양보라도 언제 받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결렬을 풀 실용적인 방법은 제3자 중재입니다. 카타르 같은 중재자가 최소 수용조건을 비공개로 확인하고, 이행 순서와 검증을 조율해야 합니다. 작은 조치부터 상호 이행을 확인하는 겁니다. 제재·해상안보 전문가가 협상팀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상들이 악수한다고 송금 허가와 항행 안전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필자는 결국 미국이 이란의 요구를 상당 폭 수용하는 타협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란 역시 미국이 국내에 제시할 실질적 양보를 해야 합니다. 해상 통행과 긴장 완화는 공개하고, 제재 예외나 세부 이행 조건은 비공개로 조율하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수용 범위와 시점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전쟁 지속의 비용과 양측의 국내 정치적 제약을 근거로 한 전망입니다.

합의문은 하나인데, 우승 트로피는 두개

그러면 미국은 압박해서 이겼다고 할 겁니다. 이란은 버텨서 이겼다고 하겠죠. 합의문은 하나인데 우승 트로피는 두 개입니다. 국제정치가 가끔 이렇게 민망합니다. 그래도 그 민망함을 감수하고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체면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 이유는 없습니다. 승리 연설이 끝난 뒤 공격이 멈추고, 배가 지나가고, 약속이 이행되는지 보아야 합니다.

물론 선거 압박이 타협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여론을 바꾸려는 재공격과 보복의 악순환도 가능합니다. 필자는 버틸 때의 손실을 보여주되, 합의하면 지킬 수 있는 것도 남겨야 한다고 봅니다. 상대를 모욕하는 데서 만족하면 받아낼 수 있었던 양보까지 잃습니다.

트럼프의 불만스런 합의, 제 3국에 청구서로

자, 이 불안한 대통령의 청구서는 어디로 갈까요. 한국을 보겠습니다. 대미 투자 약속은 3,500억 달러입니다. 트럼프는 알래스카 LNG 참여를 기정사실로 발표했지만 한국 정부는 투자 여부와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10월 2일 트럼프는 한국이 원치 않으면 “그냥 더 청구하겠다”고 했습니다. 검토 중인 투자가 발표 때는 확정되고, 이의를 제기하면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동맹에도 이런 요금제가 있었나요.

필자가 경계하는 것은 외교 실책의 비용을 만만한 동맹에 떠넘기는 방식입니다. 이란에서 얻지 못한 성과를 한국의 투자 조기 집행으로 메우고, 방위비·무기·에너지 구매 요구까지 얹을 유인입니다. 추가 요구 전체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정부에는 이미 위기입니다. 거절하면 관세 압박, 서둘러 집행하면 사업 손실과 외환 부담입니다. 이때 양보로만 시간을 사면 미국 선거의 구원투수로 불려가 청구서까지 떠안습니다. 호구 취급은 그렇게 굳어집니다.

해법은 지급 조건입니다. 2025년 공동 팩트시트에 적힌 전략투자 MOU의 연간 200억 달러 자금조달 한도와 외환시장 불안 시 금액·시기 조정 협의 조항부터 지켜야 합니다. 사업성 검증, 손실 분담, 미국의 상응 조치를 집행 조건으로 묶어야 합니다. 트럼프가 급할수록 한국 돈의 집행 시점에도 값이 붙습니다. 그 값을 공짜로 넘겨줄 이유가 없습니다.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말할 공간은 남겨두면 됩니다.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숫자와 조항으로 남겨야죠. 그의 정치적 생존 비용까지 한국이 결제할 의무는 없습니다. 축하 인사는 짧게. 대금 지급 조건은 꼼꼼하게.

글쓴이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현대모비스와 삼성SDI에서 해외영업과 마케팅 및 대표이사 비서로 근무 후, 미국 위스컨신 매디슨 주립대학교에서 MBA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에서 협상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국내 주요대기업들의 국제협상을 컨설팅해 오고 있다. 최근 국제비즈니스협상 전략AI ‘네고메이트(Negomate)’를 개발, 출시했다. 현재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으로 ‘대한민국 국제협상강국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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