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음악...우크라이나 사태에 부쳐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바랬던 평화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마리우폴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훈련에 참여한 79세 할머니가 소총을 겨누고 있다.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마리우폴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훈련에 참여한 79세 할머니가 소총을 겨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승 기념부터 평화를 촉구하는 음악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과 서방이 러시아와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심하는 가운데, 관련한 외신 중 여든 다된 우크라이나 여성이 사격훈련을 받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반도에서 ‘북핵’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머리에 이고 사는 국민으로서 ‘나라면 저러한 상황에서 총을 들 수 있을까’라는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세계사의 어느 시대에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기에 음악에도 전쟁과 관련된 작품들이 꽤 있다. 전쟁 음악은 전장 터에서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거나 적군에게 심리적 위협을 가하는 음악부터 전쟁 후에 승리한 군인들의 용맹을 칭송하는 음악,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레퀴엠 성격의 곡 등 꽤 다양하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에선 지난 시대의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될 대량 학살과 파괴가 자행되었던 만큼 양차 대전이 끝난 후 관련하여 많은 음악이 나왔다. 주로 전쟁 후에 목도한 비인간적인 참상과 파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내용의 음악들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들은 다소 난해한 현대음악기법에 의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감상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르네상스 시대부터도 전쟁과 관련된 음악이 있었다. 14세기에 <무장한 남자들 L’homme armee>이란 노래는 ‘아무리 무장을 한 남자라도 전장에 나가면 두려워하기 마련’이라는 내용의 세속노래인데, 이 노래의 가사를 사용하여 기욤 뒤페이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이 미사곡을 만들기도 했다.

#유투브 음악: 무장한 사람들 L’homme arme, Ensemble Madrigal

잘 알려진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도 알고 보면 전쟁과 관련 있는 작품이다. 영국이 승리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후에 독일 아헨에서의 평화협정을 축하하는 행사용 음악이었다. 또한 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중의 ‘보아라, 승리의 용사가 돌아온다’라는 유명한 합창곡은 기원전 이스라엘의 영웅 유다의 활약상을 그린 것이지만, 당시 영국에서 반군을 제압한 윌리엄 아우구스투스 공이 이끈 영국군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 음악의 압권 <1812년 서곡>

고전시대의 하이든, 모차르트도 전쟁과 관련된 음악을 남겼지만,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이 곡은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스페인의 비토리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승리한 것을 축하하여 만든 곡이다. 거장 베토벤의 작품이긴 해도 다음에 소개할 이 작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바로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인데, 1880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산업예술박람회 측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축전서곡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크게 패한, 그 유명한 1812년의 전쟁을 그린 이 표제음악은 마치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로 프랑스군의 진격을 표현하고, 제정러시아 국가의 선율로 러시아군의 반격을 그렸다. 결국 슬라브 민족의 승리와 구원을 알리는 타종과 함께 장엄한 관현악과 합창으로 끝을 맺는데, 이 서곡의 클라이맥스에는 대포소리도 등장하고, 야외공연에서는 실제 대포를 쏘기도 한단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곡이지만, 막상 이 요란한 행사용 서곡을 작곡가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투브: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op.49

19세기에 나폴레옹만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은데, 독일 시인 하이네는 청년시절 나폴레옹을 흠모했고, 프랑스와 러시아간의 전쟁이 끝난 후 포로였던 프랑스 군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행렬을 보고 영감을 얻어 시를 썼다. 역시 나폴레옹에 대한 흠모를 품고 있던 작곡가 슈만은 그 시를 가사로 <두 사람의 척탄병 Die beiden Grenadiere op.49-1>을 작곡했다. 포로로 잡혀 있다가 풀려난 군인 두 사람은 전쟁에서 패했고 황제마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한다. 한 명은 처자식이 있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고 다른 한 명은 죽어서도 황제를 지키겠다는 비장한 충성심을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에 실어 노래한다.

# 음악: 슈만 Dietrich Fischer-Dieskau(바리톤) & Gerald Moore(피아노)

20세기 붉은 베토벤의 전쟁교향곡

20세기에 작곡된 전쟁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전쟁3부작 중 ‘레닌그라드’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7번 op.60을 들 수 있다. 제2차 대전 초기에 소련은 독일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결국 독일군에 의한 레닌그라드 봉쇄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마는데,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의용소방대원으로 자기가 가르치던 음악원의 지붕에서 보초를 서며 방위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폭격의 공포와 혹독한 추위, 수십만 명의 아사자 등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며 그는 온 러시아인이 함께 겪는 이 전쟁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음악을 작곡해 동포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다.

히틀러의 군대가 레닌그라드의 전선을 조여 오던 1941년 9월 어느 날, 쇼스타코비치는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작곡 중이던 작품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렸다. “한 시간 전에 저는 대규모 교향악 작품 중 두 편(악장)의 총보를 완성했습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끝마친다면 이 작품을 교향곡 7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까요? 우리 도시의 생활은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장에 있습니다.”

초연은 쇼스타코비치가 레닌그라드를 탈출해 피난 간 쿠이비셰츠에서 1942년 3월에 열렸고, 몇 주 후엔 모스크바에서, 8월에는 봉쇄당한 레닌그라드에서도 공연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의 연주가 예정된 날은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의 성공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봉쇄된 도시의 한편에서는 침략 성공의 축하연회가 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공포에 떨면서도 절대 침략에 굴복하지 않음을 알리고자하는 교향악연주회가 열린 것이다.

도시에 남아있던 시민들은 콘서트홀로 모여들었다.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이미 뿔뿔이 흩어진 후였으나, 몇 명 남은 단원들과 군악대의 관악기 주자들로 임시로 꾸려졌다. 그리고 공연실황은 극장 뿐 아니라 확성기를 타고 레닌그라드의 전선 戰線에서도 울려 퍼졌다. 도시에 남아있던 시민들은 이 교향곡을 들으며 하나가 됨을 느꼈고, 이 도시의 정신적인 힘과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느꼈다고 한다. 한편 전선에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을 들은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주저앉힐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엄청난 힘을 분출하는, 거대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작곡가는 레닌그라드 시에 헌정했다. 1943년에 이르면 전세는 역전되고 러시아는 결국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된다. 조국과 동포를 사랑했기에 억압의 스탈린 치하와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끝까지 조국에 헌신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조국 러시아가 영토 확장의 야욕을 위해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차 대전 이후 공산주의의 맹주로 군림하며 동서냉전의 한쪽 당사자였던 러시아가 다시 군사력으로 주변국 침략을 꿈꾸고 있다. 부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역사를 돌아보고, 국경에서의 긴장을 평화적으로 풀어가길 빌어본다.

# 음악: 쇼스타코비치 교향곡7번 ‘레닌그라드’ Leonard Bernstein 지휘, Chicago Symphony Orchestra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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