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집으로 투표용지 보낸다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스페인의 이색적인 투표·선거 제도 하원 선거, 집에 도착한 투표용지로 투표 상원 선거, 정당이 미리 기표한 투표용지 이용

한국 투표소와 사뭇 다른 스페인 투표소의 모습. 시민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이 표시된 용지를 고르고 있다. 사진=elperiodico.com
한국 투표소와 사뭇 다른 스페인 투표소의 모습. 시민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이 표시된 용지를 고르고 있다. 사진=elperiodico.com

집에서 갖고온 투표용지로 투표!

얼마 전, 필자가 재직하는 스페인의 대학에서 총장 선거가 있었다. 교수, 교직원, 행정직원을 비롯해 학생까지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선거였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직접 투표를 하게 되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투표소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굉장히 특이한 투표 방법이었다!

한국의 투표는 먼저 본인 확인 후 투표용지를 수령하고 기표소에서 원하는 후보를 표시한 후 투표함에 넣는 순서다. 그러나 이날 스페인의 투표소에는 입구에 후보의 이름이 각각 쓰인 종이 꾸러미와 봉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용지를 골라 봉투에 넣은 후, 본인 확인을 하고 투명한 투표함에 봉투를 넣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총장 선거 이후 문득 스페인의 선거 제도에 대해 궁금해져서 현지 언론, 정치에 나름대로 관심 많은 현지인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봤다. 그런데 스페인의 투표 방법은 이해하기 다소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먼저, 스페인의 정치를 이해하기 전에 국가의 역사와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어는 현지에서 ‘카스테야노’(Castellano)라고 부르며, 국가의 공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카스테야노 외에 다른 공용어가 사용되는 지역도 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지로나 등의 도시가 있는 카탈루냐 지역은 ‘카탈란’(Català)이라는 지역 언어가 있고, 북쪽에는 바스크어와 갈리시아어 등이 있는데 공부하지 않고서는 스페인 사람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카스테야노와 상당히 다르다. 현재까지 각 지역에 다른 언어가 존재할 정도로 스페인의 지역 정체성은 매우 강하다.

인구 1천명이하 시(市)도...지방자치의 나라

역사를 되짚어보면 스페인은 1469년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과 아라곤 왕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 그 후 1492년에 그라나다를 함락하여 800년 동안 계속된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운동)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두 사람의 결혼으로 두 나라가 합쳐지고, 이베리아 반도의 모든 나라를 통일했지만 사실 이는 지리적인 통합일 뿐이었다. 각 지역의 언어와 종교, 사회 제도가 많이 달라 국민들은 여전히 이질감을 느꼈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를 한꺼번에 통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강제적으로 나라를 통합하는 대신에 스페인은 모든 지역의 민족성과 특수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길을 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페인은 현재 미국과 같은 연방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사실상 OECD 국가 중 가장 지방분권화되고, 자치주의 권한이 강한 나라가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스페인에는 2021년 기준으로 8,131개의 시(municipio)가 존재하며, 지방행정의 기초단위로서 기능한다. 인구수가 1천 명 이하인 아주 작은 시가 5천여 개에 달한다.

한국 같았으면 지자체 통합이 이루어질 법도 한데 스페인에서는 작은 시라도 독립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모든 선거는 4년마다 이뤄지는데 지방선거 때에 시의원(concejales)을 투표로 뽑고, 이들 시의원이 시장과 도지사(diputados provinciales)를 선출한다. 스페인에는 50개의 도(provincia)가 있으며, 아프리카 영토에도 멜리아와 세우타라는 작은 자치 도시가 두 군데 있다.

가장 큰 행정구역인 광역자치주(comunidades autónomas)는 스페인에 17군데가 있다. 각 자치주에서는 주의원을 뽑으며, 주의원이 주지사를 선출한다. 일반적으로 스페인 선거 제도는 인구비례에 의한 정당명부식 폐쇄형 명부제로, 확보한 정당득표수에 따라 의석이 배분된다. 이는 선호하는 인물을 투표하는 것이 아닌, 선호하는 정당을 투표하는 방법이다.

인물이 아닌 정당 보고 투표한다

스페인 입법부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350석인 하원의원 선거의 경우, 투표용지는 정당별로 준비되어 있으며 각 당의 후보자와 만약을 위한 대체 후보자의 이름이 하단에 적혀 있다. 때문에 종이에 기표할 필요가 없으며, 본인이 원하는 정당의 용지를 뽑아 봉투에 넣은 후 투표함에 집어넣으면 된다.

투표소에는 모든 정당의 투표용지가 마련되어 있지만, 보통 선거 전에 집으로 투표용지가 배달된다. 이렇게 미리 받은 투표용지를 선거 당일에 챙겨 가서 투표함에 넣고 오면 된다. 스페인은 벨기에의 법학자 빅토르 동트가 만든 ‘동트 시스템’(D’Hondt system)을 채택해 득표율을 계산한다. 네덜란드와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사용되는 방식이다. 매우 복잡한 이 계산 방법은, 여러 정당이 얻은 총득표수를 연속 제수로 나누고 최고평균치를 산출해 의석을 배분하는 식이다. 다소 특이한 이 투표 방식의 사표율은 얼마나 될까? 스페인의 사표율은 약 9~10% 정도로 한국에 비해 낮지만, 유럽 내에서는 사표율이 높은 편이다.

스페인 하원 선거 투표용지. 흰색 종이에 각 정당 후보자들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유권자는 원하는 정당을 고른 후,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고 봉한다. 사진=es.wikipedia.org
스페인 하원 선거 투표용지. 흰색 종이에 각 정당 후보자들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유권자는 원하는 정당을 고른 후, 봉투에 투표용지를 넣고 봉한다. 사진=es.wikipedia.org

한편 상원 의원 정수는 총 265명이다. 그중 208명은 국민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되고, 나머지 57명은 의회에서 임명된다. 각 광역자치주당 4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며, 세우타와 멜리야의 각 자치시에서 2명, 마요르카, 그란 카나리아, 테네리페는 3명, 그 외에 인구수가 적은 작은 섬은 1명씩 선출한다. 하원 선거의 경우에는 각 정당마다 인쇄된 용지가 다르지만, 상원 선거는 한 용지에 모든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이 다 적혀 있다.

또 다른 점은 상원 선거는 기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각 정당이 유권자의 편의를 위해 이미 X 표한 투표용지가 선거일 전에 집에 배달되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의 얘기에 따르면 투표소에서 직접 기표하는 사람의 비율은 훨씬 낮다(단, 직접 기표하는 경우에는 한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후보자를 혼합하여 선택할 수 있다).

스페인 상원의원 투표용지. 모든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 전에 이미 각 정당은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낸다. 사진=es.wikipedia.org
스페인 상원의원 투표용지. 모든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 전에 이미 각 정당은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낸다. 사진=es.wikipedia.org

알파벳 빠른 의원후보자 명단이 유리하다?

상원 선거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도 있었다. 예를 들어 A 후보자의 성(性)이 알파벳 B로 시작하고, B 후보자의 성은 F로 시작한다고 하자. 알파벳 순으로 B가 F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그 후보자는 언제나 리스트의 앞쪽에 있을 것이고, 유권자는 확률적으로 첫 번째 혹은 앞쪽에 있는 후보자에 기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각 정당은 알파벳이 빠른 성씨를 가진 후보자를 선정해둘 것이기 때문에 성씨가 마지막 알파벳 Z인 사람은 후보로도 선정되기 아주 힘들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2011년부터는 후보자의 이름을 더는 알파벳 순서로 나열하지 않고 정당이 선택한 순서를 따른다고 법을 바꾸기도 했다.

스페인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내각의 수장인 총리의 임기는 4년 연임제이며 횟수의 제한이 없다. 그래서 스페인 전 총리인 펠리페 곤살레스의 경우 무려 14년간 스페인의 총리를 역임할 수 있었다. 현재 스페인 총리인 페드로 산체스는 두 번의 총선을 치른 후에야 총리가 되었다. 총리는 하원에서 선출하기 때문에 전체 350석 중 과반(176석)이 찬성해야 총리로 임명될 수 있다. 그러나 페드로 산체스는 2019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11월에 다시 한번 총선을 치러야 했다. 120석을 차지해 과반의 의석을 얻는 데에 또다시 실패했는데, 급진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와 연합정부를 구성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스페인 민주주의 역사상 첫 번째 연합정부가 탄생된 것이다.

국가운명과 정치에 더욱 관심 가져야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함께 시작한 페드로 산체스 내각은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21년 3월에는 부총리였던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부총리직을 내려놓고 마드리드 주지사에 출마했다. 그러나 중도우파 정당인 인민당(PP)이 대승리하고, 이사벨 아유소(인민당)가 마드리드 주지사가 되는 바람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정계를 은퇴했다. 반면, 아유소의 인기는 여전히 치솟는 중이다. 그녀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시기에도 봉쇄령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유와 경제 활성화를 택했다. 이 덕분에 마드리드는 다른 지역에서 시행했던 방역패스 제도를 단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

한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투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가장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일이다.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사상 처음으로 20만 명을 돌파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외적인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삼일절 기념식에서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역사를 주도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모든 국민이 국가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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