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한국민’은 누구인가?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시민적 자주성’이 민주시민의 핵심 덕성 ‘우리 대한국민’은 애국의 다양성에 기초 애국주의 진면목, 무명시민의 자주적 헌신

무명의 광복군 17위가 모셔져 있는 수유리 합동묘소. 시민단체 소속 회원과 시민 들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모습
무명의 광복군 17위가 모셔져 있는 수유리 합동묘소. 시민단체 소속 회원과 시민 들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모습

앞선 칼럼에서 민주공화국의 요체인 보통민주화의 관건으로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은 공동체의 기본법인 헌법의 전문(前文)을 소재로 삼아 민주시민교육의 기초가 될 시민적 자주성과 애국주의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 보고자 한다.

헌법은 앞머리에 보통 전문을 둔다. 헌법제정의 주체와 절차, 그리고 그 목적과 기본이념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리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아주 긴,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된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 한마디로 민주공화이념에 입각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결의와 함께 1948년 7월 12일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개정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 만들기의 주체가 우리 대한국민이며, 제헌헌법 이래 8차의 개정을 거치면서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그 주체성은 부인될 수 없었음을 확인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헌법과 민주공화국의 주체인 ‘우리 대한국민’은 어떤 실체를 가지는가?

‘우리 대한국민’의 연원과 함의

헌법을 만든 주체를 ‘우리 대한국민’으로 밝히고 있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성문헌법이라는 미합중국 헌법 전문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에 대응하고, 제대로 읽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잘못 읽히기도 하는 이 표현은 오늘날은 잘 쓰이는 용례가 아니지만 일제와 미군정의 오랜 치하를 벗어나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한 1948년에는 일상적인 표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커져가는 외세의 압력에 맞서 자주독립국임을 드러내기 위해 군주를 ‘대군주’(大君主) 혹은 ‘황제’로 바꾸어 부르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조선국(大朝鮮國)’(1895년) 혹은 대한제국(1897년)으로 바꾸는 운동의 결과가 1919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전환되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헌법이 전문에서 그 법통의 계승을 선언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치적 기원인 3.1운동을 당시엔 3.1대혁명으로 불렀던 사례에서 보더라도 스스로의 자존을 높이기 위해 큰 ‘대(大)’자를 자주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이 헌법만들기의 주체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민은 한(韓)민족이라는 특정의 혈연적 운명공동체의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선언하는 의미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국민의 수식어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임은 오로지 운명공동체라는 정체성 없이는 붙일 수 없는 수식어이다. 한(韓)반도를 중심으로 정치공동체를 꾸려온 역사성을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조국’, ‘통일’, ‘동포애’, ‘민족의 단결’,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이 전문의 주요어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일제식민지배에 항거한 저항적 혁명권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던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여 대한국민의 민족적 결의였음을 표방하고 나아가 현재의 분단상황이 비정상임을 규범적으로 정의하는 단초가 된다.

대한국민과 개방적 민족주의

민족을 정치공동체의 기본구성원으로 설정하였다고 민족주의(nationalism)를 절대적 가치로 설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대한민국의 첫 근대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제정된 1919년과 제헌헌법이 제정된 1948년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분류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 극성기(1918-1950)’의 산물이고 동족상잔의 질곡까지 견뎌야 했던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사회적 조건이 민족주의의 지속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대한국민이 스스로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실천과제로 설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헌법 제1조)나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지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헌법 제10조)이라는 국가의 목적에 비추어 민족을 폐쇄적으로 정의하고 타민족을 배척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개인’을 넘어서는 무정형의 집단에 현실초월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모순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민족의 개방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대한국민의 피땀어린 헌신과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현대적 재구성이 없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공동체적 정체성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우리 대한국민’의 나라여야 하고 대한국민은 혈연적 연계성을 넘어서서 ‘우리’가 되기 위한 정체성을 공유하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애국지사릉에 담긴 대한국민의 정체성

필자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동료헌법학자들과 수유리 근현대사기념관과 애국지사릉을 답사하는 기회를 통해 ‘우리 대한국민’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고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기초지자체인 서울시 강북구가 애국지사릉과 국립4.19민주묘지가 있는 북한산자락에 마련한 역사기념관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대한국민의 자주민주국가에의 열망과 실천에 대한 좋은 시민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초지자체가 이렇듯 훌륭하고 뜻깊은 역사기념관을 마련한 것이 반듯한 민주공화국으로 성장해온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의 한 성과일 수 있을 것이다.

애국지사릉은 이 기념관 인근에 있는 애국선열묘역을 통털어 일컫는 것이다. 주로 일제강점기이후 근대사에 한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애국지사의 묘가 산재해 있다. 2021년 초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첫 국가관리묘역인 ‘서울 수유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애국지사릉은 이준, 신익희, 신하균, 이시영, 김병로, 김창숙, 유림, 김도연, 양일동, 서상일, 여운형, 손병희, 신숙, 조병옥, 이명룡 등 15명의 지사묘 외에 17위의 광복군 합동묘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지역이지만 따로 따로 조성된 묘들을 둘러보다 보면 그 배경이나 활동의 이력이 특히 다양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모두 애국지사란 공통점을 가지지만 출신배경이나 이력, 추구하는 이념 등에서 제각각인 것이다. 상당수가 당시의 지배적 문화의 영향으로 한학을 통해 기초소양을 길렀지만 다양한 계기로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면서 나름의 이상향과 세계관을 형성했고 식민지배를 종식시키고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뜻에서는 한마음이었다. 그러나 추구하는 이상향이 민족주의, 자유주의, 아나키즘, 사회주의 등으로 제각각이었던 점은 놓쳐서는 안 될 지점이다. 민주공화국은 나름의 독자적 정치적 자아를 스스로 형성하는 민주시민으로 구성되며 민주공화국의 핵심이 사상과 표현 및 정치적 자유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이념과 사상으로 획일화되는 것이 통합이라는 민주공화적 이상의 실체인 것처럼 오도하는 경향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지점이다. 입만 열면 국민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세대, 성별, 이념, 지역에 따른 혐오를 조장하기를 서슴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 던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특정한 세대나 성별, 이념이나 지역 등은 다양성의 기초일지언정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없는 모두의 공화국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지난 7일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에서 성별 세대별 갈라치기에 앞장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지난 7일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에서 성별 세대별 갈라치기에 앞장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애국지사들이 모두 스스로의 개인적인 입신영달이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시밭길을 택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공동체의 운명이라는 대의에 자신의 삶은 송두리째 내던진 경우들이다. 그러나 애국지사들의 헌신을 이렇듯 ‘멸사봉공(滅私奉公)’만으로 환원하는 것은 자칫 민주시민의 덕성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 민주시민의 필수덕성인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결과만으로 귀결될 때 자기목적적 존재여야 할 개인이 공동체라는 유기체의 일부로 전락하는 기괴한 전체주의적 변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멸사봉공으로 요약될 수 있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경의는 후손들의 몫일 것이지만 그 실존적 결단으로서의 본질과 자주민이 스스로의 이상을 추구하는 다양한 방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애국주의의 진면목과 역사의 교훈

간혹 민주시민이라면 오로지 공동체와 공공선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여야 할 것처럼 과도하게 도덕화하거나 정치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특정 정파의 의식화교육으로 폄하하는 경우들도 이처럼 도착된 편견에 터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애국지사들을 경모하는 것은 그들의 고독하지만 숭고한 결단을 숭앙하는 것이지 모두가 하나 되어 특별한 (독립 혹은 민주화)운동에 나서는 것을 모범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이 사회적, 정치적 존재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삶은 정치영역만으로 규정될 수 없음은 자명하지 않은가. 민주시민교육도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나름의 자주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더 큰 희생을 마다않은 애국지사들에 대한 경모와 그 희생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진 지사의 유족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헌신, 즉 애국주의가 민주공화국의 기초임을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헌법에서 국가유공자에게 우선적 근로 기회를 부여하는 특별한 지위를 명문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고, 정부에서 국가보훈기관을 두어 보훈에 힘써온 것은 이러한 정당성을 가진다. 문재인정부에서 애국지사릉이 첫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것도 그런 취지에서 매우 뜻깊은 진전이다.

애국주의에 대한 경모의 차원에서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광복군 합동묘역이다. 조국해방을 위해 결성되어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광복군 전사자 중에서 유족들이 있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경우를 제외한 17위의 합동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 합동묘역이 각별한 것은 애국지사릉의 경우 모두 그 개인적 업적이 봉헌되어 경모되고 보훈의 대상이 되었지만 젊은 나이여서 유족마저도 없이 이국땅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분들도 그나마 합동묘역에 모셔진 것이 다행일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애국영령들이 있다는 사실은 민주시민교육의 차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민주공화국의 역사가 빚을 진 수많은 대한국민들이 미처 이름마저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간 사실이 우리 대한국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구한 역사의 한 부분일 것이다.

시대마다 애국의 헌신을 아끼지 않은 이름없는 대한국민의 자취를 추체험(追體驗)해 본다면 21세기 대한국민에게 필요한 것도 입신양명의 길과 무관하게 스스로가 설정한 가치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민주시민의 헌신이 민주공화국의 자양분임을 깨닫게 된다. 광복군합동묘역을 비롯한 애국지사릉 답사는 민주시민교육에서 시민들이 공유해야 할 대한국민의 정체성이 역사 속 자취 속에서 시민의 자질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필요를 일깨워주었다.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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