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같다는 ‘착각’속 다름의 이유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두나라 서로 다른데, 동일성 강요는 안돼 푸틴, 전쟁 중단하고 평화를 돌려 주길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잠시 같은 역사를 가졌을 뿐인 두 나라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푸틴의 이 야만적 행위를 규탄하면서 제재를 가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군사력과 경제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력한 항전 의지로 버텨내고 있다.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을까? 기본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가지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으며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이 속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앞마당에 진출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나라인 것이다. 그런 나라가 이제 NATO에 가입하려 하고 유럽연합(EU)에도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군사, 외교 전문가들도 이상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다 큰 이유는 2022년 2월 21일 저녁 푸틴의 대국민 연설에서 드러난다. 여기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볼셰비키 정책의 결과로 태어난’ 나라요, ‘꼭두각시 정권이 이끄는 식민지’라 칭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표현들을 썼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인을 러시아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요컨대 푸틴은 과거 소련 해체로 인해 잃어버렸던 영토를 복구하려는 욕망과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고 통치 기반을 강화하려는 야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특히 같은 슬라브인이요 러시아 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과 동일한 역사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역사적 정체성을 그 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과거 소비에트의 권세를 되찾는 영광스런 일에 앞장서는 푸틴을 영웅시한다. 푸틴의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882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땅에 키이우 루시 공국(키에프 공국)이 건립되었는데, 이것이 두 나라의 공통적인 역사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다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키이우 루시 공국이 멸망했는데, 이때까지 러시아와 함께했다는 연유로 우크라이나를 ‘소(小)러시아’(Малороссия, Malorossiya)로 부르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몇 차례의 분리와 통합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차츰 언어와 문화가 달라졌다. 특히 1932~1933년에 발생한 대기근 때 러시아로부터 받은 학살에 가까운 핍박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엄청난 반감과 증오심을 갖게 되기까지 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1991년 이래 독립을 선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과거의 역사를 근거로 영토를 회복하려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21세기가 밝았는데 아직도 자신을 중세의 차르(tsar)로 착각하는 한 사람의 퇴행적이고 망상적인 사고가 무고한 4,500만 국민들을 하루 아침에 고통의 수렁에 빠뜨리다니.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푸틴과 같은 논리로 우리도 만주를 고구려 땅이니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토의 결정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현재 국민들의 평화적 의사가 기준이 되어야 할 뿐이다. 모든 국가의 국민은 다른 나라의 간섭없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호의 기원...”the도 쓰면 안돼”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어떤 나라로 간주되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러시아가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러시아어에 비친 우크라이나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어로 Україна(로마자로는 Ukrayina)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У)는 장소 전치사이고 ‘크라이나’(країна)는 러시아어로는 краина라고 하는데, 국경지역, 변방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남쪽에 위치한 변방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너 어디 가니?”라고 물을 때 “국경지방에 간다”와 같은 식으로 쓰이던 ‘국경지방’이 아예 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어에 들어가 Ukraine(유크레인)이 되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본래부터 고유명사가 아닌 경우, 즉 섬이나 강, 그리고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국가명이 될 때는 정관사 the를 넣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가 ‘Kingdom of the Netherlands’이고 민주콩고공화국은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콩고공화국은 ‘Republic of the Congo’, 바하마도 ‘The Bahamas’로서 모두 the를 넣어 표기한다. Netherlands의 경우에는 네덜란드어 Nederland에서 온 말인데 이는 ‘낮은 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변방을 뜻하는 우크라이나처럼 본래 지역을 나타내는 보통명사이다. 그리고 콩고는 the Congo rivier, 즉 강(江)에서 온 국가명이고 바하마도 the Bahama islands, 즉 섬에서 온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을 때는 지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에 정관사를 넣는 관례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굳어져서 the Ukraine이라고 쓰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독립국이 되었고 ‘우크라이나’라는 그 말 자체가 고유명사화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인들은 영어로 말할 때 정관사를 쓰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앞에 정관사 the를 쓰면 국가가 아니라 지역으로 폄하하는 느낌을 주므로 반드시 관사 없이 Ukraine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
한편 러시아어에서도 우크라이나 국호를 표기하는 데 논쟁이 있다. 우크라이나어나 러시아어 같은 슬라브어에는 관사가 없다. 그러나 국가명사 앞에는 일반 지역명을 가리키는 명사와 다른 전치사를 쓰는 규칙이 있다. 러시아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에서, ~로부터’의 뜻을 나타내는 전치사로(‘한국’ Корее, ‘러시아’ России 같은) 국가명사 앞에는 전치사 в(대격)와 из(생격)를 쓴다. 그러나 일반적 지역명 앞에는 на(대격)와 с(생격)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 자체를 ‘국가’라는 의미로 보기 때문에 в와 из를 쓰는데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과거처럼 지역 앞에서 쓰는 на와 c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아웅다웅하는 걸까? 이렇게 하찮은 것으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뭐 그리 대단한 이익이 있는가? 더구나 같은 슬라브민족이고 역사도 함께했던 나라들인데!
왜 우크라이나 침략에 ‘나치’를 들먹일까
그러나 여기에 동족의 혈연이 주는 역설이 있다. 한 민족, 한 가족, 한 뿌리는 서로를 하나로 묶으면서도 상대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그 안에서 오히려 강력한 독재의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지독한 탄압을 사랑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각자의 자유를 집단의 강령 아래 말살한다. 가족이나 민족 내의 폭력은 그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 출구마저 봉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 이를 공유하고는 한다. 그것은 과거 2차대전 때 함께 싸웠던 공동의 적, 나치이다. 지금 나치 체제에 빠져 있는 우크라이나를 구출한다는 가상의 명분이 바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처럼 동일성의 원칙은 자유를 말살하고 침략을 보호로 둔갑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 매우 위험한 사유이다.
넓게 보면 푸틴은 이 동일성의 원칙을 과거의 소비에트 연방의 영광을 재건하기 위해 구 소련 연방 국가들에도 확대 적용하려 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 한 나라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구 소련의 많은 나라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 나라들에게는 이것이 남의 나라 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중앙아시아국 ‘스탄’...우리말에도 흔적이?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이름이 ‘스탄’(stan)으로 끝나는 나라들이 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오늘날의 터키(turkey)어처럼 투르크(Turk)어족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여기에 ‘스탄’ 국가가 둘이 더 있는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이다.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여기서 ‘스탄’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들 나라에서 쓰이는 언어의 단어가 아니다. 즉 투르크어도 아니고,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쓰이는 파슈툰어, 펀잡어, 우르두어도 아니다. ‘스탄’은 지금의 이란에서 쓰였던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이다.
한편 우리말의 어휘 ‘땅’의 고어형은 석보상절에 나오는 ‘ㅅ다ㅎ’였으며 이것이 ‘ㅅ당’으로 바뀐 뒤 오늘의 ‘땅’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ㅅ다ㅎ’의 발음에서 ‘ㅅ’이 ‘ㄷ’을 된소리로 발음하게 하는 역할만 했을 것이라는 학설과 ‘ㅅ’이 실제로 발음되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가 더 우세하기는 하지만, 후자의 학설에 따르면 ‘ㅅ다ㅎ’는 오늘날의 ‘스다’로 발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탄’이 우리말에까지 들어와서 ‘스다’를 거쳐 ‘땅’에 이르게 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우리는 전혀 다른 여러 언어들에서 페르시아어 ‘스탄’의 뿌리를 본다. 인간의 사회에서 동일성은 이렇게 많은 다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푸틴처럼 다른 사람들을 동일성의 원칙에 몰아넣고 행동과 사고의 동일성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더 이상의 희생을 낳지 않도록 어서 전쟁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되돌려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스탄’과 ‘땅’의 역사에서 올바른 ‘동일성의 원칙’, 즉 다름 속의 같음을 배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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