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대통령, 짬짜면 대통령, 투명 대통령

[박정인의 언론비평]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라는 3가지

24만여표 차로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24만여표 차로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특색도, 기억나는 공약도 없던 선거

박빙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승부였다. 인구가 5천만 명이 넘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뽑는데 당락의 표 차이가 24만7천 여명, 0.73% 포인트에 그쳤으니 말이다. 선거 당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보다도 적은 수치였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인구 수로 22위인 금천구가 29만 명을 넘는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선거기간 조사기관들은 대부분 윤석열 후보가 비교적 여유있게 당선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필자는 선거 전날 나름 선거정보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인들과 만나서 지지율 격차 맞추기 내기를 했는데 최대 격차가 11.5%, 최소 격차가 7.5% 포인트였다. 모두가 윤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지상파 방송 공동 출구조사 결과 역시 원 데이터는 상당한 격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 발표된 0.6% 포인트 차이는 원 데이터를 보정한 결과였다. 현행 법상 출구조사를 하지 못하는 사전투표의 투표율이 높았던 점을 감안해 조사기관들이 가중치를 조정해 산출한 값이 0.6% 포인트였던 것이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가 큰 차이를 보인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주로 언급되는 이유는 이대녀의 반란이다. 젠더 갈라치기 선거운동을 한 윤석열 캠프에 뿔이 난 이대녀들이 막판에 투표장으로 몰려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선거 후반까지 거론됐던 2030의 보수화는 이대녀들의 표심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출구조사 결과 이대남의 50.7%가 윤 후보를 지지한 것 못지 않게 이대녀의 58%는 이재명 후보 손을 들어줬다.

지역감정에 따른 투표는 여전했다. 윤 후보가 광주에서 12.72%를 득표해 역대 보수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두 자릿수 지지를 얻은 게 그나마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이재명 후보는 고향이 안동이었지만 경북에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득표율보다 2% 포인트 정도 오른 23.8%를 기록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서울지역 지지율 지형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19대 대선이야 문재인 후보가 대승하는 선거였으니 강남3구를 포함한 25개 자치구 전부를 석권한 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18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박근혜 후보에게 강남3구와 용산 이외에는 내 준 지역이 없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14개 자치구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 윤 후보의 선전이라기 보다는 부동산 민심이 작용한 결과 아닐까 싶다.

종합해 보면 이번 대선은 표차가 적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리 특색을 찾아보기 어려운 선거였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가 실망한 유권자들과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다가 후보단일화에 동의한 유권자들이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정권교체 열망이 반영된 것 아니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격차가 너무 작다. 선거기간 정권교체를 지지한 여론과 비교하면 윤 후보의 득표율은 10% 안팎이 빠진다.

비전은 온데간데 없고, 정책은 희미했던 반면, 누가누가 나쁜 사람인가 키재기 하는데 시간을 허비한 선거였으니 투표율이 80%에 육박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진흙탕 싸움을 벌인 미국 대선을 보고 배우기라도 한 것일까?

92년 김영삼의 “신한국 창조”나 97년 김대중의 “경제를 살립시다”도 기억나는데 이번 대선의 캐치프레이즈는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2007년 이명박의 747 공약은 과장이었고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탓도 있고) 어쨌든 이명박을 ‘다스’ 의혹으로부터 구하고 경제대통령 감으로 각인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승자나 패자나 공약을 아우르는 제목조차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선거의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았다. 정권교체는 더이상 시대정신이 아니다. 정권교체는 97년에 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 야당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나 시대정신일 수 있었다. 정권재창출도 마찬가지다. 시대정신은 선거를 통해 각종 공약을 내세워 국민의 반응을 듣고 후보끼리 서로 비판과 경쟁을 하면서 가다듬다 보면 자연히 떠오르게 된다. 그런 과정이 유실된 선거였으니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대선이 끝나고도 시대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국민도, 당선된 차기 대통령도 서로 난감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은 막상 뽑고 나서도 새 대통령이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불안하다. 대통령은 대통령 대로 집권은 했지만 어떤 비전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지 이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윤 당선인 앞에 놓인 현실은 더욱 걱정스럽다. 아쉬운 대선 패배에 화가 잔뜩 난 172석의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대선 득표율로 봐서는 6월 지방선거도 녹녹치 않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대선이 지역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 더 나아가 젠더갈등까지 더해진 갈등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는 커녕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사상 처음 표심으로 드러난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이 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라는 것은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성공해야 한다. 냉전의 부활이 걱정되는 국제환경에서 성장정체와 노화가 시작되는 이 나라에 어떻게든 활력을 불어넣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윤석열 당선인에게 세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첫번째 제안은 현실주의자 대통령이 돼 달라는 것이다. 나라가 0.7% 포인트 차이로 반쪽이 난 현실이나 국회본회의장 자리의 절반을 훨씬 넘게 차지한 야당이 존재하는 현실 같은 것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realpolitik로 불리는 현실주의 정치는 여러가지 정의를 갖고 있지만 한마디로 이념이나 이상, 도덕적 원칙 같은 가치들을 뒤로 하고 실질적이고 이해중심적인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닉슨이 굳게 닫혀있던 70년대 중공의 문을 핑퐁외교를 통해 연 것이다. 가장 눈총받는 사례는 트럼프가 유색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저소득층 백인 남성들의 적개심을 활용해 집권에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윤 당선인에게 부탁하는 현실주의 정치는 반대표를 던진 국민 절반과, 과반 의석을 가진 반대당 의원들에게 에워싸여 있다고 찌증내지 말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달라는 것이다.

‘저들은 나와 이념이 달라서 안돼.’ ‘대선때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우고서 손을 잡을 수는 없지.’ ‘보수가 어떻게 진보의 정책과 타협을 하나.’ 이런 발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게 뻔하니, 타협한다고 욕먹고 신념을 버렸다고 돌을 맞더라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 바란다. 레알폴리티크의 묘미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방이 당황해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 온다는 점이다.

두번째 제안은 짬짜면을 먹는 대통령이 돼 달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면 이런 대화가 오가곤 했다. “부장님 오늘은 뭐드실까요?” “나야 뭐 짜장면이지.” “넵! 그럼 오늘도 짜장면으로 통일.” 요즘 세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사회가 다양화되기 이전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내가 짜장면을 먹어도 누구는 짬뽕을 먹고, 다른 누구는 볶음밥을 먹어야 서로가 새로운 메뉴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을텐데 날마다 짜장면만 먹다보니 제자리 걸음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국제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다양화가 진행된지 오래다. 먹고 살기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 해도 사람들은 다양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양성은 삶의 활력일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세상은 창의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바로 그 창의의 불을 붙이는 연료가 다양성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오늘은 짜장면, 내일은 짬뽕, 모레는 볶음밥을 먹어보다가 어느 날 “우리 짜장면과 짬뽕을 반씩 먹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바로 짬짜면이 태어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나라는 머지 않아 세계에서 맛있는 음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음식 뿐 아니라 전자제품, 자동차, 소프트웨어, 문화 컨텐츠, 바이오 분야에서도 짬짜면의 창의가 튀어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세번째로, 윤 당선인은 꼭 투명인간 대통령이 돼 주기 바란다. 임기가 끝난 뒤 사람들이 지난 5년을 되돌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지?”라고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물론 청와대에 숨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일을 하되 보이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세상은 다양화 못지 않게 복잡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안에 사는 국민은 대부분 자기 앞가림 할만큼 똑똑하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대통령이 사안마다 깃발들고 앞장서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다간 첫걸음부터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길을 잃으면 국민은 당황한다. 이제는 고속도로 공사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다니며 기획하고, 제철소 건설도 대통령이 이른바 ‘화이바’를 쓰고 지휘하는 시대가 더이상 아니다.

그런 일은 똑똑한 전문가들과 국민이 할 수 있으니 대통령은 그들이 일터로 가기 전 이른 새벽에 먼저 일어나 갈 길에 숨은 돌뿌리를 미리 뽑고,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사사건건 나서면 공무원이 복지부동하고, 국민이 힘들어 하고, 이권을 노리는 자들이 꼬이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봐왔다.

여기까지가 윤석열 대통령의 5년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국민 한사람의 부탁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제대로 실천하기도 쉽지는 않다. 대통령 일이 그렇게 쉽다면 지금처럼 온 나라가 둘로 갈라져 청와대행 티켓을 따내려고 사생결단 하지도 않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과거의 대통령들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실천하는 대통령이 돼 줬으면 한다.

개헌까지 실행한다면

혹시라도 윤 당선인이 워낙 실력도 뛰어나고 국민의 성원을 한 몸에 받아 필자가 부탁한 세 가지를 모두 해낼 것에 대비해 막연한 의견 한가지만 덧붙이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세번째 부탁인 ‘투명인간 대통령’을 제도화할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번역하자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체할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다.

사회가 고도화, 다양화하고, 국민의 인식수준은 높아진 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대통령이 모든 걸 장악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한계에 왔다. 사회의 다양화에 비례해 권력구조도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 역할분담과 책임분산이 가능한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 작업은 윤 당선인이 임기 단축을 비롯한 정치적인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선 자축연의 흥분이 가시지도 않은 지금 정색하고 제안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혹시 이 과제까지 거뜬히 수행해 낸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시대를 열었기에 오히려 가장 돋보이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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