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박정인의 정치평론] 단순하달 정도로 美에 꽂혀있는 외교 실리 챙기는 데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우리도 한미동맹 ‘청구서’ 만들어 거래해야

지난 8월 18일 미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 백악관 측이 제공한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18일 미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 백악관 측이 제공한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타협을 모르는 한국 외교

외교는 타협이다. 타협은 내가 원하는 것 100% 가운데 일부를 양보하면서 갈등을 피하는 것이다. 나는 점심에 짜장면을 먹고 싶은데 상대방이 초밥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경우를 예로 들자. 무조건 중식당으로 끌고 가거나 각자 따로 먹자고 하지 말고 좀 멀더라도 푸드코트에 가서 각자 원하는 걸 주문한 뒤 같은 테이블에서 먹는 대안을 제시하는 게 외교다.

지금 미국의 외교는 중국을 동북아시아부터 서남아시아까지 빙 둘러 꼼짝 못하게 묶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적극적인 공산권 봉쇄 정책이다. 이를 위해 인도를 끌어들였고, 한동안 사이가 틀어진 사우디아라비아도 설득하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다.

중국 봉쇄에 가장 협조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아무 토를 달지 않는다. 대한민국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선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이 워싱턴에 날아가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 의회 지도부의 박수를 받았다.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외교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숙명이다. 휴전선 넘어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없이 국가안보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진보 정부가 아무리 북한과 화해 협력의 새 물결을 강조해도 한미동맹이란 찻잔 속 흔들림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흔들림조차 잠재워 버렸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도 이런 태도를 반영했다. “우리가 오래 전 자유를 찾아 출발한 여정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돼야 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지를 밝혔다. “전 세계 많은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말로 동맹과 반공 연대의 의미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반공관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글로벌 연대에 그치지 않았다. “공산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호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대목에서 시선이 국내로 돌아왔다. 보수 쪽으로부터도 ‘너무 나갔다’거나 ‘의아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목이다.

어쨌든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반공연대에 대한 신념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국가지도자의 생각에 일관성이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방향이 어느 쪽이든 일단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하면 국민이 헷갈리고 나라가 흔들린다.

문제는 일관성의 정도다. 너무 단순하다 할 정도로 한 곳에 꽂혀 있다. 한미일 동맹을 안보 뿐 아니라 경제 분야까지 확대해 중국을 확실히 견제하자는 미국의 생각을 미 행정부보다 더 충실히 수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원칙이 정해졌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부치는 스타일이다. 외교정책의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실리를 놓쳐버리는 외교는 안돼

외교는 겉보기에는 감성적인 것 같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철저하게 실리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미국 대통령과 어깨동무를 하며 “We go together”를 외치는 건 겉모습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두 나라 대통령 모두 손익계산에 분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리를 챙기는 데는 무관심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인사가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원전 수주와 관련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원전보다는 한국 원전을 도입하고 싶은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원전을 도입하면 원자로 건설이나 핵연료 사용과 관련해 미국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데 이걸 한국이 미국에 잘 얘기해서 왕실이 기분 상하지 않게 해 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지금 일종의 냉전 중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어느 덧 미국을 견제하는 진영의 인플루언서가 돼 있다. 사우디는 한국 원전을 수주하고 싶지만 미국의 간섭은 생각도 하기 싫다. 세상에 미국처럼 사우디 왕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나라가 없다. 한국이 미국을 잘 설득하지 못하면 사우디는 언제든지 중국이나 러시아로 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 입장에서 사우디에 원전을 수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탈원전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 때도 원전 수출은 중요한 정책 과제였다. 사우디는 우리가 이미 원전을 수출한 UAE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상대다. 중동의 맹주나 다름없는 나라에 우리 원전이 세워진다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결론은 허탈하다. 우리 정부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미국하고 손잡고 잘 하고 있는데 굳이 사우디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 정책은 탈원전을 180도 뒤집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외교정책은 딴판인 셈이다.

그러면 정작 미국의 대 사우디아라비아 정책은 어떨까? 미국은 오히려 마음 상한 사우디를 달래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우디 같은 거물급 국가가 중국 러시아의 연대에 동참하는 건 방관할 수 없는 일이다.

사우디가 미국 프로골프 (USPGA) 투어에 대항해 창설한 LIV 골프대회가 외교 소재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골프 대국의 자존심을 오일 머니로 짓밟은 이 사태는 지난 6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 공식방문을 시작한 첫 날, 두 대회를 합병한다는 발표가 나면서 일단락 됐다. 어떻게든 사우디와의 갈등을 줄여보겠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 정부가 미국 행정부에 “우리가 원전 수출을 좀 하려는데 사우디가 껄끄러워 하니 큰 간섭 안하겠다는 귀띔이라도 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하기가 그리 어려울까?

거듭 강조하지만 외교는 실리다. 우리 대통령이 워싱턴 가서 환대 받았다고 기분 좋아하는 동안 미국은 동맹에 대한 청구서를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 청구서에 찍히게 될 액수는 ‘아메리칸 파이’ 열창 한 번이나 광복절 경축사 몇 마디로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와 함께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동맹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미국 덜레스 공항에 내린 뒤 북버지니아를 거쳐 루스벨트 브릿지를 건너면 워싱턴 DC가 시작된다. 그 초입에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 늘 참배하는 곳이다. 그 공원의 석조물에 각인된 문구가 유명하다. “미국은 생전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만나지도 못했던 국민을 지켜주라는 명령에 응한 조국의 아들과 딸들을 기립니다.” 자기 나라의 전몰장병을 기리는 문구로서는 당연하고 적절하다.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글자로 문구 하나가 더 새겨져 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안보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표현이겠지만 요즘들어 새삼스럽게 다른 의미가 느껴진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한미동맹 역시 공짜가 아니다. 이런 것 아닐까… 기념공원을 찾은 한국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길”하면서 주는 일종의 리마인더 같다.

미국이 내미는 청구서 뿐 아니라 중국이 내미는 위약금 반환 청구서도 큰 걱정이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륙을 빙 둘러 꽁꽁 묶어 두려는 미국의 전략에 앞장서는 한국을 곱게 볼 리 없다. 어쩌면 미국의 청구서보다 더 아프고 비쌀지 모른다.

비싼 청구서가 예정돼 있다면 그걸 상쇄할 청구서를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 외교는 거래다. 미국이 과거보다 비싼 값으로 한국의 안보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우리는 값을 치르는 만큼 좀 더 받아낼 준비가 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우디 원전 수출과 관련한 미국의 협조 같은 경우가 그렇고, 남북관계, 한중관계의 안정을 위해 동맹의 틀 안에서 독자적인 운신의 폭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친해지는데 성공했으면 이제는 그 친분을 통해 얻어 낼 선물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사랑 때문에 목숨도 아끼지 않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표현대로 외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한미동맹 강화는 우리가 이익을 얻는 수단일 뿐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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