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2022년 봄에 가장 어울리는 교향곡 슈만과 교향곡 ‘봄’에 대한 이야기

제주시 항파두리에서 만나는 보리밭 사잇길.
제주시 항파두리에서 만나는 보리밭 사잇길.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이성부 시인의 ‘봄’ 중에서 인용)

춘분을 일주일 앞두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계절은 이제 봄이다. 이 계절의 따뜻한 기운이 겨우내 얼어있던 대지를 깨워 생명을 움트게 하고, 봄비에 만물이 생기발랄함을 되찾는 대자연의 역동성이 무척이나 음악적이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에는 다른 계절보다도 ‘봄’을 예찬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도 슈만의 교향곡 ‘봄’은 이 계절의 상징과 의미를 거창한 교향악의 울림으로 완벽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수작으로 꼽힌다.

“곡 시작에 트럼펫의 연주가 나오는데, 그것은 잠을 깨라고 부르는 소리와 같지. 이어 도입부가 시작되면 세상이 초록빛을 띠고, 나비가 대기 속을 날기 시작해. 이윽고 알레그로 파트에서는 봄이 되어 모든 것이 생생해진다네.” 작곡가의 설명 그대로 이 교향곡의 1악장은 봄의 진군을 알리는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시작되고, 대기에 차오르는 봄기운을 받아 산천초목과 생명체들이 하늘을 향해 힘껏 환호성을 지르듯 빠르고 활기찬 관현악으로 이어진다.

‘봄’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과 무관치 않게 이 곡은 실제로 작곡가 슈만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예술가로서의 창작 에너지도 절정에 달했을 때, 그야말로 인생의 봄날에 만들어졌다.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가로막고 있던 큰 장애물이 제거되어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행복이 봄의 교향곡을 쓰게 했을 것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독일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예술적 감성이 충만했던 소년 시절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 1810~1856)은 독일 작센 지방의 소읍 츠비카우에서 서점과 인쇄소를 운영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4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의 슈만은 그야말로 그늘이 없는 활달한 성격의 소년이었다. 책읽기도 좋아하여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는 몽상가의 기질도 다분했다. 우연한 기회에 아들에게 음악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는 오르간 레슨을 시키며 그의 재능을 키워주었다. 아버지 자신이 문학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형편 때문에 그 방면으로 나가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던 차에 아들에게서 발견한 재능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진로는 순탄치 않았다. 김나지움(현재의 고등학교 과정)을 다니던 무렵, 가족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잇따랐다. 누나가 정신질환으로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도 돌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김나지움의 졸업을 앞두고 어머니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그를 법과대학에 보냈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생의 중요 단계 마다 싸워야 했다. 우선 어머니를 상대로 긴 세월 동안 끈질기게 설득하여 마침내 음악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투쟁으로 점철된 젊은 날

슈만은 처음에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으나,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너무 무리하게 연습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연주가의 꿈을 접고, 음악 창작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사랑하는 여성 클라라(그에게 음악가의 길을 열어준 비크 교수의 딸)와의 결혼을 위해서 장인에게 인정받고자 열일을 하며 분주히 지냈고, 결국엔 법정다툼까지 벌이고서야 결혼 승낙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문필 실력이 뛰어난 덕에 평론가로서도 활약하며 당시의 겉만 화려한 구닥다리 스타일의 음악가들에게 정면으로 맞서 비평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힘든 투쟁을 해야 했다. 그것은 집안의 병력인 정신 이상 증세와의 싸움이었다. 원래도 매우 예민하면서 격정적인 성격이었는데, 사춘기 시절부터 문학작품들로 접한 낭만적 환상의 세계에 쉽게 동화되었고, 연이은 가족의 죽음으로 집안의 병력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흔히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영혼의 도피처로 삼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악습도 답습하게 되면서 젊은 시절부터 그의 영혼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 유튜브 : 슈만의 ‘헌정 Widmung’ op.25-1, Dietrich Fischer-Dieskau & Jorg Demus

1840년 서른 살의 슈만은 가장 이상적인 동반자였던 클라라와의 결혼으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해에 창작의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듯 수많은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노래의 해(Liederjahr)’라고 불리는 이 해에 <시인의 사랑>을 포함해 무려 138곡에 달하는 가곡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드디어 교향곡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교향곡을 써야 작곡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절이었다.

교향곡 작곡에는 아내 클라라의 부추김이 컸다.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다가오는 새봄에는 꼭 이 곡을 선보이려 마음먹고, 이듬해 초에 B플랫장조의 첫 번째 교향곡 ‘봄’(op.38)을 완성했다. 클라라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첫 아이에 대한 기대와 함께 슈만 스스로도 ‘봄에 대한 강렬한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런 마음이 곡에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했다.

슈만과 클라라 부부.
슈만과 클라라 부부.

창작의 절정기에 탄생된 봄의 교향곡

이 교향곡은 1841년 3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에 친구인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첫선을 보였다.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그동안 피아노와 가곡 분야에만 두각을 나타내던 슈만이 드디어 교향곡의 성공으로 음악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졌음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어서 그는 훗날 완성될 교향곡들의 구상을 비롯하여 대표적인 실내악 작품도 다수 작곡했다. 라이프치히음악원에 교수로 초빙된 그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작곡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론가로서 활동하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동료 음악가들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일에 열정을 쏟다보니 차츰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슈만의 마흔여섯 해 인생, 그 후반 10 여년 동안 그의 심신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창작에 대한 부담감으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집근처 라인 강에 몸을 던지는 자살 시도 끝에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의 마지막 2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고, 결국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는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천재 예술가의 이상에 대한 짙은 그늘이 어른거린다. 19세기 당시는 ‘천재예술가’, 또는 ‘예술가에게 창조의 원천은 영감(靈感)에 있다’는 미학분야의 담론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영감에 대한 갈구(渴求)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얻기 위해 고뇌하고 방황하고,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심신이 피폐해지기도 했다.

슈만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년 시절부터 낭만주의 문학작품에 빠져 지내곤 했는데, 특히 낭만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라 불리는 장 파울을 가장 좋아했다. 장 파울의 음악에 대한 언급 - ‘음악만이 영원으로 가는 마지막 문을 열 수 있다’- 는 식의 예찬은 한창 감수성으로 충만한 소년에게 음악가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기꺼이 그 문을 향해 나아갔다. 눈부시고 설렘 가득한, 그러나 두려움과 고통도 함께 따를 수밖에 없는 험난한 예술가의 길로.

#유튜브 : 슈만 교향곡 1번 B플랫장조 ‘봄’ / Gerad Oskamp지휘 Philharmonie Sudwestfalen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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