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사용 설명서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잘 쓰면 약이 되는 불협화음
집단 내의 구성원들 사이가 원만하지 않거나, 의견 대립이 있을 때에 흔히 ‘불협화음을 낸다’고 한다. 불협화음(discord, dissonance)은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릴 때, 서로 조화가 되지 않아 불안정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으로, ‘비화성음’이나 ‘안어울림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실에서 불협화음이 나면 서로 조정을 거쳐 합의나 해결을 해 보려 애쓰듯, 음악에서도 불협화음은 반드시 그 불편한 상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화성진행이 이루어지는데, 이것 역시 ‘해결’이라고 한다.
인간의 청각은 불협화음이 길게 지속되거나 갑자기 등장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그래서 불협화음을 갑자기 홀로 튀어나오게 하지 않고, 예비단계를 거친 후에 불협화음이 나오고(계류) 그것을 해결하는 식의, 즉 ‘예비–계류-해결’의 3단계를 거치게 한다.
한편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릴 때, 서로 조화롭다, 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자연 속에 내재해있는 배음(倍音)과 배음렬(倍音列)에 근거한 것인데, 서양음악의 화음은 이 배음렬에 근거하여 3도 음정의 음들이 함께 울릴 때 듣기에 좋고, 따라서 이 3도 음정의 음들을 쌓아 올려 화음과 화성의 체계를 만들었다. 협화와 불협화음은 물론, 대위법과 화성법의 기초 등 모두가 배음렬에 근거한 것이다.
서양음악에서 불협화음의 사용은 오래전부터, 다성음악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초기 다성음악에서는 불협화음을 가급적 발생시키지 않도록 선율의 진행 규칙을 만들었지만, 다성음악이 발전하게 된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불협화음의 해결방법을 터득함으로써 오히려 음악적 효과를 내기 위한 요소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사용에 한결 관대해졌다. 이런 경향은 뒤이은 바로크와 고전시대에도 이어졌다.
모차르트의 ‘불협화음’ 사중주곡
1785년 1월에 완성된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제19번(C장조 K.465)은 1악장 시작 부분에 기존에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화성을 선보였다. 불협화음을 보란 듯이 사용한 것이다. 첼로, 비올라, 제2바이올린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A플랫 화음의 음들을 들려주다가 마지막에 등장한 제1바이올린은 A음을 길게 끌고 간다. 여기서 화성적인 부조화의 느낌을 주지만, 다음 화음으로 이어지면서 해결되어 안정감을 찾게 된다. 오늘날엔 이 정도의 불협화음 진행이 그리 파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18세기 후반 당시의 기준으로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화성진행이었다. 이 4중주곡에서는 불안정한 서주 부분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1악장으로 옮겨가면 빠르고 밝은 분위기의 주제가 등장하는데,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 한결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서주와 대비를 이룬다. 불협화음을 사용하여 극적 효과를 주었고, 그것을 흥미롭게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불협화음(Dissonance)’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불협화음을 사용한 낭만주의 음악가들
고전주의 시대만 해도 불협화음은 기피되었지만, 낭만주의 음악에서는 완전협화로 해결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불협화음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되었다. 불협화음은 악곡에 독특한 무드를 나타낼 때, 색채감과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데에 잘 쓰여서 쇼팽, 리스트, 바그너, 라벨, 드뷔시 같은 많은 작곡가들이 이 불협화음을 작곡의 핵심요소로 사용했다. 명의(名醫)는 독조차도 약으로 쓴다는데, 불협화음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는 것은 작곡가의 능력 여하에 달린 일이었다.
쇼팽의 짧은 피아노곡, 에튀드 Op.25-5에서는 예비 없이 나타난 강박(强拍)의 불협화음을 짧은 꾸밈음처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단조의 곡조 위에서 ‘불협화-협화’의 반복적인 음형이 건반 위에서 일렁이듯, 불안하고 우울한 뉘앙스를 자아낸다. 건반을 주무르듯 피아노의 화성을 자유자재로 다룬 천재의 솜씨가 느껴진다.
3화음 위에 다시 네 번째 음을 쌓아 올린 것을 7화음이라고 하는데, 낭만주의 음악에 와서 작곡가들은 이 화음 위에 9도, 11도까지 쌓아 올린 불협화음을 구사하였다. 하나의 화음 안에 서로 부딪히는 비화성음이 여러 개로 늘어나게 되어 불협화음의 강도가 더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원래 화음의 본성에서 멀어진 음들에 의해 조성감(調性感)도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불협화음이 적시에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면 그 화성진행의 긴장감도 커진다. 이렇게 불협화음 사용의 기존 공식을 깨고, 과감하고 획기적인 구사로 음악사에 큰 물의를 일으킨 작품이 바그너에 의해 탄생되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독일)는 타고난 문학적 재능과 음악적 역량을 오페라에 집중하여 평생동안 13편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정치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며 그는 예술 분야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던 인물이다. 그런 탓에 당국의 수배령을 받는 등 끊이지 않는 풍파를 겪기도 했다. 바그너가 정치적 망명처였던 취리히에서 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비극 오페라로 평가받는데,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 또한 매우 극적이다.
1849년 드레스덴 혁명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한 뒤, 스위스로 도주하게 된 바그너는 경제적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한없이 위축된 상태였다. 그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 이는 부유한 상인 베젠동크. 그런데 베젠동크의 아름답고 교양있는 부인 마틸데와 문학과 음악을 매개 삼아 교류하면서 두 사람은 연애감정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어려움에서 구해준 은인이나 다름없는 베젠동크를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바그너는 큰 갈등을 느꼈지만, ‘평생토록 이렇게 행복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며 그 사랑에서 받은 영감 그대로를 기념비적 작품으로 승화시킬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전해진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소환, 스스로 남주인공 트리스탄에 빙의된 듯 단숨에 오페라 대본을 완성하게 된다. 이어 작곡에도 착수하여 오랜 정성을 들인 끝에 비극적이고도 낭만적인 오페라로 탄생시킨 것이다.
해소되지 않은 욕망을 불협화음의 음악으로 승화
이 오페라는 전주곡부터 심상치 않았다. 첫 마디부터 일명 ‘트리스탄 코드’라는 감7도화음을 등장시키고, 그 불협화음의 해결을 미룬 채, 계속 다음의 불협화음으로 이어가며 반음계적 선율을 들려준다. 해결을 미룬 불협화음은 마틸데를 향한 해소되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음악화한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간다. 이 전주곡에서 보여준 연속적인 불협화음의 등장은, 음악사의 다음 세대에서 ‘조성(調性) 파괴’라는 큰 파장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전주곡 외에도 바그너는 과감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관현악의 선율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무한 선율’이라든가, 등장인물을 특정하는 라이트모티브 같은 획기적인 기법을 도입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는 그가 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것이었고,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 작품을 특별히 ‘오페라’가 아닌 ‘악극(Musikdrama)’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바그너와 마틸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 앞에서 도덕군자가 아니었던 바그너답게 두 사람의 관계는 불륜으로 발전했고, 결국 들통이 나 버렸다. 화가 난 바그너의 아내가 집을 나가면서 그의 결혼생활도 파탄에 이르고 만다.
이렇듯 음악에서 불협화음은 조화를 깨트리는 불편한 것에서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세상사의 불협화음은 어떤가? 제때제때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은 종종 큰 화를 키운다. 그렇다고 불협화음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할 필요도 없다. 음악에서든, 삶에서든 그것을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다면 말이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불협화음의 존재 의미를 잘 표현해주었다. “삶이 원래 그렇다는 걸 전 일찍부터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갈등과 즐거움이 함께 공존하는 게 삶이라는 걸요. 이게 삶이에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에도 화음과 불협화음이 있어요. 그런데 화음은 불협화음 후에 더 아름답게 들려요. 불협화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화음이 아름답다고 못 느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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