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oston과 North Korea, 영화 속 기시감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굿 윌 헌팅’과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두 영화가 갖는 공통의 서사 구조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와 ‘굿 윌 헌팅‘의 공통점

최근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 분)와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탈북 천재수학자 리학성(최민식 분)의 만남을 다룬 영화다. 상위 1% 영재들이 모였다는 자립형사립고에서 가난해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천재수학자를 만나 수학을 배우면서 인생을 깨달아가는 학원 드라마 내지 성장 영화다.

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굿 윌 헌팅’을 연상케 한다. 이 영화에서도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천재 수학자 윌 헌팅(맷 데이먼 분)과 그를 심리상담하는 숀 교수(로빈 윌리엄스)의 만남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담자와 피상담자인 두 사람은 서로 깊이 교감하고 고뇌하면서 각자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 나간다는 이야기다.

두 영화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천재 수학자의 등장이다. 윌은 MIT 학생이나 교수들 보다 탁월한 수학 천재이고, 리학성 또한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로 등장한다. 둘째는 멘토와 멘티, 아버지와 아들 같은 두세대의 만남과 우정이다. 이 만남을 통하여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마음 속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셋째는 주인공들이 예상외의 공간인 South Boston(남부 보스턴)과 North Korea(북한) 출신이라는 점이다.

‘굿 윌 헌팅’의 두 장소, 명문 대학가와 남부 보스턴

‘굿 윌 헌팅’을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영화 스토리가 두 장소를 번갈아 왔다갔다 하면서 전개된다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 시의 케임브리지 지역에 있는 MIT 캠퍼스나 하버드 대학가, 그리고 아일랜드계 이민 노동자들이 사는 남부 보스턴 지역이 두 공간이다. 천재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학가와 술과 욕, 때로는 폭력이 난무하는 칙칙하고 가난한 동네가 대비되어 나온다.

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굿 윌 헌팅’에서 MIT 청소부인 수학천재 ‘윌’과 그의 스승 ‘숀’은 모두 가난하고 위험하며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남부 보스턴 지역 출신이다. 맷 데이먼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여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디파티드(The Departed)’에서처럼, 남부 보스턴은 범죄 스릴러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미국의 영화인들에게 남부 보스턴은 액션, 범죄, 멜로 등 영화의 장르를 새롭게 확장시킬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북한 소재 영화콘텐츠의 대유행

세계적 인기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탈북여성 강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이 비영어권 배우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도 북한 관련 콘텐츠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보다 앞선 시기에 북한을 연상케 하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19금 멜로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개봉됐다. 남북한 형사 현빈과 유해진, FBI 요원 다니엘 헤니가 출연하는 액션 수사극 ‘공조2’가 개봉예정이고, 남북평화 공동마을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 ‘사랑의 안단테’가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북한 소재 콘텐츠의 강점과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공간으로서 남부 보스턴과 북한의 기능을 살펴보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컷.

영화 공간으로서 남부 보스턴과 북한

한국 영화에서 ‘북한’이라는 공간은 미국 영화에서 ‘남부 보스턴’과 매우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한국 영화에서 북한이라는 장소적 설정은 장르의 확장성이라는 면에서 놀랄만한 기능을 수행한다. 총격전과 같은 액션, 전쟁, 범죄는 물론, 다양한 역사나 멜로, 미스터리 장르로의 확장도 가능케 한다.

둘째, 남부 보스턴과 북한이라는 공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북한이라는 장소 하나만으로 영화는 관객들을 완전히 새로운 영화적 설정 속으로 힘들이지 않고도 빠르게 몰입시키곤 한다. 새로운 시선의 도입은, MIT나 하버드 대학 내에서는 그리고 한국의 명문 고등학교나 강남 학원가에서는 결코 쉽게 수용되거나 알아차릴 수 없는 사실들을 더 또렷하고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게 한다.

셋째, 북한에 흔히 적용되어 왔던 영화적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 있는데, 그런 요소가 종종 작품의 감성적 설득력을 높이기도 한다. 북한이라는 공간은 가난하고 위험하고 희망없음을 기본으로 하되 인간적 순수함이 살아 있는 곳으로 고정관념화되어 있다.

물질적 빈곤이나 폭력적 상황에서, 극적인 대비와 전환의 방식으로 지극히 순수한 느낌의 휴머니즘이 오버랩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영화적 선입견 요소들은 잘만 활용되면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과 함께 새로운 관점의 설득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도 한다.

우리의 민낯을 또렷이 비추는 ‘마법의 거울’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조리’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영화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 동기 중 하나는, 물과 공기 같아서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영화적으로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South Boston과 North Korea 라는 두 공간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의 부조리한 모습을 가장 리얼하고 순수한 시선으로 드러내게 하는 거울 장치다. 이 공간들은 영화 속에서 우리의 이상해져 버린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고 인상적으로 비춰내는 마법의 거울과 같다. 종종 그 거울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작동한다.

위로와 희망의 메세지, ‘증명하라’와 ‘용기’

영화 속 ‘이상한 나라’는 북한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남한의 모습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빈곤한 가정 환경의 학생 한지우와 탈북한 천재 수학자 리학성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답과 결과만을 추구하고 부모의 재력과 사교육 선행학습이 절대 진리인 우리의 교육현실, 그리고 개인의 부귀영달을 위해서 공정의 가치나 약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쉽게 내버려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드러내고 있을까.

그리고 이상한 것이 정상처럼 되어 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인 ‘증명하라’와 ‘용기’는 과연 무엇일까. 관객들은 탈북 수학자 리학성과 가난한 수학 포기자 한지우의 이야기에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쫒아가게 된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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