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잘못된 인식

윤 당선자의 공간론과 ‘이독공독’의 걱정 다양한 대화방법 있는데, 공간 탓을 하다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회담 장면. 사진=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회담 장면. 사진=AFP/연합뉴스

유현준의 <청와대 공간리뷰>를 반박하며

SNS에서 읽은 ‘이독공독以讀攻毒’이란 글과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에 쓴 글, 그리고 홍익대 건축과 유현준 교수가 올린 <청와대 공간리뷰>라는 동영상을 봤다. 유현준 교수는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뷰’ 즉 ‘전망이 좋은 곳’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다. 이 동영상은 대통령 선거전에 청와대를 방문하고 건축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개의 글은 윤석열 당선자가 주장한 ‘청와대 공간론’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다.

윤 당선자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했는데, 이는 건축공간에 대해 건축인들이 자주하는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과 비슷한 말로 건축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또 있다.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를 유현준 교수가 <공간이 만든 공간>이란 책에서도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은 꼭 건축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리를 놓으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리를 이용한다. 집에서도 이런 예가 있다. 과거 온돌에서는 아랫목이 따뜻했다. 따뜻한 곳이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을 그곳에 모셨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랫목이 상석이 됐다. 현재는 난방시스템이 달라졌으니 모든 곳이 따뜻해 이런 구분이 없다. 이처럼 집구조가 사람 행동을 결정하기도 한다.

유현준은 <청와대 공간리뷰>라는 동영상에서 청와대를 백악관과 비교하고 있다. 특히 권위적이라는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 본관을 지을 때가 노태우 정권 때기에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집은 건축주 성향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유현준은 집무실을 백악관 집무실과 비교하며 백악관 집무실이 타원이라 중심이 둘이기 때문에 집중되지 않아 권위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즉 공간이 권위적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협의하는 모습이 친근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건축공간 문제 이전에 그들 사회가 탈권위적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사람하기 나름이다.

푸틴이 독일 총리를 만나는 아래 사진을 보자. 큰 방에 서로 얼굴 표정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긴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았다. 푸틴이 왜 이렇게 회의장을 꾸몄는지는 사진만 봐도 안다. 바이든이 일본 수상과 식사하는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하는 사진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외교적 수사다. 이것을 이해하면 공간 활용이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회담하는 모습. 사진=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회담하는 모습. 사진=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연합뉴스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쓴 <보이지 않는 차원>(The Hidden Dimension)이란 책은, 친밀도에 따라 사람간 거리가 달라지고 가구배치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테이블 형태에 따라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매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형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할 때 원형이 가장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가 이뤄지고 직사각형테이블은 긴 쪽에 마주앉은 사람 간에는 대화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렇게 가구 하나도 공간을 규정하고 공간 성격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당사자들이 어떻게 하는가가 따라 친밀도는 달라진다. 즉 <청와대 공간리뷰>에서 공간이 대화를 단절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공간은 달리 느껴진다.

무엇이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할까

설사 공간이 사람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해도 건축적 공간은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를 포함한 이데올로기다. 종교가 힘이 약해진 현재야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고 싸우지만 과거 이데올로기는 종교였다. 종교는 모든 것을 결정했다. 고딕 양식도 종교의 산물이다. 사람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물이 성소피아 성당이다. 이 건물은 원래 기독교 성당으로 지어졌는데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을 정복하자 미나레트를 추가하고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했다. 참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성소피아 사원은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을 지배한 경우다.

지금 청와대도 의지에 따라 내부를 개조하고, 가구배치만 바꿔도 유현준이 말하는 백악관처럼 소통하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그런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건물자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당선자는 이런저런 풍문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이젠 건축공간 사고지배론을 들고 나온 것뿐이다. 당선자는 사람 문제를 청와대 건물 문제로 치환하려 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격리가 우선이다. 대민접촉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호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대통령이란 자리가 근본적으로 대면소통이 쉽지 않다. 이제는 대면 접촉 아니라도 대화하는 방법은 많다. Zoom을 통한 영상통화가 많이 보편화됐다. 여러 사람과도 가능하다. 이런 것을 활용하면 대화는 늘 가능하다. 대화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청와대 탓만 해선 안된다.

치밀하고 분석적인 사고를 할 수는 없나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미지로만, 전체적으로 한 번에 느낌으로 개념을 파악하는 것에 적응되고,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사고는 깊어지고 적층되기 어렵다. 생각은 연결성을 가지지 못한 채 비합리적인 비약을 하게 되고, 합리적으로 체계화시키지 못해 각기 독립된 개체성은 상징에 의한 자의적인 의미 부여를 통해 모든 것을 신적 방향성으로의 일면적이고 비합리적인 통합을 하게 된다. 특히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사고를 가진 상태에서는 더 심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 글의 상황은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 종종 나타난다. 한 곳에 빠진 사람은 여러 상황을 고려한 복합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면적 여러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지식이 따라주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독서가 기본이다. 아니 독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심도있게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글에서 ‘읽을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다양한 사고를 하다보면 한곳으로 쉽게 빠지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서 보면 윤 당선자 모습은 다양한 독서나 깊이 있는 독서를 한 것 같지 않다. 독서는 아니더라도 신문조차도 여러 신문을 다양하게 읽은 것 같지 않다. 생각이 매우 단편적이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런 모습이 이번 청와대 이전사태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청와대에 들어가 집무하고, 몇 달 뒤에 옮기면 안되나? 조금 더 치밀하게 살펴보고 1년 뒤에 하면 안되나? 이참에 아예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할 수 없을까? 그렇게 한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세 번째는 ‘이독공독以讀攻毒’이란 말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책을 읽음으로서 나쁨을 공격한다’가 되지만 의역하면 ‘독서를 통해 정신에 깃든 독소를 없앤다’는 뜻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즉 지식을 쌓아 두 번째에서 말한 비합리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윤 당선자에게 딱 필요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될수 있을까? 이미 사고가 굳어진 사람이고, 지금부터 책을 읽는다는 것도 기대할 수 없으니, ‘이독공독以讀攻毒’을 바라는 것은 어림없다.

작은 백악관, 초강대국화하는 미국

추신: 윤 당선자는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을 보자. 미국 백악관은 200년 전에 지어진 집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 윙은 1901년 지어진 것이다. 백악관이 당시에는 꽤 큰 건물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규모로만 본다면 청와대 본관보다도 오히려 작을지도 모르겠다. 복도도 좁고 모든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사용하고 있다.

현실에 맞지 않고 부족한 부분은 증축한 곳이나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역대 대통령 모두 백악관에서 집무했다. 그리고 세계 모든 사람이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윤 당선자 말대로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면 그 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쪼잔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가 말이다. 건물은 작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미국이란 초강대국 이미지가 건물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만일 미국이 초강대국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됐을까? 결국 집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제발 집 탓하지 말자.

글쓴이

최성호 건축가

필자인 최성호는 오랫동안 한옥과 한국문화를 공부해온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https://blog.naver.com/seongho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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