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집’은 육지와 어떻게 다를까

[최성호의 사람 사는 건축] ‘여자·돌·바람’ 많다는 삼다도 집 지을 때도 확실히 반영돼 돌담에 돌벽, 지붕 낮고 굴뚝 없어 ‘아궁이 딸린 온돌’없는 것도 큰 특징

제주 민속박물관에 있는 제주 전통가옥의 배치 모습. 사진=최성호
제주 민속박물관에 있는 제주 전통가옥의 배치 모습. 사진=최성호

말이 다르니, 문화도 다르다

제주도 말은 육지와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표준말을 많이 쓰니 제주 사투리를 듣기 힘들지만 50여 년 전만 해도 제주 시내를 벗어나면 제주 사투리 때문에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신구간(新舊間)’이다. 신구간은 절기상 대한(大寒) 5일 후부터 입춘(立春) 3일전까지다.

‘신구간’은 지상을 관장하던 귀신들이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러 가는 날로, 관장하는 귀신이 없어 ‘손 없는 날’이라 이사하기 좋은 시기를 말한다. 이런 것 뿐만 아니다. 제주도에선 자녀가 결혼 후 같은 집에서 살아도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따로 지어 먹는다. 같은 울타리 내에 살아도 집도 따로 떨어진 독립된 건물에서 따로 살게 한다. 이젠 아파트도 많이 생겼으니 이런 관습이 줄었겠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다.

이렇게 문화가 다른 것에 대해 <제주도 세시풍속>(국립문화재연구소)이라는 책에서는 ‘섬’의 특수성이 작용하고 이와 함께 바다를 통해 유입된 여러 문화가 섞여있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몽고가 말을 키우기 위해 제주에 방목장을 만들면서 몽고문화가 유입됐고,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일본 문화가, 그리고 오키나와와 중국 운남성 문화도 유입됐다고 한다. 이런 여러 문화에다가 육지와 격리되면서 제주 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제주 성읍마을의 객사. 육지에 있는 객사에 비해 기단이 낮다. 사진=최성호
제주 성읍마을의 객사. 육지에 있는 객사에 비해 기단이 낮다. 사진=최성호

제주를 예전에는 ‘여자, 돌, 바람’이 많다고 해서 ‘삼다도(三多島)’라 불렀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삼다도 소식>이란 노래도 있었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여자와 남자의 성비는 비슷하다.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옛날부터 여자가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같다. 아마도 4·3때 많은 남자들이 죽거나,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하고 보니 남는 사람이 여자뿐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삼다도 소식>이란 노래가 나온 때가 한국전쟁때였다고 한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때가 1954년 9월 21일이고 제주도에서 마지막 무장대원이 체포된 것이 1957년 4월 2일이니 노래가 나올 때도 4.3은 진행 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픈 과거에서 나온 말인데 육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제주를 ‘삼다도’라 부른 게 아닐까. 하기야 당시 제주에서는 4.3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였으니 육지 사람이라고 해서 뭘 알았을까 싶지만.

자연 환경 따라 집 구조가 특별하다

그런 제주에서, 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육지와 다른 결혼 관습, 그리고 돌과 바람이다. 그 중에서 바람이 제주의 집에 미친 영향이 가장 크다. 이곳 집을 보면 바람이 집 구조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 집은 바람과의 싸움이고, 바람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이런 모습이 제주 집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간략하게 제주 집의 특징을 이야기하면, 우선 바람에 관련된 모습으로 집이 높지 않고, 담과 벽이 모두 돌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화산섬인 제주도에서 돌은 지천에 깔렸으니 사람들이 돌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물려주는 것도 차이가 있다. 육지에서는 살림을 물려줄 때 방을 바꾸지만, 제주에서는 집을 바꾼다. 우선 결혼 관습과 살림 되물림에 따른 집 구조를 살펴보자.

성읍민속마을 대성전. 돌을 쌓아 바람에 대비했다. 사진=최성호
성읍민속마을 대성전. 돌을 쌓아 바람에 대비했다. 사진=최성호

육지의 집은 유교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남성 공간과 여성 공간이 나뉜다. 여성 공간은 안채고 남성 공간은 사랑채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다. 제주에서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로 집이 나뉜다. 워낙 제주란 곳이 자기들만의 세계가 강하다 보니 남녀유별이란 유교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육지에서는 시어머니가 집안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줄 때 곳간 열쇠를 넘겨주면서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옮기고, 살림을 넘겨받은 며느리가 안방을 차지한다. 이것이 집안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행위다. 그러나 제주에서 살림을 물려줄 때는 안채(안거리)에서 아래채(밖거리)로 옮겨간다. 이런 것 때문에 같은 울타리 안에 비슷한 규모의 집이 두 채가 있다. 이렇게 집을 나눠짓는 것은 대물림의 관습에 의한 것이지만, 제주의 센 바람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집을 작게 나눠짓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추운지방 역시 바람이 세다. 추운지방에선 집을 붙여 짓는다. 모든 방을 모아 한 공간에 집어넣어 외피 면적을 줄인다. 이렇게 짓다보니 규모가 커진다. 바람 영향이 커짐에도 규모를 키우는 것은 바람보다는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지는 한이 있어도 각 방의 벽을 공유해서 열손실을 줄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제주는 따뜻한 곳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집을 작게 나눠짓는 것이다.

성읍마을 부엌. 아궁이 없이 따로 불 때는 곳에서 취사를 한다.사진= 최성호
성읍마을 부엌. 아궁이 없이 따로 불 때는 곳에서 취사를 한다.사진= 최성호

제주에는 아궁이 붙은 온돌은 없다

제주의 집에서 바람 영향이 반영된 장면은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육지 집보다 높이가 낮다는 것이다. 이 역시 바람을 의식한 것이다. 바람 받는 면적이 넓으면 풍압을 많이 받는다. 초고층 건물에서는 지진하중보다 풍하중이 크다. 그만큼 풍압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이 센 곳에서는 집을 낮게 짓는 것이 유리하다. 민가뿐만이 아니다. 관아나 향교 역시 집이 높지 않다. 수원 화성 동장대와 제주의 관덕정(보물522호)은 같은 다섯 칸 규모임에도 관덕정 높이가 동장대보다 낮다. 전체적으로 높이가 육지 건물의 2/3정도다. 건물 높이를 낮추려는 노력은 기단에서도 보인다. 기단 역시 물이 실내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만으로 높인다.

이외에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바람을 의식한 것이 많다. 초가 지붕을 서로 엮어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는 것이야 이미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돌담과 돌벽 역시 바람에 대비한 것이다. 돌담이 1차로 바람을 막고 2차로 돌벽이 바람에 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방문과 창문이 대부분 널판문이다, 방문을 널판문으로 만드는 것은 창호지 문으로는 센 바람을 막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방에 불을 때는 아궁이로, 바람을 막기위해 벽으로 둘러져 있다.
방에 불을 때는 아궁이로, 바람을 막기위해 벽으로 둘러져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불을 때는 공간이다. 육지에서는 난방이 필요 없는 여름에는 부엌 밖에 화덕을 만들어 놓고 음식을 만든다. 화덕 위에는 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 가설지붕을 설치한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불 때는 공간 사방을 벽으로 둘렀다. 벽을 두르지 않으면 불을 땔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을 막지 않으면 불씨가 날려 화재가 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온돌이다. 제주에도 온돌이 있다. 역사적으로 제주에 온돌이 보급된 시기는 매우 늦다. 춥지 않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제주 집은 육지처럼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 온돌을 덥히지는 않는다. 육지야 1년에 2/3정도는 맨 온돌에서 자기 힘들다. 그러니 부엌아궁이의 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더운 제주에서 그렇게 하면 오히려 잠자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궁이 없는 부엌을 만든 것이다.

추가로 제주 집에는 굴뚝이 없다. 육지의 집을 보면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굴뚝 높이가 낮아진다. 이것 역시 기후와 관련이 깊다. 추운지방일수록 불이 잘 들여야 한다. 굴뚝이 낮으면 불이 잘 들이지 않는다. 추운지방에서 굴뚝이 높은 것은 불을 잘 들이기 위함이다. 춥지 않은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굴뚝 높이는 낮아진다. 그러다 제주로 가면 아예 굴뚝이 없어졌다. 참 육지에도 굴뚝이 없는 집이 있다.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군지촌정사(중요민속문화재 제 155호)에도 굴뚝이 없고, 외암리 민속마을에 있는 건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33호)에도 없다. 이 두 집 역시 서울보다는 춥지 않아 굴뚝이 낮아도 되는 곳이다. 그런데 굴뚝이 없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며 해충을 쫓아내기 위함이다. 여름 모깃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제주가 굴뚝이 없는 것은 온난한 기후 탓에 극성인 벌레를 퇴치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최성호 건축가

필자인 최성호는 오랫동안 한옥과 한국문화를 공부해온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s://blog.naver.com/seongho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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