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같은 사랑 노래, 치명적인 유혹의 노래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언젠가 본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적도 근방 파푸아 섬에 사는 극락조의 짝짓기 행태가 매우 흥미로웠다. ‘천국의 새’로 불리는 극락조의 수컷들은 화려한 색채의 깃털과 높고 맑은 울음소리로 암컷을 유인한다. 그 전에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적당한 높이에 관람석 격인 나뭇가지가 있고, 그 아래에 평평하게 땅을 다져놓고 지저분한 낙엽 따위를 치우는 청소까지 해놓는다. 암컷에게 구애의 퍼포먼스를 펼칠 무대인 셈이다. 드디어 주변에 암컷이 나타나 관람석에 앉자, 수컷은 무대에 나와 날개와 깃을 활짝 펼치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극락조에 비해 외양이 평범한, 매력자본이 딸리는 바우어라는 새는 극락조와는 다른 구애 전략을 구사한다. 제법 근사한, 예쁜 정원이 있는 집을 만들어 암컷을 유인하는 것이다. 새들 세상에서 짝을 유혹하는 기술은 화려한 외모, 춤과 노래 재능, 재물 과시 등 인간세상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오! 내 사랑이여, 창가로 다가와 나를 위로해다오 내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대 눈앞에서 난 죽을 것이니. 그대 입술은 꿀처럼 달콤하고 가슴엔 달콤한 갈망이 있지 (중략)”
전형적인 구애(求愛)의 가사로 된 이 세레나데 ‘Deh, vieni alla finestra’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곡이다. 단순한 곡조이지만 가볍게 출렁이는 만돌린의 반주 위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감미롭게 부르는 노래. 창 밖에서 이런 노래를 불러주는 이가 있다면 가슴 설레지 않을 여인이 얼마나 있을까만,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뭇 여성들을 농락하고 다니는 바람둥이다. 갖은 감언이설로 사랑을 호소하고는 여인을 손아귀에 넣고 나면 금세 헌신짝처럼 버리는 못된 남자다.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된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가 대본작가 로렌조 다 폰테와 손잡고 만든 작품이다. 다 폰테는 17세기 스페인의 희곡,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Don Juan)에 대한 얘기를 바탕으로 오페라 대본을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원래 제목을 ‘처벌 받은 난봉꾼’으로 하려했으나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이탈리아 식 이름인 돈 조반니로 고쳤다.
이 오페라에는 위의 세레나데 말고도 여인을 유혹하는 노래가 더 있다. “저쪽으로, 우리 손을 잡고 갑시다(La ci darem la mano)”라는 아름다운 2중창이다. 치마를 두른 여자라면 계급, 미추, 노소를 불문하고 건드린다(역시 이 오페라에 나오는 ‘카탈로그의 아리아’의 가사)는 조반니 백작이 약혼자가 있는 하녀에게 ‘다른 운명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결혼해서 귀족부인으로 만들어줄게~’라며 유혹한다. 하녀는 그 말을 선뜻 믿지 못하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에 끌린다. 사회의 규범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만을 쫒는 천하의 난봉꾼을 응징하는 내용이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고전적 단아함과 해학을 곁들인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작품이다.
가시 돋친 장미 같은 치명적인 유혹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아무리 애써도 길들지 않아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 한 번 싫다면 그만이야….(중략)
날 안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해 주지
내가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면 조심해야 돼….(중략)”
팜므 파탈의 대명사 카르멘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의 가사다.
1845년에 발표된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비제(1838~1875, 프랑스) 작곡의 <카르멘>이 1875년 3월 파리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 여주인공의 과도한 선정성, 담배를 피우고 싸움을 하는 여자들의 묘사, 무대 위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해 장면 등 매우 사실적인 표현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흥미 있는 줄거리와 활기찬 음악, 완벽에 가까운 관현악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의 공연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카르멘은 전통적인 청순가련형 소프라노 여주인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자유로운 영혼의 육감적인 집시 여인을 표현하기에는 메조소프라노의 입체적 음색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고, 극 중 돈 호세가 고향에 두고 온 소프라노역의 청순한 아가씨 미카엘라와도 대비된다. 세비야의 담배공장 여공인 카르멘은 요즘 말로 ‘껌 좀 씹는 언니’ 같은 거칠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이에 비해 보수적이고 진지한 성격의 하급 군인 돈 호세.
하바네라를 부르며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카르멘에게 마음을 빼앗긴 호세는 동료 여공들과의 싸움으로 폭행죄로 연행된 카르멘의 호송을 맡게 된다. 카르멘은 춤곡 ‘세기디야’를 부르며 호세를 유혹한다. 세비야 성벽 근처 친구의 술집에서 만나 데이트하자며 자신을 풀어 달라며 육탄공세까지 마다 않는다. 그 유혹에 넘어가 카르멘의 도주를 도와주게 된 호세는 어쩌다보니 카르멘 일행과 함께 쫒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카르멘은 다시 새로운 사랑, 남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투우사 에스카미오를 만나자 호세를 차버린다. 범법자의 신세에 사랑까지 잃은 호세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카르멘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심에 그만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작곡가 비제는 프랑스인이지만 스페인 집시풍의 이국적인 음악 요소를 오페라에 잘 녹여냈다. 또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아리아, ‘투우사의 노래’ 같은 박력 넘치는 노래들로 오페라 전체가 지루할 틈이 없다. 철학자 니체는 이 오페라에 대해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 극찬한 바 있고, 작곡가 리하르트 쉬트라우스는 “관현악기법을 연구하려면 카르멘의 악보를 보라. 버릴 음표가 한 개도 없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때는 바야흐로 봄. 천지의 만물이 제 짝을 찾아 바삐 움직이는 때이다. 이 봄에 솔로 탈출을 꿈꾸는 선남선녀들에게 세상의 돈 조반니 같은, 카르멘 같은 상대를 조심하라고 굳이 경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세상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자의 것이야~”라며 등을 떠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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