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명상과 격정 교차하는 ‘가을 소나타’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영화 가을소나타(1978년)
영화 가을소나타(1978년)

만년의 잉글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가을 소나타>라는 영화가 있다. 스웨덴의 명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1978년 작인데, 너무 바쁘고 유명한 피아니스트 엄마(샬롯) 때문에 그늘진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딸(에바)의 얘기를 잉그리드 버그만(엄마)과 연기파 배우 리브 울만(딸)이 각각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는 어느 가을날 오랜만에 두 모녀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목사의 아내로 검박하게 살아가는 에바가 집으로 샬롯을 초대한 것이다. 연주 여행차 전 세계를 순회하느라 바쁜 세월을 살아온 샬롯은 최근 오랜 연인의 죽음으로 상심한 상태. 7년 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심각한 신체장애로 요양원에 방치되다시피 했던 여동생 헬레나가 2년 전부터 에바의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샬롯. 뒤늦게 예술가로서 명성과 경력을 위해 자식들을 잘 챙기지 못해왔음에 자책감을 느끼지만, 자의식 강한 샬롯은 자신의 선택을 애써 정당화한다. 이에 에바는 무책임한 샬롯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털어놓음으로써 모녀는 감정적 회오리를 겪게 된다는 내용이다.

‘가을 소나타’라는 제목과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라서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일까 했지만, 쇼팽의 피아노곡이 잠깐 나올 뿐 결코 음악을 부각시킨 영화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두 모녀가 오래 묵혀두었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나서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두 인물의 감정선이 이중주(二重奏)처럼 펼쳐지는 영화였다.

예술가의 명성을 지키려 가정을 등한시하고 달려온 초로의 여인과 그런 엄마로부터 소외당한 채 외롭게 살아온 딸의 입장에 번갈아 빙의되었는지 보는 내내 공감의 눈물을 꽤나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가을 소나타’와 어딘지 닮은, 늦가을의 애잔함부터 감정의 격랑까지를 표현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곡도 떠올렸다.

풍부한 감성과 논리적 구조가 돋보이는 바이올린 소나타

세자르 프랑크(César Auguste Franck, 1822~1890)는 벨기에 리에즈 출생이나,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프랑스 음악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그가 남긴 작품 중 가장 유명작이자 성공작으로 베토벤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이 방면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프랑크는 자식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의지로 일찍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열다섯 살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는데, 특히 피아노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내심 작곡가를 목표로 두고 로마대상(대상을 받은 이를 로마로 유학 보내주던 프랑스의 작곡 콩쿠르)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리스트 같은 명연주가로 성공시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알려지자 그는 음악원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그럼에도 프랑크는 작곡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이 파리로 이주하게 되자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창작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음악계와 청중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였고, 대신에 오르간 즉흥 연주가로 유명해져서 리스트도 크게 칭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르간을 연주하는 세자르 프랑크. 1885년 그림=위키피디아
오르간을 연주하는 세자르 프랑크. 1885년 그림=위키피디아

오르간 실력을 인정받은 프랑크는 50세 때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로 임명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가볍고 화려한 취향의 음악에 영합할 수 없었던 프랑크는 베토벤과 바흐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고, 특히 바흐의 오르간 음악과 대위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평생을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적 내면세계를 추구한 삶의 궤적이 음악에 그대로 반영되어 엄격하고 소박한 작풍으로 종교적 깊이가 느껴지는 중후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널리 사랑받는 성가곡 <Panis Angelicus 생명의 양식>도 바로 프랑크의 곡이다.

만년이 될수록 그는 창작력이 무르익었는지, 66세 때에 처음으로 교향곡을 쓰기도 했고, 1890년엔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의 연주회에서 초연된 <현악 4중주>가 크게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성공을 기뻐할 틈도 없이 몇 달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프랑크가 음악원에서 길러낸 후배음악가들- 댕디, 쇼송, 뒤파르크, 피에르네 같은 작곡가들이 세기말 프랑스 음악의 중흥기를 가져오기도 했으니, 생전에 작곡가로서는 누리지 못한 영광을 그의 제자들이 이뤄준 셈일까.

아름다운 우정의 선물이 가져다준 성공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1886년 같은 벨기에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ene Ysaye)의 결혼 선물로 완성되었다. 이 아름다운 우정의 선물은 프랑크에게도 작곡가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등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 소나타를 헌정받은 이자이는 40년 동안이나 그의 콘서트에서 이 곡을 단골 레파토리로 연주하며 바이올린 소나타의 명불허전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프랑크에게 너무 뒤늦게 찾아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야 공식적인 콘서트(앞에 언급한 1890년의 콘서트에서 현악 4중주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됨)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하지만 이 시대의 기악소나타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솔로 악기의 반주 역할에서 벗어나 풍부한 화성감으로 선율악기와 대등한 위치에서 음악의 흐름을 이끌어갔다. 그러므로 정확하게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인 것이다.

결혼 선물로 만든 곡이니만큼 달콤한 행복감을 주려나 하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감성으로 다가오는 음악은 아니다. 고요한 사색과 격한 감정의 분출, 여기에 환상적인 색채까지 더해진 풍부한 악상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이 곡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데, 악곡의 형식 구조 또한 특징적이어서 그 당시 나타나기 시작한 순환 기법(구조적인 통일을 위해 앞선 악장의 동기, 주제 등을 뒤 악장에 반복하는 작곡 형식)을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4악장으로 나누긴 했지만, 곡 전체가 기승전결의 구성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작곡가 자신도 이 소나타의 4개 악장 간의 관계를 ‘사촌의 관계’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를테면 ‘연애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한 1악장에서는 은은한 피아노의 낮은 음으로 시작하여 바이올린이 고요하고 명상적인 주제 선율을 들려주고, 이 주선율은 전 악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순환 반복하며 나타난다.

2악장 Allegro에서는 1악장의 다소 어둡고 쓸쓸했던 분위기가 점차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듯 격정을 토해내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격렬한 교차가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한다.

3악장의 지시어는 Recitativo-Fantasia(대사를 읊조리듯, 환상곡 풍으로)로 되어있다. 이 지시어처럼 주선율이 매혹적인 피아노의 화성 위에서 때론 수심에 잠긴 듯, 때론 사랑의 속삭임인 양, 서정적인 노래를 들려주다가 환상곡 풍으로 바뀌어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며 어두운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4악장 Allegretto poco mosso는 카논형식(돌림노래)으로 되어있어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악장이다. 피아노가 리드하는 아름답고 명료한 선율을 곧바로 바이올린이 그대로 따라간다. 결혼에 도달하게 된 사랑스러운 커플이 주고받는 행복한 2중주를 연상시키며 이 곡의 절정으로 치닺는다.

유튜브 세자르 프랑크 바이올린소나타 A장조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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