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바보!...만우절 핵심 정리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장난 좋아하는 인류, 만우절에 장난끼 본능을 각국 풍습도 다양..장난에 어떤 공통점 있을까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우절(萬愚節)이 왔다. 4월 1일은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면서 즐기는 날이다. 서양에서 전래된 것이지만 이미 전 세계적 풍습이 되었다. 누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장난치는 것을 싫어하랴. 영어에서는 사전에 따라 단수형의 April Fool’s Day와 복수형의 April Fools’ Day가 모두 등재되어 있는데, 복수형인 후자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이왕이면 여러 명을 놀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만우절에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바보다’라고 쓴 종이를 친구가 한눈 파는 사이 그의 등에 써 붙이는 장난으로부터,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을 바꾸어 앉아서 선생님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골리는 장난까지 다양하다. 학생들끼리 각자 반을 바꾸고 책상 자리도 앞뒤를 바꿔서 칠판을 등지도록 앉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사월의 물고기’라는 뜻의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답게, 친구의 등에 물고기를 그린 종이를 붙이는 장난을 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수행이 불가능한 가짜 심부름을 보내서 사람을 골탕 먹인다. 다음 날에도 장난은 계속되어 종이로 만든 꼬리를 대상자의 등에 붙이거나 ‘Kick me!’(날 걷어차)라는 글을 써서 붙이기도 한다.
브라질에서는 ‘디아 다 멘티라’(Dia da Mentira)라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의 날’이라는 뜻이다. 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놀리는 일을 한다.

기원에 관한 이론도 다양하다
기록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풍습은 프랑스이다.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의 명에 따라 샤를르 9세(Charles IX)는 당시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 전국을 돌아보았다. 그때 그는 지역의 교구마다 새해의 시작일이 성탄절, 4월 1일, 5월 1일, 5월 25일, 혹은 부활절 등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를 통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1564년에 ‘루시용 칙령’(Edit de Roussillon)을 포고하여 지금의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로 정하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일로 삼고 있는 기원이 되었는데, 이후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인 그레고리력 선포와 함께 이 조처를 카톨릭 국가들에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샤를르 9세의 칙령 발효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아서 이 소식이 전파되고 정착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새해가 4월 1일에 시작하는 줄 알고 이때 새해를 축하하는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4월초는 기독교인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사순절의 종료일과 일치하여 고기 대신 생선을 주고받았는데, 아직도 4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인 줄 잘못 알고 있는, 정보 취득이 늦고 좀 어리숙한 사람들에게 새해 선물이라며 가짜 생선을 주면서 놀리는 장난을 쳤다고 한다. 이것이 만우절에 이런 사람들을 생선 그림을 등에 붙이며 놀리는 풍습이 되었다는 설이다.
이러다가 17세기에 이 풍습이 프랑스로부터 잉글랜드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가짜 심부름을 보내는 장난이었다. 1712년의 기록에 나오는 ‘All Fool’s Day’가 그것이다.
바보의 상징물도 다양하다
잉글랜드 북서부의 Cumberland(컴벌랜드), Westmorland(웨스트모얼랜드), Lancashire(랭커셔), Yorkshire(요크셔) 같은 옛 주들에서는 gosling, 즉 거위 새끼인데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버리한 모습이 쉽게 연상된다. 이 지역에서는 4월 1일이 아니라 5월 1일을 ‘거짓말의 날’로 명명하여 하루를 즐기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놀림의 대상은 메이 고슬링(May gosling)이라 불렸다.
스코틀랜드에서는 ‘Gowk Day’라고 하는데, 여기서 gowk은 본래 뻐꾸기(cuckoo)를 뜻하는 말로서 바보의 상징이다. 아마 알도 제 둥지에 못 낳고 남의 둥지에 낳아서 부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에서는 물고기이다. 만우절에 속는 이들을 일컬어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이라고 부른다. 4월의 물고기라는 뜻인데, 이는 4월이 되면 낚시하기가 매우 좋은 풍어기가 되어 강에 나가면 쉽게 물고기를 낚을 수가 있는데, 이때 찌만 갖다 대면 낚여 올라오는 물고기처럼 남의 말에 너무 쉽게 낚이는 사람들을 이에 비유하여 4월의 물고기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만우절 장난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장난의 방식, 기원, 바보의 상징물 등은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핵심 구조는 동일하다.
우선은 그 의도가 악의 없는 장난이다. 즉 장난이므로 ‘재미’가 있어야 하되, 결코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악의 없음’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난은 농담이나 거짓말, 놀림, 즉 거짓말로 속여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 놀림 당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결국은 상대를 조롱할 때 그 사람이 함께 웃어 줄 수 있을지 상상해 보고 안전할 때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저열한 방법을 쓰거나 지나치게 수치심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어로 농담을 plaisanterie(플레장트리)라고 하는데, 즐거운 말이나 일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즐거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pleasant(플레즌트)의 어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말의 ‘조롱’(嘲弄)은 ‘비웃을 조, 희롱할 롱’으로 이루어져서 그 안에 ‘비웃다’가 포함되어 있다. ‘비웃다’는 ‘비’와 ‘웃다’가 결합하여 형성된 단어이다. 이때 ‘비’는 중세국어에서쓰이던 ‘비다’라는 동사인데, ‘눈을 흘겨 뜨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을 흘겨 뜨면서 웃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우절의 장난은 눈을 흘겨 뜨면서 웃는 것이 아니고, 그 악의 없음으로 인해 그저 파안대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놀리다’는 짓궂게 굴거나 흉을 보거나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뜻인 ‘놀다’의 사역형에서 온 말이다. 다만 주로 ‘입을 함부로 놀리다’라는 표현에서 ‘조롱하다’라는 의미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무튼 최초의 출발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다’이다.
악의 없는 즐거움의 추구가 장난의 목적이므로 그 대상의 선정에도 제약이 있다. 놀림 대상은 주로 가족, 친구, 애인, 그리고 장난이 통하는 가까운 사이의 지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좀 너그러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재미와 안전함을 동시에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거나 아량이 부족한 사람을 건드렸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니까. 사실 웃자고 하는 일에 화를 내며 끝을 맺으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또한 상황을 종결할 때 반드시 이것이 만우절 장난임을 알려서 악의가 없었음을 상대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오늘 만우절이잖아!’하고 알려 준다. 영어에서는 “April Fools!”(4월 바보), 프랑스어에서는 ‘Poisson d’avril’(4월 물고기) 하고 외친다.
미디어의 가짜뉴스, 가끔은 너무 위험하다
그런데 만우절이 이처럼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장난으로 그치지 않고 미디어와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언론사들이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1965년에는 덴마크의 한 신문사가 밤에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모든 개들을 흰색으로 칠해야 한다는 뉴스를 전한 적이 있는데, 이런 정도는 다소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짜뉴스를 진짜인 줄 믿고 투자를 하거나 피난길에 오르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들도 있는데 이는 만우절 장난의 본래의 취지를 넘어서는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현대 기술의 발전은 뉴스의 진위를 가리기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2020년 4월 1일에 프랑스의 초대형 스포츠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취소하는 대신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기 위해 서울시와 논의 중이라는 기사를 ‘르 푸앵’(Le point)지가 게재했다. 행사를 연기하는 분위기이지만 코로나-19 대처 상황이 지구상에서 한국이 제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인용 보도한 인터넷 KBS발 기사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반색하는 기사였다. 나도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 믿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프랑스쪽의 기사들을 검색하다 보니 Europe 1에서 ‘놓치면 안 될 만우절 세 기사’(trois poissons d’avril qu’il ne fallait pas rater cette année) 중 하나로 이를 올려놓은 것을 보고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KBS 기사는 누가 만든 것일까? 그 특파원도 걸려든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가짜 기사를 퍼나른 것일까? 전자라면 피해자고 후자라면 공범(?)이다. 그러나 만우절 기사이기에 낚였던 사람들이 봐주고 말았다.
만우절 장난, 사람들은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요한 호이징아(Johan Huizinga)의 말대로 유희적 본능을 억제할 수 없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악의 없음, 즉 선의(善意)의 장난이라는 초심을 잃지 말자!
그런데 이 글은 만우절 장난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게 할까?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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