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축일에 벌어진 치정극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영웅 신화 벗어나 현실에 발 붙인 오페라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한 장면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한 장면

기독교의 큰 축일인 부활절을 앞두고 봄은 절정을 향한 듯하다. 나뭇가지마다 푸른 옷을 갈아입히고 꽃들을 환하게 피어내는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 앞에 서면 ‘봄은 곧 부활’임을 실감하곤 한다. 개인적으론 이 즈음에 찾아 듣는 음악이 있다. 종교적 의미를 갖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 음악 덕분에 오렌지 꽃은 부활절 무렵에 피는구나했고, 그 꽃향기가 훈훈한 봄바람에 실려 온 동네를 휘감는, 황홀경을 그려보기도 했다.

바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노래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가 그런 상상을 이끈 곡인데, 생동감과 목가적 분위기를 전하는 이 노래와 달리 오페라는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에서 부활절에 벌어진 치정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된 제목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골 기사(騎士)’를 뜻한다. 원래 ‘기사’는 귀족사회에나 있는 것이니 작은 시골 마을에 존재하지 않을 터, 그럼에도 촌에서 기사의 명예를 건 결투처럼 싸움을 벌인 것을 빗대어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 유튜브음악= 오렌지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 sui verdi)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는 열세 살 때부터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작곡에 재능을 보였다. 밀라노음악원을 다니다 중퇴하고 음악출판업자가 차세대 작곡가를 발굴하고자 개최한 단막 오페라 공모에 참여해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다. 그는 이 오페라로 단번에 유명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여러 편의 오페라를 썼지만, 이 작품만큼 빛을 보진 못하였다. 오페라의 대본은 시칠리아 태생의 작가 조반니 베르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작가는 프랑스 자연주의 사조에 입각하여 작품 활동을 한 사람이다.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오페라의 역사에서 19세기 후반의 ‘베리스모 오페라(verismo opera)’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베리스모’란 문학사에서는 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연주의’, ‘극사실주의’에 해당 되는 경향으로, 베리스모 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당시의 사회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탈리아는 19세기 내내 국가 독립과 통일을 향한 혁명과 전쟁이 계속되었고, 그 혼란 가운데 민생은 피폐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구시대적 소재, 영웅호걸이나 왕족과 귀족의 얘기를 소재로 화려한 무대를 꾸미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 노동자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자는 극사실주의 오페라가 탄생하게된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고, 벌어진 사건 또한 중대한 의미의 일은 아니다.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벌인 통속적인 사건일 뿐이다.

적나라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오페라

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1880년경, 부활절을 맞은 시칠리아 섬 어느 마을. 군에서 갓 제대한 투리두는 애인이었던 롤라가 마을의 운송업자 알피오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를 위로해주다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 이웃 처녀 산투차. 그러나 롤라가 다시 유혹하자 투리두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해 다시 롤라와 밀회하기 시작한다. 오페라의 첫 장면은 이렇게 투리두가 롤라와 밤을 보내고 어둑한 새벽에 그녀의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곧 이어 교회 종소리와 함께 동이 트고 마을 사람들은 봄의 자연을 축복하는 합창곡을 부르며 교회로 향한다.

산투차는 투리두와 롤라의 밀회를 의심하며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를 찾아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투리두가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롤라의 변심에 상처 받았던 그이를 제가 위로하며 진정시켰는데,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다니니 전 어쩌면 좋아요...”라며 시어머니 될 루치아를 상대로 자신의 처참한 심정을 노래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다.

#유튜브: 카발레리아 루스카나 Voi lo sapete, o mamma(어머니도 아시다시피), Eva-Maria Westbroek

투리두는 어디에 갔었냐고 추궁하는 산투차에게 냉랭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기 일에 관심 끄라고 한다. 이에 화를 내고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된 산투차는 이 모든 사실을 알피오에게 알려준다. 격분한 알피오는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던 투리두는 알피오가 술을 거절하며 모욕을 주자 그에게 달려들어 결투를 신청한다.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온 투리두는 어머니에게 산투차를 딸처럼 여겨달라고 부탁한 뒤 알피오와 결투를 하러 다시 나간다. 곧이어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투리두가 죽었다‘고 외친다. 성스러운 부활절의 대낮에 벌어진 일이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흐르는 서정적인 간주곡

공연시간이 1시간10분여 되는 단막극인데, 관현악이 시종 변화무쌍한 극적 상황을 암시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그런 가운데 테너의 아름다운 아리아 ‘오 롤라’를 비롯하여 평화로운 봄날을 축복하는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로 시작하는 합창,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여주인공의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부활절을 기념하는 합창 ‘성모찬가’ 등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한 ‘간주곡(Intermezzo)’이 있다. 간주곡은 말 그대로 극의 막과 막, 장면과 장면 사이에 연주되는 짧은 곡이다. 이 오페라의 간주곡은 다음 장면의 끔찍한 파국을 예상하는 가운데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느린 템포의 서정적 선율로 시작한다. 현악 파트가 주가 되어 차분하게 이어지던 선율은 서서히 상행하면서 격한 감정을 토해내듯 한껏 고조된다. 그리고는 다시 긴 여운을 드리우며 조용하게 잦아든다.

이 간주곡은 영화 <대부(3편)>에 배경음악으로도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극 중 대부(알 파치노)의 아들이 오페라 가수로 데뷔하여 시칠리아의 극장에서 마침 이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하게 된다. 대부의 온 가족이 이 공연을 보러오고, 공연이 끝나고 빈틈없는 경호를 받으며 극장 계단을 내려가는 알 파치노, 그를 향한 총구가 보이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 곡이 흐른다.

시칠리아 섬은 역사적으로 외세에 지배당하거나, 지배계급에게 심하게 수탈당하는 등 거친 운명에 시달린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주의가 강해졌고, 가족이 불명예를 당하면 반드시 피의 복수로 되갚는 일이 전통처럼 굳어져버렸다고 하는데, 이 섬을 배경으로 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피비린내 나는 마피아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 유튜브: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마침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하는 <제20회 한국소극장 오페라축제(4/23~5/8)>중 이 작품을 공연하게 되어 알려드립니다.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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