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성공과 배우 윤여정의 눈물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자이니치’에 투영된 조국분단의 모순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 컷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 컷

‘파친코’의 성공, 무모한 용기와 도전의 열매

2017년 나온 소설 ‘파친코’는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미국 및 유럽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오바마 전대통령이 페이스북으로 이 책을 추천하여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2022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애플TV+를 통해 전세계 관객들을 만난다. 이 드라마도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100%로 평가받는 등 해외 평론가들과 언론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 ‘파친코’의 성공은 재미동포 이민진 작가의 무모한 용기와 길고 긴 노력의 성과물이다. 그녀는 1989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하여 자살한 ‘자이니치’(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일본에 머무른 재일조선인 내지 재일동포에 대한 별칭) 소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 20여년에 걸친 현장 인터뷰식 조사와 연구를 축적하면서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

책 '파친코' 사진= 예스24
책 ‘파친코’ 사진= 예스24

일본인은 물론이고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기 불편한 얘기, 누군가를 매우 부끄럽게 하며 지금도 계속되는 어두운 이야기를 이민진 작가는 긴 세월에 걸쳐 파고들었다. 마침내 비참하고 칙칙한 고난의 역사를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해 내었다. 전세계가 열광하는 대서사로...

일본인들만 모르는 ‘파친코’의 역사 이야기

이 소설과 드라마의 메시지는 식민지주의, 인종차별주의,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다. 당연히 가장 불편한 쪽은 일본이다. 일본제국주의자의 전쟁범죄는 물론이고 인종차별적 악행들이 고스란히 이 소설과 드라마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계 시민들 중에 일본인에게만 애플TV+의 드라마는 완전히 가려져 있는 형국이다. 전쟁범죄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거나 가르치지도 않으며, 집단적으로 가해자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을 감안한 것일까. 일본이 거대한 애플 휴대폰 판매시장이어서 일까. 애플TV+는 일본에서 ‘파친코’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의 심기와 역사인식을 크게 흔들어 버릴 이 드라마를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파친코’에 관한한 일본은 글로벌 시대의 고립된 섬이 된 형국이다. 현재의 시즌1에 이어 시즌4까지 나온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며 확산되는 역사적 진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본사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파친코’에 흐르는 기독교 정신

이민진 작가가 소설 ‘파친코’에 일관되게 제시한 흐름 중에서 독자가 놓치기 쉬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독교 정신이다. 선자의 두 번째 남자이자 남편인 백이삭은 평양에서 내려 온 기독교 목사였다. 당시 평양은 기독교가 가장 번성한 도시로서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이삭은 남의 아이를 가진 선자와 결혼하고 오사카로 건너가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한 크리스챤이었다. 선자 가족에게 이러한 믿음은 3세대, 4세대로 이어져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꿋꿋이 헤쳐 나가게 하는 정신적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선자의 남편 이삭, 이삭의 형 요셉 및 그의 아내 경희는 아무리 가난하고 비참하게 차별당해도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현실에 영악하게 영합하여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반대편 진영, 야쿠자 고한수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파친코’에 깔린 조국 분단의 모순

두 번째는 조국분단의 모순이다. 이민진 작가의 가족사도 분단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17세에 전쟁난민이 된 북한의 원산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날 수 있는 것이 두려워 보다 안전한 나라를 찾아 그녀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당시의 재일동포들에게 그들의 조국은 과거의 조국이 아니었다. 두 동강으로 분단되다 못해 전쟁까지 벌어지자 그들은 갈수록 조국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그들의 정체성 또한 분열과 혼돈을 거듭한다. 경상도가 고향인 김창호와 같은 젊은이들은 조국의 재건설을 위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배를 탄다.

과거와 같은 하나의 조국은 없어졌고 마음 속 깊이 기댈 수 있는 반쪽의 조국도 불확실하거나 사람마다 달라져 버렸다. ‘자이니치’는 일본 현실로부터 가해지는 차별의 고통 외에 그들 마음속 정체성의 분열이 주는 정신적 고통을 품게 되었다. 조국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남북 대립과 갈등의 깊은 그림자가 재일동포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배우 윤여정의 눈물

201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강연회 질의응답에서 이민진 작가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일본에 세 종류의 재일동포가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녀의 영어 표현으로는 North Korean Japanese, South Korean Japanese, Naturalized Japanese 이다.

첫째는 본인이나 부모의 고향은 남한 지역이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북한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 또는 통일되지 않은 남한과 북한 어느 쪽에도 자신의 국적을 두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가진 ‘조선적(朝鮮籍)’이라는 사실상 무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둘째와 셋째는,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인식하고 남한 국적의 여권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들이다.

배우 윤여정은 말한다. “해방 이후 얼마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남한 정부에서는 재일동포들을 위한 지원이 거의 없었는데, (중략) 북한은 일본 내 조총련계 학교를 지원했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조총련계 조선학교에 가게 된 자이니치가 많다고 합니다. (중략) 이념보다 한국어와 한국인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인 거죠.”

그녀는 실제 ‘자이니치’ 배우인 아들 ‘모자수’ 역의 소희(아라이 소지의 한국명)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북의 문제보다 ‘자이니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HYPEBEAST 2022.3.25일 인터뷰)

‘자이니치’에 대한 부채감(負債感)

북한은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재일본 조선학교에 대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480억엔 이상의 재정적 지원을 꾸준하게 이어왔다고 한다. 현재 조선학교에는 70% 이상이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학생들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는 핍박받는 재일동포들을 지원해 주기는커녕, 1970년대에는 여러 개의 재일동포 간첩단사건을 조작하여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큰 죄를 짓기도 했다. 조국에 공부하러 온 무고한 재일동포 청년들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그들을 고문하고 감옥에서 꽃다운 청춘을 썩히게 하였다. (IPTV에서 볼 수 있는 최신 다큐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 생생히 다루어진다.) 2019년 6월에 문재인 대통령은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남한 사람은 이러한 ‘자이니치’의 현실과 속마음, 그리고 부끄러운 남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배우 윤여정의 울음은 남한 사람들이 재일동포들의 긴 아픔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負債感)에서 오는 눈물이 아닐까.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의 스틸 컷
애플TV + 의 드라마 ‘파친코’의 스틸 컷

스토리텔링의 힘, 위대한 문화의 힘

‘파친코’의 성공은 문화의 힘, 소프트 파워가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 보다 더 강력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민진 작가는 수십 명의 정치가나 역사가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전세계에 발휘하고 있다.

그 영향력의 비결은, 처절하고 아름다운 조선인 가족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으로 27개 나라의 독자들이 직접 들어가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로 체험을 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너무나 수치스럽고 취약한 역사 이야기로부터 가장 큰 영향력을 꺼집어낸 것이다.

백범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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