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적 정권교체가 제대로 되려면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민주공화제의 평가지표인 주기적 정권교체 제각각인 동아시아 4국의 정권교체 교훈 적대관계 넘어 민주공화적 정권교체 추구를
박빙대선에 뒤이은 정권교체기의 날선 대결 국면이 한국 민주공화제의 진화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을 평가하는 여러 지표들이 있지만 권위주의적 지배체제를 통해 개발국가적 불평등성장을 경험했고 아직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주기적 정권교체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특이하게도 동아시아 네 나라를 비교해 보면 주기적 정권교체가 가지는 의미가 소위 선진민주국가들과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르지만 유사한 중국과 일본의 정권교체 양상
먼저 인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단순비교가 불가능한 체제임은 굳이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세기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 채택된 이후 한때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에 완전히 편입한 듯이 보이기도 했다. 정치부문에서 일당독재체제가 지속되었고, 국가 혹은 당, 경우에 따라서는 군과 같은 공공부문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았지만, 시장중심의 경제가 완전히 정착된 듯 착시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중국몽’으로 상징되는 패권주의적 면모가 가속화되면서 덩샤오핑 이후 체제에서 굳혀졌던 2기 단위의 주석-총리 이원집권체제가 시진핑의 3기연임에 의해 수정되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고, 신장 위구르의 동화정책이나 홍콩의 급속한 복속정책,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중국의 접근방식은 민주공화국과는 사뭇 다른 인민공화국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중국식 능력주의(Meritocracy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혹은 중국식 입헌주의(Chinese Constitutionalism)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성역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민주공화제의 주기적 정부교체를 단순 비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 또한 특수한 헌정체제이다. 입헌군주국이라는 점에서 그 대표격인 영국 등과 다르지 않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그 책임을 ‘천황’(天皇)이라고 불리는 군주에게 물으면서 그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국왕은 ‘완전히’ 상징적이고 의전적인 헌법상의 지위만을 가진다는 점에서 영국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1688년 명예혁명에 의해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Kings reign but do not govern)는 헌법관행을 발전시켜 왔지만, 법적으로 국왕이 의회와 일체(Crown-in-Parliament)가 되어 주권을 가지며, 국왕은 총선에서 하원의 다수파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못하는 ‘소수파 난립’ 의회(hung parliament)인 경우 정부구성권을 어느 정파에 부여할지에 대해 일정한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등 실질적 권한행사의 여지가 없지 않다. 반면, 일본의 경우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왕은 헌법이 정한 의례적인 국사(國事)행위만 하며, 그 행위의 결정권과 책임이 헌법의 명문 규정으로 오롯이 내각에 부여되는 것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특수한 헌정체제와 별개로 하원인 중의원은 안정적으로 자유민주당(자민당)의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쳐 자유민주당이 탄생한 1955년 이후 다 합치더라도 기껏해야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6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상은 교체되고 있지만 정권교체의 의미가 사실상 퇴화된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권교체라는 차원만 두고 본다면 중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정치현실이 인상적이다. 법적으로는 복수정당제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당독재에 버금가는 1.5당체제와 같은 정치현실이라는 특징을 보여주는 셈이다.
민주화 경쟁하는 한국과 대만의 정권교체 양상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이 체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라는 기준에서 일당독재라는 사실상의 유사성을 보여준다면, 또 다른 유력국인 한국과 대만은 상대적으로 정부교체를 통해 체제발전의 동력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두 나라 모두 분단국이라는 점이나 국가의 규모나 영향력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양대 강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특수성까지도 공통될 뿐만 아니라 정부형태 차원에서도 민주공화제에 입각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틀에서 유사하다. 대통령제에 특유한 정권교체의 이원화(행정권과 의회권의 분리)라는 기준, 그리고 전통적 지배정파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정부의 교체를 넘어 정치세력 사이의 교체, 즉 여당과 야당의 교체라는 정권교체의 진정한 차원에서 볼 때도 유사한 발전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2022년 대선에서 한국의 행정권은 전통적 지배계층에 토대를 준 정당의 후보에게 맡겨지게 됨으로써 정권교체의 순환이 2번째 순환구조에 들어섰다(보수⇒민주⇒보수⇒민주⇒보수). 단지 의회권의 경우 아직 안정적으로 여당과 야당간에 1번째 순환이 마무리되지 않은 수준이다(보수⇒민주). 대만의 경우 행정권이 1단계 순환의 정점이자 2번째 순환의 준비단계이고 의회권의 경우도 행정권과 마찬가지의 순환을 보여주는 안정적 정권교체의 구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정치세력의 교체를 넘어 동성혼금지에 대한 위헌결정이나 성소수자의 내각 입각, 성평등 정치개혁의 괄목할 성장, 연금개혁과 같은 실질적 내용면에서도 시민적 자유와 공동체개혁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차원에서 대만의 민주공화제는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대만의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서 대등관계를 가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과 단순한 분단국이라는 조건을 넘어 본토출신과 현지출신이라는 구조적 차이가 정치지형에도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한국과는 사뭇 다른 정치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외생변수를 제외하고 본다면 현재와 같은 내실을 갖춘 정권교체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시아 4국의 정권교체 양상 비교가 주는 시사점
결국 정권교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동아시아 4국을 비교해 보면, 두 강대국이 일당체제의 안정성을 장점으로 삼는다면, 두 유력국이 정권교체를 통한 변화의 동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장점은 단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중국과 일본이 다양성과 체제변화에 상대적으로 약점을 보일 여지가 있다면 한국과 대만은 잦은 교체로 인한 비용과 비효율의 극복을 과제로 안고 있다. 헌정의 이상과 정치현실에서 절대선은 있을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동의되지 않을 수 있는 명제에 공감하는 것이 정권교체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성찰하는 출발점이다.
박빙대선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지역·세대·성별·이념 등 다양한 갈등기제가 극대화된 현실 때문인지, 대선이 끝난 지 한달이 채 지났을 뿐인데 정권교체기의 허니문은커녕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저급한 정치공방이 쏟아지고 있다. 동아시아 4국의 헌정 비교를 통해 도식적이나마 얻을 수 있는 정권교체의 장점을 최대화하고 약점을 최소화하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거대 정파들이 명분으로 내걸었듯 국민을 중심에 두고 무엇이 이상과 현실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안인지에 대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징으로 삼았던 핵심 의제에 대하여 한발짝씩 물러나면서 주요현안부터 협치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영국에서 야당의 헌법적 지위는 ‘국왕의 반대당’(Her Majesty’s Opposition)이다. 의회 다수파로서 행정권을 가지는 내각을 구성하는 정부를 ‘국왕의 정부’(Her Majesty’s Government)로 부르는 것에 대응하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국왕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틀 속에서 여와 야가 기능적으로 분립될 뿐인 공화적 관계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만큼 국민을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만들지 않도록 주권자 국민의 위임을 받은 권력을 민주공화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국민대표를 뽑은 목적은 서로 원수처럼 전쟁하도록 함이 아니라 국리민복을 위해 서로 타협하고 제대로 정치를 하라는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누구든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임을 최근의 헌정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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