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고 책임지면 돼”의 무책임성
[최성호의 건축으로 보는 한국] ‘정조’, 치밀하고 지성 돋보인 성군 윤, 집무실 관저 이전에 ‘임기응변’만 치밀한 준비없는 취임, 무책임하지 않나
치밀한 성격에 노력형 ‘정조’
돌아가신 목수(木壽) 신영훈 선생께서 조선왕 27명 중 신하를 가르칠 수 있는 왕은 세종(4대왕)과 정조(22대왕) 뿐이라 했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세종과 정조는 독서광이라고 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것만으로도 대학자가 되고도 남을 왕들이다. 그러니 업적도 많다. 세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조도 치세기간이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오죽하면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까.

정조가 이뤄 놓은 업적 중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것이 수원 ‘화성’이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는 수원 화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정조의 능력을 가늠하며 수없이 감탄했다.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끝없는 공부와 연구, 인재를 키우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포상과 처벌, 애민사상 등은 남달랐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적으로도 영민했다. 사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데다 치밀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유가에서 말하는 성군(聖君)으로서의 자질을 가졌고, 스스로도 그렇게 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정조는 매우 치밀해서 하고자 하는 바를 실행할 때 머리 속에 프로그램을 다 짜놓고 차근차근 실행해간다. 그런 예를 보자. 사도세자 묘인 ‘수은묘’를 영우원(사도세자 초장지)으로 올리고, 현륭원으로 이장할 때까지 정조가 보여준 모습은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사람인지 알게 해준다. 현륭원을 조성할 때 부마인 금성위 박명원이 영우원을 다시 조성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마자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한다. 박명원의 상소가 올라온 날, 정조는 신하를 모아놓고 그간 검토한 내용을 이야기한 후 그 자리에서 서유방을 경기관찰사로, 조심태를 수원부사로 임명하여 현륭원 조성임무를 맡겼다.(조선왕조실록 정조 13년 7월 11일)
이렇게 시작한 현륭원 조성공사는 수원부 읍치를 옮기는 것까지 하는 큰일이었음에도 3개월 후인 10월초에 완료하고 10월 16일에는 정조가 가서 제사를 올렸다. 필자 짐작으로는 정조가 현륭원을 만들 준비가 되자, 금성위 박명원을 시켜 상소를 하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 이어진 현륭원 원찰인 용주사를 새로 지은 것 역시 명목상으로는 건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정조가 건의를 사주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륭원 조성이 모두 정조 계획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현륭원이 완공된 후 조포사를 지어야 된다는 건의(정조 13년10월17일)가 올라오기 두 달 전인 8월14일, 정조는 화원인 김홍도와 이명기를 사신에 붙여 중국에 보냈다. 그리고 중국에 다녀오자 곧 용주사를 짓는데 보낸다. 그 결과 현륭원 원찰인 용주사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서양화 기법이 들어간 후불탱이 제작된 것이다. 용주사를 지을 계획이 없었다면 화원인 김홍도와 박명원를 중국에 보낼 이유가 없었다.

화성 조성도 마찬가지다. 1790년(정조 14) 6월 10일 부사직(副司直) 강유(姜游)가 수원부에 성을 쌓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3년 반의 검토와 준비를 거쳐 화성 공사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착공한 지 2년 8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그간 더위와 추위 때문에 공사를 멈춘 것을 고려하면 2년 2개월 만에 공사를 마친 것이다. 준비기간 동안 정조는 정약용에게 중국에서 구입한 책을 주면서 성을 짓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게 해 성설(城說), 옹성도설(甕城圖說), 포루도설(砲樓圖說), 현안도설(懸眼圖說), 누조도설(漏槽圖說), 기중도설(起重圖說)을 쓰게 했다. 이것은 그대로 화성축성에 반영됐다. 만일 준비가 치밀하지 못했다면 2년 8개월 만에 공사를 끝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열심히 하면 돼”라는 윤 당선자의 말
정조를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 며칠 전 ‘유퀴즈(유 키즈 온더 블럭)’라는 TV프로그램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나와서 한 말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윤 당선자는 “열심히 하고 거기에 따른 책임과 평판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른 사람이 정조였다. 조선왕조에서 세자로 책봉되면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한다. 이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엄청난 책을 읽고 세자를 가르치는 선생과 끊임없이 토론을 하면서 왕으로서의 자질을 쌓아간다. 그런 과정이 있음에도 세종이나 정조 같은 성군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윤 당선자, 과연 그런 훈련이 됐을까? 그래 왕조시대와는 다르니 역대 대통령 누구도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가 다르니 그런 훈련과 교육은 받지 않았어도 스스로가 제왕이 되는 꿈을 꿨다면 평소에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윤 당선자가 국민들 앞에 제대로 보여진 것은 검찰총장으로 지명받으면서부터다. 그 이후 행적을 보면 감히 정조와 비교한다는 것이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먼저 필자의 직업인 건축설계 얘기를 잠시 언급해보겠다. 설계를 시작하면 이런저런 것을 고려하며 계획을 세운다. 무작정 결론부터 내놓고 하는 경우는 없다. 유능하고 경력이 많은 건축가라면 설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살펴 초기계획에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해’ 하면 어떨까? 설계는 시간만 끌다가 납품시간을 넘기는 것은 물론이요 결과도 형편 없어진다.
앞에서 정조는 모든 것을 사전에 세밀하게 준비하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프로그램 하에 실행한다고 했다. 그런데 윤 당선자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계획이란 것이 아예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목표를 설정하면 모든 것을 목표에 맞추는 것이지 목표가 실행 가능한 것인지,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무리는 없는지 살피지 않는 듯하다. 무작정 달리는 기관차 같다.
대통령직 잘 수행할 준비되어 있나
이런 모습이 대통령 집무실, 관저 이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를 5월 9일 0시에 개방한다는 것만 있지 세밀한 준비가 없었다. 이런저런 지적이 나오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을 할 뿐이다. 그러니 정말 이전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깊어진다. 대통령 관사도 그렇다. 처음에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관사를 관저로 사용하겠다고 했고, 여기서 출퇴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취임 때까지 입주가 어려울 것 같아지니 당분간 지금 사저에서 출퇴근한다 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사용하려던 육군참모총장 관사 건물에서 비가 샌다고 하더니 이젠 외교부 공관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외교부는 날벼락을 맞았다. 부랴부랴 새 공관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과정을 보면 세밀함은커녕 ‘그냥 하다보면 해결책도 생기겠지’ 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우왕좌왕이다. 그래 이것은 대통령직 수행에서 부차적인 것이니 그렇다 치자.문제는 대통령, 조선으로 보면 왕으로서 윤 당선자가 등극할 준비가 됐느냐다. 대선토론에서 당선자의 지적 한계를 봤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 하겠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정조는 화성 축성의 전 과정을 꿰뚫고 있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정조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주방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고 했다. 경영하는 사람은 가장 핵심부분은 정확히 알고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 당선자의 지식은 어느 정도일까? 윤 정부는 탈원전정책 폐기를 공약했고 그렇게 할 것이다. 유럽이 탄소중립의 에너지에 원전을 항목으로 넣었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유럽이 요구한 전제조건인 ‘영구적인 사용 후 핵연료보관소 확보’라는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은 결코 쉽지 않다.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역사에 빛나는 군주와 시작하지도 않은 윤 당선자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열심히 하고, 거기에 따른 책임과 평판을 받으면 된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계속 남는다. 지금은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만일 열심히 한 결과가 자기 생각과는 달리 온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정말 대통령직을 수행할 준비가 됐는지 윤 당선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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