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방 꾸미기, 아이가 결정하게 하라
[권은순의 ‘집, 돈보다 행복이다’] 아이방 구조, 넓은 시야와 자유로움 느끼게 책상은 벽 아닌 문을 보게..주체성 키우기 부모가 아이 감시하기 쉬운 구조는 안돼
아빠, 엄마 팬티를 왜 봐야해?
새로 큰 아파트를 장만해서 이사를 한 후배의 집에 갔다. 마침 후배 부부는 나에게 새로 이사한 집의 가구와 그 외 필요한 것들을 골라달라고 요청해 왔기 때문에 이 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그집 큰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방 베란다에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빨래건조대가 보이길래 다른 쪽 베란다로 옮기도록 권했다. 아파트가 꽤 컸기 때문에 옮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
“왜요?”라고 후배는 물어왔고, “왜 아들이 매일매일 아빠, 엄마의 팬티 널어놓은 걸 봐야 해? 파란 하늘을 바라보게 해 주자”라고 필자는 답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건축가이신 유명한 분이 모 신문의 기고글에서 “위대한 건축가의 작품 밑천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풍경”이라고 했다. 그가 스페인에서 건축공부를 하는 유학생들이 모인 자리에 가보면 한국 학생들은 시작단계에서는 주목을 받지만 설계최종안을 낼 즈음이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는 반면 그 나라의 학생들은 별 것 아닌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것 같아도 최종 단계에서는 그럴싸한 디자인으로 마무리를 짓는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그들끼리 내린 결론이 “역시 어려서부터 좋은 곳에서 살며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자란 사람이 설계도 잘 한다”였다고 한다.
아이방을 기습하는 ‘엄마의 루틴’ 버리기
여기서 좋다는 것은 화려한 것, 비싼 것이 아닌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고,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본인으로서는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고 기고글에서 고백했다. 그는 스페인의 가우디의 건축도 알고 보면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자연 환경과 관련이 많아서, 기이해 보이는 그의 건물 역시 결국은 어려서 보고 자란 풍경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건축을 예로 들었지만 비단 한 분야에서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당연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아파트와 그 비슷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지만, 그 안에서 아이에게 좀 더 창의적인 공간을 연출해 줄 수는 없을까?
필자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난 후, 아기 방에서 학생 방으로 바꾸면서 했던 것 중에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아이의 책상과 침대 등의 가구 배치였다. 흔히 침대는 벽 쪽에, 책상은 그 옆의 벽을 향해서 배치하지만 나는 책상을 배치하면서 새로운 각도를 찾아내고 싶었다. 우선 아이가 많은 시간동안 벽을 향해 있는 것보다는 조금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기주도적이며 안정감 있는 배치를 위해 벽을 등지고 문 쪽을 바라보고 앉도록 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엄마들이 간식을 준다며 과일 접시를 든 채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감시한다는 얘기를 많이 접했지만, 나는 아이가 본인의 방에서 스스로 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가구배치도 아이가 결정하게 한 후에...
또한 가구를 고르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본인의 방 디자인과 가구 배치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몇 개의 예로 볼 수 있는 사진을 보여 주고 고르도록 했다. 아이는 꽤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그렇게 결정해서 꾸민 방에 대해 ‘자신의 방’이라며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방을 갖게 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방도 새로 꾸몄으니 뭔가 새로운걸 해 보면 어떨까?”라고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엄마, 뭐 할까?”
“글쎄~, 뭘하면 좋겠니?”
사실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아이가 했으면 하는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하고 6월이 지나가고 있었으니 당연히 엄마인 나는 아이가 공부의 습관이 잘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도 그냥 공부를 하라고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을 먹도록 하고 싶어서 얘기를 유도했던 것.
아이는 가만히 잠깐 고민을 하다가,
“뭘할까?” 하고는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음, 엄마는 네가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영어 듣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해볼까?”
“그래, 그럼 한번 해 봐. 근데 엄마가 안 깨우고 네가 알람시계 해 놓고 일어나는 게 좋겠는데.”
“한번 해보지 뭐.”
“그리고 끝나면 엄마를 깨워줘.”
“좋아요”
그렇게 해서 아이는 다음날 아침부터 내가 일어나는 아침 7시보다 30분을 먼저 일어나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놓고 영어 듣기를 한 후에 어김없이 아침 7시가 되면 엄마 방문을 두드려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집의 아침은 아이가 엄마를 깨우는, 남들이 들으면 희한하다고 하는 루틴으로 시작됐다.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새로운 방을 꾸며 준 것을 계기로 아이가 하고 싶은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이후로도 우리 부부는 아이의 생각을 알아내고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잔소리를 대신했다. 경험상 잔소리는 별 효과가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심지가 굳어 보이는, 뭔가 본인이 마음을 먹으면 꼭 하는 아이, 그래서 불확실했던 자신의 미래도 스스로 결정한 아이,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되어 본인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고 주변을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아이, 공간이 그런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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