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와 케네디가 실패한 이유
[박정인의 언론 비평] 합스부르크가의 몰락은 근친혼 탓 케네디 엘리트들, 베트남전 허우적 윤석열정부, 실력보다 ‘다양성’ 중시해야
‘근친혼의 저주’ 합스부르크
알프스 시골의 그저 그런 집안이던 합스부르크가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1세가 나온 건 교황과 제후들 사이의 정치적인 담합 때문이었다. 누구도 위협할 주제가 못되는 일종의 ‘바지 황제’를 고른 것이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집안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슬금슬금 오스트리아를 집어 삼키는가 싶더니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카를 5세가 중부 유럽 대부분과 스페인까지 호령하는 대제국을 완성했다.
유럽 전역에 분산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가 선택한 방법은 뜻밖에 ‘근친혼’이었다. 일가친척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계산이었으리라. 삼촌과 조카 같이 상당히 가까운 근친간의 결혼이 성행했다. 펠리페 2세와 펠리페 4세가 조카와 결혼한 대표 사례다.
근친혼이 이어지면서 유전적 결함이 자꾸 발현됐다. 체코의 프라하 성에 가면 과거 체코를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들의 초상화가 주욱 걸려 있는데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병적으로 심한 주걱턱을 갖고 있다.
결함은 턱 뿐 아니라 왜소증, 구루병, 불임, 정신박약까지 다양했다. 당시 생활이 팍팍하기 그지없던 평민 아이들 10세 생존율이 80%였는데 잘 먹고 잘 사는 왕자 공주들 10세 생존율이 오히려 50%에 그쳤다는 사실이 근친혼의 저주를 대변해 준다.

스페인은 100년동안의 변화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에 짓기 시작해서 지금도 진행형이다. 설계자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이 목표다. 건물이 1/4쯤 지어진 1926년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뒤 수비라치가 후임자로 공사를 이끌었다.
성당을 바라보면 가우디가 짓던 부분과 수비라치가 지은 부분의 조형적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경복궁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붙여놓은 모양새랄까. 두 거장 사이의 예술적 관점 차이가 극명하다. 우리 같으면 가우디의 후임을 뽑을 때 “수비라치 씨는 됐고”하면서 이력서를 휴지통에 버렸을 것 같다.
하지만 스페인은 달랐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지을 성당인데 일관된 모양새를 갖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냐는 논리였다. 기독교와 이슬람 전통에 아프리카 정서까지 비빔밥처럼 뒤섞인 스페인 문화의 특성 덕이라고 추측해 본다. 여기서 가우디와 수비라치 뿐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와 후안 미로와 살바도르 달리가 나왔다.

삼성에서도 ‘다양성 효과’
대기업 임원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의외로 지방대가 많다. 이른바 SKY 출신과 지방대 출신의 비율이 비슷한 곳도 있고, 임원의 절반이 지방대 출신인 경우도 보인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에게 물어봤다. “생각보다 지방대 출신 임원이 많네요.” “그렇죠. 절실함 때문 같아요.”
지방대 출신들이 SKY 출신들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몇 배 더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히 높은 성과를 올린다는 설명이었다. 서울대 출신들끼리만 모아놓으면 절실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대와 지방대 출신들이 부하직원을 다루는 리더십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부하의 고충을 배려하는 자세가 그렇고, 업무를 설명해주는 방식도 지방대 출신의 장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대 출신들은 부하직원들이 도대체 왜 일을 잘 못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나…
기자시험은 언론고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니 SKY 출신들의 비율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요즘 세태로 미뤄 SKY를 나왔으면 도심 아파트에 살 확률이 높고, 부모의 소득수준도 중상급인 경우가 많다. 이런 수습 기자들은 서민들의 땀냄새 나는 기사를 잘 취재하지 못한다. 성장 배경이 뉴스를 보는 시야를 좁히는 것이다.
언론사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면접관들이 출신대학을 알 수 없게 하는 방식이었다. 면접 중에 “저는 신림동에 사는데 학교가 바로 근처여서 편했습니다” 같은 말조차 금지했다. 그랬더니 합격자 명단에 처음으로 서울대가 한 명도 없었고, 지방대 출신이 이름을 올렸다. SKY는 고대와 연대 각1명씩 뿐이었다. 그 기수들이 가져오는 기사는 과거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케네디, 엘리트들의 실패
케네디 행정부는 ‘하버드 동창회’라고 불릴 만큼 엘리트의 집합소였다. 미합중국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인재들이 모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자신은 물론 법무장관을 맡은 친동생 로버트 케네디 역시 하버드를 나왔다.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짜냈지만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책상머리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실패사례라고 지적한다. 상대는 별로 잃을 게 없고, 손이 없으면 발, 발이 없으면 몸으로 기어서라도 생존하는 경험이 몸에 밴 북 베트남 게릴라들이었다. 어떻게든 외세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절실함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평생 아쉬움 없이 살아온 하버드 출신이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 melting pot이라는 미국의 최대 장점을 정작 백악관과 행정부가 살리지 못한 셈이다. 역사라고 해봐야 250년도 채 안 되는 미국이 벌써 80년 넘게 슈퍼 파워로 군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민자들을 통해 다른 나라의 수 천년 역사와 전통을 다양하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게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미래 먹거리가 없다는 점과 양극화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미래 먹거리.
자원도 없고 인구는 줄어드는 나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방법은 창의뿐이다. 창의의 원천은 다양성이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매일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치고 비슷한 생각만 반복해서는 창의가 나올 수가 없다. 학력과 경력보다 조직에 새로운 경험을 소개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양극화 해소에 다양성이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과거 우리경제는 대낮에 들판을 빨리 달려서 가장 멀리 간 사람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서울대 나오고 똑똑한 사람이 유리했다. 하지만 어느덧 들판은 쪼그라들었고, 험한 비탈길이 앞에 버티고 있다. 더구나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험한 산길을 나 혼자 잘났다고 말 타고 달리다가는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여럿이 함께 손잡고 가야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다리가 불편해 못 걷는 사람도 있고 눈이 어두워 앞을 못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이 가려면 속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만약 눈이 어둡지만 다리가 튼튼한 사람은 걷지 못하는 사람을 업어주고, 업힌 사람은 마침 밤눈이 밝아 앞길을 멀리 내다볼 수도 있다면 어떨까? 느리지만 안전하다. 1등만 앞서가는 것보다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손잡고 가는 게 양극화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지름길이다.
이 정도 군불을 땠으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채셨을 터. 빌 클린턴이 대선 과정에서 아버지 부시에게 외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패러디해서 새 정부를 향해 “문제는 다양성이야!”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윤 대통령 엘리트 내각 ‘우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인선을 두고 해방 이후 ‘서육남’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한다. 서울대 출신, 60대, 남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형평성이나 안배 같은 것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뽑았단다. 서울법대 동기 중에 입학 수석과 졸업 수석이 내각과 청와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니 케네디 행정부 뺨칠 수준이다.
이 분들이 고졸 학력으로 창업을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민을 이해할까? 청년들은 취업난인데 중소기업은 인력난인 이유를 알고 있을까? 쪽방촌에 사는 독거노인에게는 겨울 추위보다 한여름 더위가 더 큰 위협이라는 사실은? 남자들끼리 ‘출산이 애국’이라고 농담하면서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챙겨 보기는 했을까?
우리 사회는 서울대 출신 60대 남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슈를 안고 있다. 잘 나가는 관료, 교수, 검사가 책상머리에서 짜내는 아이디어가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를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봐왔다.
결식아동 대책이 그렇다. 처음에는 아예 엘리트 관료들의 예산 배정 순위에 들지도 못했다. 그러다 여론이 움직이니 담당 부처가 머리를 짜내서 동네 식당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나눠줬다. 동네 식당들은 식당 물 흐린다고 쿠폰 들고 오는 아이들을 구박했다.
더 머리 좋은 공무원이 편의점 기업과 제휴해서 신용카드와 구분이 안 되는 전용 카드를 만들어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지방 곳곳에는 한 시간을 걸어가도 편의점이 없는 동네가 수두룩했다. 자기가 결식아동이었거나, 그런 친구를 뒀거나, 문제의 현장을 가봤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사람의 두뇌는 한계가 있어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모든 해법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휠체어 탄 장관이 한 명 나와야 그제서야 공공기관 출입구에 장애인용 통로가 생긴다. 여성 장관이 여럿 나와야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정책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황당한지 국무회의가 고민하게 된다.
실력보다는 ‘다양성’이 키포인트
오직 실력으로만 청와대와 내각을 구성하려는 판단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평성과 안배를 긍정적인 뉘앙스로 재해석하면 그게 바로 다양성이다. 실력이 뛰어나도 다양성이 부족한 조직은 유연하지 못하고, 배려심이 떨어지고, 창의성이 결여된다. 사그리다 파밀리아로 승화하지 못하고 합스부르크의 비극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대 출신 임원을 발탁하는 기업과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언론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항상 소비자와 독자를 상대하면서 어떤 인재 구성이 효율적인지 예민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정부는 그러기엔 너무 경직돼 있다.
서울대를 나오기는 했지만, 사시를 9수나 하고 검찰에서도 냉탕에 자주 드나들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다르기를 기대했는데 아쉽다.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여성 혼자 작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온갖 갑질을 겪었을 부인 김건희 씨의 경험이 내각이나 참모 가운데도 있었으면 했는데 역시 아쉽다. 늦었지만 앞으로 후속 인사에서는 울긋불긋하고, 들쭉날쭉하고, 무지개 같은 다양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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