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시대정신, “87년체제 청산”될까

[박정인의 정치평론] 선거때마다 주목받는 ‘시대정신’ ‘낡은 질서·기득권의 퇴장’ 요구 커 신당 성공, 유권자의 쇄신 열망에 달려

내년 4월 치러질 22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시대정신'을 선택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내년 4월 치러질 22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시대정신'을 선택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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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난독증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18대 대선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권교체, 부정부패척결, 노무현 정신의 부활 같은 주제들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연장은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시대에 독재자의 딸이 다시 청와대 주인이 된다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박 후보 당선의 당위를 뒷받침하는 논리라고 해봐야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 지도자를 배출할 때가 됐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승리는 모두가 아는 대로 박근혜 후보에게 돌아갔다. 50, 60대의 전폭적인 지지가 동력이 됐다. 특히 50대는 89.9%라는 경이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병원에 입원한 중환자 빼고 다 투표장에 몰려갔다’는 우스개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시대정신은 ‘올드 보이의 귀환’이었다. 젊음에 밀리고, 노후가 불안하고, 성장의 일꾼이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세대가 정치권을 향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그라운드가 기울어졌다’거나 ‘고령화로 진보의 영역이 좁아지고 있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20대 총선의 시대정신을 보수, 안보, 성장, 고령화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거 당일 아침 청와대 비서실의 대통령 보고도 새누리당의 여유 있는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도권 참패로 122석짜리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1당이 된 민주당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에게 텃밭 호남을 송두리째 뺏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시대정신은 자연스럽게 ‘대안을 찾아서’로 정리됐다.

87년 체제 이후에 총선 10번과 대선 8번이 치러졌지만 선거 전에 예측한 시대정신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태풍 같은 민주화의 열망 속에 치러진 87년 대선부터가 그랬다.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밤새 파티를 벌이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쿠데타 정권의 2인자가 대통령이 돼 있었다. 외환위기로 경제가 파탄나고, YS 정권이 부패 스캔들로 자멸하던 97년 대선 때도 선거가 임박할 때까지 DJ가 대통령이 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선거 다음 날이 밝고서야 시대정신은 ‘정권교체’로 기록됐다.

‘87년 체제의 퇴장’이 올까

선거의 시대정신을 예측하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유권자의 마음이란 구미호와 같아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좀처럼 실체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예측에 도전해 보는 게 정치인, 평론가, 언론의 습성이니 총선이 넉달 남짓 남은 지금 다시 한번 실패할 예측을 시도해 본다.

필자가 예측하는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은 ‘87년 체제의 퇴장’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에서 민주가 승리한 87년 체제로는 더 이상 풀 수 없는 과제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아졌다는 뜻이다. 개발독재 시절부터 이어온 성장의 고속도로가 끝나고 이제는 험한 산길만 남았다. 그동안 파이가 계속 커졌기 때문에 묵인했던 많은 이슈들을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꼼꼼히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명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조목조목 지적했듯이 한국 민주주의는 87년 체제를 통해 절차적인 완성(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을 이뤘지만 그 이후 얼마 못 가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됐다. 제도는 안정됐지만 이념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 실현에만 몰두한 탓이라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도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과제가 양극화의 심화이다. 대치동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모는 포르셰를 타고 수 백만 원짜리 ‘초딩 의대입시 준비반’에 다니는데, 전국 곳곳에는 결식아동이 수 십 만에 이르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란 명패가 무색하다. 양극화는 진보 보수 어느 정권도 해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폭탄의 위력만 키워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회의 균등에 대한 갈증 역시 폭발 일보직전이다. 기득권과 특권에 대한 인내심이 고갈됐다. 공교롭게도 진보쪽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이 고갈의 경고등을 켰다. 특권을 하나라도 더 누린 건 집권 기간이 긴 보수일텐데 정작 경고등이 켜진 곳은 민주당이었으니 진보가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희숙이 말한 ‘20년 억대 연봉 송영길’은 기득권과 특권 이슈가 더 이상 보수만의 아킬레스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한다.

대중이 ‘기득권은 가라’고 외칠 때 구들장 무너지는 소리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쪽에서 (심지어는 정의당에서도) 들려올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는 깨진 지 오래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치며 87년의 기득권 인사들이 스스로 퇴장하는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청산을 목표해야

새로운 사회 이슈들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판단과 정성 담긴 소통을 요구한다. 젊은이와 노인이 앞다퉈 일자리를 원하는데 칼로 두부 자르듯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여성과 남성간 경쟁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과거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성소수자 인권 문제도 휘발성 강한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노인 복지는 위기를 넘어 재앙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다. 합계 출산율은 인구학자들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0점 대로 접어들었다. 완만하게 아파트 값을 올리면 부동산 정책은 만점이던 시절도 지나갔다. 20, 30대의 대부분이 내집 마련을 포기하는 대신 수입차로 출퇴근하고 해마다 해외 여행을 간다. 경제 정책의 본질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가라앉는 국가경쟁력은 정부가 경기부양책 같은 걸 써서 해결할 단계를 지났다. 세계는 이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이 지배하는 시대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화성에 보낸다질 않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나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대 법대와 경제학과를 나와 고시에 패스한 경제관료들이 경제를 ‘설계’하던 시대를 그리워할 때가 아니다. 굳이 설계하려면 한국의 애플이나 구글을 창업할 인재 양성 방안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87년 체제는 너무 낡아서 그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사실 ‘87년 체제의 퇴장’은 시기적으로 지난 해 대선의 시대정신이 되는 게 더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휩쓴 게 오히려 기회였다. 정상상황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던 변화와 혁신이 비상상황이어서 가능했다. 정치도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판갈이를 시도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정치이슈와 후보에 매몰돼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이 ‘87년 체제의 퇴장’이라는 필자의 생각은 분석이라기 보다는 절반쯤 기대가 섞인 전망이다. 선거의 시대정신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엎드려 숨어 있다가 검푸른 새벽 동녘에 해가 불쑥 떠오르 듯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선거를 넉 달 남짓 앞둔 지금도 여명이 시작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에도 개표가 끝난 뒤 확정된 의석 분포를 보고서야 시대정신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정신이 낡은 질서의 퇴장이라고 동네마다 벽보를 붙여도 분위기 상 기존 정당들이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물갈이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586이나 중진 몇몇이 그만 두는 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번에도 이른바 새 피를 수혈하려고 애쓰겠지만 항상 따라 붙는 조건이 있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 말 잘 듣는 새 피는 아무리 젊어도 의미가 없다. 혈액형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맨 뒤)가 지난 11월 11일 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과 회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용태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맨 뒤)가 지난 11월 11일 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과 회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용태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페이스북 갈무리

신당의 성공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신당 가능성에 눈길이 간다. 기업으로 따지면 스타트업이다. 문제는 성공하면 대박인데 성공할 확률이 너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신당 가능성에는 항상 느낌표 다음에 물음표가 붙는다. 금태섭이 지난 여름 수도권 중심 신당론을 꺼냈을 때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신본당을 자처한 JP나 민주당 자중지란의 덕을 본 안철수 정도 아니면 신당이 대박을 터뜨리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수도권에서…

이번에는 이준석이 신당의 깃발을 올릴 채비에 나섰다. 연말쯤 실행에 옮기는 걸 목표로 발걸음이 바빠졌다. 금태섭 신당 보다는 주목도가 높다. 거대 정당의 대표로서 정치력을 입증했고, 대통령과 맞대결 한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공략하겠다는 목표가 무모해 보이면서도 신선하다. 다른 신당처럼 잘 안될 가능성이 높기는 한데 상품이 매력적이고 만에 하나 성공하면 대박이 기대된다.

이준석과 금태섭이 손을 잡으면 가능성은 배가 된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뛰쳐나온 신세대가 손을 잡는 셈이다. 굳이 세대로 분류하자면 87년 체제 세대의 뒤를 잇는 ‘정권교체 이후’세대다. 정권이 바뀌는 걸 신기해 하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겁이 없다.

이들에 더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대립하는 비명계 일부의 합류를 기대할 수도 있다. 비명계는 이미 이재명이 자기들 지역구에 꽂은 저격수들과 개딸의 성화에 지칠대로 지쳤다. 중간지대가 희망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옮길 수 있다.

이준석-금태섭 연대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이념의 한계를 넘어 새 정치를 구상한다 하더라도 생각이 너무 다르면 곤란하다. 이준석은 ‘신당이 외연을 확장하는 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폭을 넓히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금태섭이 국민의힘 내 우파까지 아우르려는 이준석과 손을 잡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클리셰가 여전히 클리셰로 살아 있는 이유가 있다. 정치는 상상력의 예술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꿈에라도 DJ와 JP가 손잡고 정권을 탄생시키리라고 생각했겠는가. 마침 이준석의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저와 금태섭 전 의원 간의 차이가 DJ와 JP보다 클까요?”

둘이 손 잡을 수 없는 이유를 말 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소재가 젠더 이슈에 대한 관점이다. 누구는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금태섭과 부당한 남성 차별을 비판하는 이준석은 같이 갈 수 없다고 한다. 이 말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가능성으로 느껴진다.

둘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정치를 뒤덮고 있는 증오, 반목, 사생결단이 아니라 정책 비전 차이라는 사실이 반갑다. 이준석은 ‘젠더문제를 감정이 아닌 정책으로 말하면 얼마든지 금태섭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선택지가 많은 선거가 되길

이준석과 금태섭이 만드는 신당의 성공에 가장 큰 걸림돌은 뜻밖에 유권자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보수정당 책임당원이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이다. 정치신인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4년 내내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하다가도 투표장에 가면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기존 정당에 표를 던진다. 유권자의 이런 투표성향이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밑거름이지만 신당에게는 장벽일 수 밖에 없다.

신당의 성공 목표는 교섭단체 구성 정도로 잡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선거를 치른다면 변수는 비례대표다. 거대 정당들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를 부릴지 여부가 신당의 의석 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론에 밀려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할 경우 신당의 교섭단체 구성에는 파란 불이 켜진다. 교섭단체를 구성해 원내 3당이 되고 여야 어느 쪽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금상첨화다.

이준석이 몸값을 잔뜩 올린 뒤에 정권과 거래해 당으로 돌아갈거라고 예측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전망과 희망이 섞인 의견이다. 하지만 이준석은 집을 떠나 너무 멀리 와 버렸고, 그를 되돌리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대가는 공천권이다. 자기 정권의 명운을 결정할 총선의 공천권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준석은 여기까지 달려와서 회군하려면 지지자들을 설득할 충분한 명분이 필요하다. 윤핵관 공천 배제를 포함한 상당한 규모의 공천권은 필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유권자들이 개인과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고, 그 결과로 선출된 공복들의 다짐을 받는 이벤트다. 축제가 즐거우려면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야 한다. 87년 이후 우리 사회를 지탱해 준 민주주의가 36년 만에 2세대로 업그레이드하는 축제라면 더욱 그렇다. 축제에 찾아온 유권자들이 탐나는 선택지가 하도 많아 골치 아플 정도로 다양성 넘치는 선거를 기대한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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