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메가시티 구상: 강력한 파괴력, 더 강한 위험성
[박정인의 정치 평론] 구상은 들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했지만 민주당의 대응은 안타까울 정도다. 용산의 입장은 아직 드러나지 않아 이준석 신당으로 파괴력 제한될 수도
국민의힘, 왜 김포를 노리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경기도 59개 선거구 가운데 불과 7군데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민주당은 51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고양갑 한 군데만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게 내줬다. 현재 국회 의석분포를 보면 민주당 168석, 국민의힘 110석이다. 두 정당간 의석수 차이는 58석. 경기도의 민주당 의석 51개 가운데 29석을 국민의힘이 탈환하면 두 당의 의석 수는 같아진다.
총선마다 영호남의 의석분포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승부처는 의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서울과 경기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경기도는 급격한 개발과 이에 따른 인구유입으로 유권자 성향의 변화가 큰 곳이다.
논밭이 아파트로 변하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다. 대표적인 지역이 구리, 남양주, 하남, 그리고 최근의 핫 플레이스 ‘김포’다. 인구 48만 6천명. 10년 새 20만명 늘었다. 민주당 텃밭에 인구성향 변화가 생기면 국민의힘에게 꿈이 열린다.
그 가능성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반짝했다. 국민의힘 출신 김병수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당선되자마자 ‘김포 서울 편입’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김 시장은 “김포 시민의 85%가 서울로 출퇴근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인구가 아니라 서울로 출퇴근하는 가족이 있는 가구의 비율을 그렇게 표현한 것 아닌가 싶다. 통계가 아니라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현상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벌어진다. 김포와 서울을 연결하는 김포골드라인 전철은 하루 9만 명이 이용한다. 지옥철도 이런 지옥철이 없다고 해서 ‘김포골병라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언론은 국민의힘이 제기한 김포의 서울시 편입에 대해 김포시민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주민이 대다수다. 구체적인 셈법은 나중이고, 당장 서울특별시민이 된다는 자부심, 아무래도 서울이니까 집값이 오를거라는 기대, 그리고 숙원인 서울 지하철 5, 9호선의 연장 같은 핑크빛 희망이 눈에 아른거린다.
노리는 건 김포만이 아니다
선거는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운동이 시작됐는데 국민의힘 후보들이 김포 갑을병에서 “여러분을 서울특별시민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고 일제히 외치고 다니면,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반대할 수도, 찬성할 수도 없어 난감해진다. 서울로 편입돼도 별 실익이 없다고 논리적 근거들을 제시해 봤자 유권자 귀에 잘 안들릴 공산이 크다. 꿈과 논리가 싸우면 당장은 꿈이 이기기 마련이다.
김포 국회의원 의석 3개 만을 노려서 이런 공약을 만들 만큼 국민의힘이 단순하지는 않을 터이다. 신호탄은 김포에서 터뜨렸지만 공략 대상은 서울을 빙 둘러싼 경기도 곳곳의 기초자치단체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광명. 광명은 이미 서울 지역번호 02를 사용하고 있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노원, 금천, 강동 같은데서 용산, 여의도, 강남 가는 것보다 광명에서 가는 게 더 빠르고 편하다. 서울 출퇴근 인구가 많은 베드타운 성격이다. 김포골드라인과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 7호선 광명역을 가보면 알 수 있다.
광명 뿐 아니라 북쪽에는 의정부, 동쪽에는 남양주, 구리, 하남, 남쪽에는 안양, 서쪽에는 부천이 있다. 역시 서울에 소득 기반을 둔 인구가 태반이다. 같은 학교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같은 소득을 올리는데 나만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는 건 작지 않은 컴플렉스다. 그래서 진짜 폭탄은, 국민의힘이 ‘서울 메가시티 구상’이라며 김포 말고 다른 지역도 주민이 원하면 서울 편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총선 수도권 대결의 화두는 “누가 서울특별시민이 될 수 있냐”가 될 수 밖에 없다. 서울특별시민 시켜주겠다는 정당과, 경기도를 남북으로 쪼개서 경기북도 주민 만들어 주겠다는 정당의 싸움이다. 더구나 김포는 한강 이남에 있어서 북도로 가기도 뭣 하고, 인천이 가로막고 있어서 남도에 편입되기도 애매하다.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가 공들여 추진하고 있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구상은 차질을 빚는 걸 넘어 민주당에게 독이 될 가능성까지 생겼다.
강서구청장 선거조차 못 이기는 지리멸렬한 당이라도 여당은 여당이다. 똑같은 정책도 야당이 뭘 하겠다고 나서면 “에이, 정부가 더 안 하겠네”라고 기대를 접지만 여당이 내놓으면 희망을 품는 게 민심이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이게 여당 프리미엄”이라며 “민주당이 상당히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 서울 편입안에 대한 국민의힘 내 반대 의견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울 북부 등 외곽 지역구를 가진 당협위원장들이다. 도봉갑 국민의힘 김재섭 당협위원장은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서울 자치구내 지방세 수입 재분배 공유에 변화가 생긴다”는 이유를 들었다. 김포가 들어오면 가난한 서울의 기초단체들은 나눠 먹을 파이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총선 전체를 이겨야 하는 당 지도부의 판단은 그보다 냉정하다. 1%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노원, 도봉, 성북, 강북, 중랑, 강서, 은평, 구로, 금천, 강동 지역구들은 국민의힘에겐 무덤이다. 2004년 16대 총선 이후 이 10개 자치구의 20개 넘는 선거구에서 보수 정당이 4석 이상을 가져가 본 적이 18대 한 번 뿐이다. 한나라당이 이례적으로 서울에서 40대 7로 압승을 거뒀다. 바로 전 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거의 더블 스코어 차로 이긴 지 넉 달 만에 치러진 선거였다.
어차피 질 곳 보다는 어렵지만 희망이 꽃피고 있는 곳에 공을 들이는 게 당 지도부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서울의 취약 지역구들에 대한 맞춤형 공약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민주당 강세 지역들에서 비명과 친명 간의 갈등이라도 벌어진다면 서울과 경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
김포 편입 구상은 이런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했다. 하남 주민들은 스스로 나서서 곧 ‘서울편입 추진위’를 발족하기로 했다. 서울 메가시티론을 들은 부산 정치권은 ‘부산 메가시티’ 주장을 내놨다. 잠시 논의됐다 사장된 ‘부울경 통합론’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찬성이든 반대든 국민의힘이 쏘아올린 불꽃을 구경하려고 다들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게는 악재다.

민주당은 대응이 쉽지 않다
악재를 맞은 민주당의 대응은 안타까울 정도다. 첫 반응이 ‘천공 배후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가까운 무속인 천공이 주장한 서울과 경기도 통합론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희망에 들떴는데 야당의 대응이라는 게 무속인 음모론이다. 김포 주민 입장에서는 집값이 오르기만 한다면 무속인 아니라 삼신 할머니가 한 말이라고 해도 박수칠 일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역 갈라치기’라면서 대여 공세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역 갈라치기 맞는데 그래도 주민이 원해서 하겠다’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물론 모든 일이 국민의힘 구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우선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국민의힘이 의지와 계획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지 불투명하다. 아직 당정간 구체적인 논의가 된 것 같지도 않다. 당내에서는100% 총선용 ‘빌 공(空)’자 공약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무엇보다 21대 국회 중에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시일이 촉박한 것은 물론이고 과반수 야당이 반대하면 무산될 게 뻔하다. (야당이 발목잡았다고 울먹이는 전술을 목표로 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역풍을 맞은 가능성도 있다. 전국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55%가 반대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알앤써치 / CBS노컷뉴스 의뢰) 이건 김포가 시샘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겠지만 서울 편입 대상이 못되는 대다수 지역에서 반대 여론이 확산되면 총선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용산과 정부의 입장이 변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참모들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슈의 크기에 비해 침묵이 길어지는 게 이례적이다. 조심스럽다 보니 입장 표명을 용산 대신 정부가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다”고 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면밀한 검토와 차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여권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원희룡이 신중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파괴력이 큰 공약인 만큼 아군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잘못 나섰다가 역풍을 맞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대선 가도에 먹구름이 낀다.
이준석 신당은 어떤 영향줄까
총선이 정책보다 진영 싸움으로 번질 경우 여당 프리미엄 누리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은 이준석 신당이 위협적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총선을 100일 남짓 앞두는 12월 27일쯤 신당 창당을 선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유승민 계의 동반 탈당에 이어 금태섭 전 의원, 이언주 전 의원 등과 손잡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20석 이상 확보가 목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김포 편입 구상이 나오자 마자 ‘오히려 김포 주민에게 손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당이 원내 제3교섭단체 자리라도 확보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에게 의미 있는 상처를 입히는 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신당이 민주당 비명계를 자극해 분당을 촉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총선판은 정책바람이 아닌 정치바람에 휩쓸릴 공산이 크다. 분열의 시대가 오고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마음이 설레고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은 대개 여당에게 유리할 게 없다. 특히 대통령 임기 중반의 선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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