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부활절 축제는 얼마나 성대하게?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언어, 생활 곳곳에 카톨릭 종교 색채 세비야 ‘마리아 산타’, 최고 부활절 축제 젊은이들 무신앙...교회도 변신중

2022년 스페인 세비야 '세마나 산타' 행렬의 모습. 코로나19로 인해 2년만에 열린 탓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렸다. 사진=sevilla.abc.es
2022년 스페인 세비야 '세마나 산타' 행렬의 모습. 코로나19로 인해 2년만에 열린 탓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렸다. 사진=sevilla.abc.es

몇 년 전,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던 채로 멕시코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였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동료를 처음 만난 필자는 놀라서 물었다. “당신 이름이 예수(Jesús)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내 질문에 동료는 멋쩍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지나고 보니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헤수스(예수)는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누가 가톨릭 국가 아니랄까 봐, 사람들의 이름에서부터 종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일이 두개인 스페인 사람들

헤수스를 비롯해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이름 대부분은 성인(聖人)의 이름이다. 그리고 성인마다 축일이 있어서 스페인 사람들은 원래 생일과 자신과 이름이 같은 성인의 축일을 챙기니, 생일이 두 번 있는 셈이다! 한국 이름만 있는 나는 생일이 한 번이지만, 마음에 드는 스페인어 이름을 정해 스페인 사람처럼 내 생일과 성인의 날을 두 번 챙기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공원, 병원, 학교, 길 이름 중에 특히 종교와 관련된 고유명사가 많았다. 번역하면 ‘예수회 공원(parque de los Jesuitas)’, ‘평화의 성모님 병원(nuestra señora de la paz)’, ‘축복받은 마리아 아나(Beata María Ana)’, ‘십자가 길(calle de la cruz)’과 같다. 스페인어로 말할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국어로 바꿔 생각하면 정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를 할 때도 특이하고 재미있는 종교적인 표현이 여럿 있다.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Jesús(예수)!”라고 말해주며, 재채기를 멈추지 않고 연달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는 “Jesús, María y José(헤수스, 마리아, 호세)!”라고까지 외쳐 주는 경우도 있다.

영미권에서는 “오, 신이시여!(Oh, my god!)”를 감탄과 놀라움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스페인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주 다양한 표현이 있다. “Oh my god!”을 스페인어로 직역한 표현인 “¡Ay, Dios Mío!”는 물론, “¡La virgen santisima!(거룩한 성모 마리아 님!)”, “¡Santa María madre de dios!(신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님!)”, “¡María del amor hermoso(아름다운 사랑의 마리아 님!)” 등을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 자주 사용되는 표현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이렇게 스페인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감탄사에는 특히 종교적인 문구가 많다. 감탄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긴 느낌이 있는데도 자주 들어서 익숙해지니 종교가 없는 필자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빌거나,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의 경우에는 “Dios te bendiga(신의 은총이 있길)”, “Vaya usted con dios(신과 함께 가시길)”와 같은 말을 하는데, 대체로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더욱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

스페인의 휴일 역시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것이 많다. 스페인 사람들은 예수의 탄생기념일인 크리스마스와 동방박사의 날을 보내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이후 몇 달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는 단비와 같은 휴일이 있으니, 바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고난을 기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세마나 산타’(부활절)이다. 음력으로 날짜가 정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명절처럼 매년 날짜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다. 직업에 따라 부활절 휴가 일수에 차이가 있는데, 학교의 경우에는 약 10일 정도 되기에 작은 방학과도 같다. 따뜻한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기에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서 미리 휴양지를 예약하는데, 여행 성수기라 숙박시설의 가격이 배로 뛰기도 한다.

최고의 행사 ‘세마나 산타’와 산티아고 순례길

날이 갈수록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스페인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스타일로 부활절 휴가를 보내지만, 세마나 산타의 원래 의미를 기리기 위해 각 도시에서는 세마나 산타 행렬을 준비한다. 많은 돈과 사람들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이 행사는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작은 도시에서도 세마나 산타 행렬을 준비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행렬은 세비야에서 행해진다. 이 세마나 산타 행사를 보기 위해 스페인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몇 주 전부터 숙박 시설을 예약하는 건 필수.

눈만 보이는 고깔모자를 쓴 나사레노의 모습. 십자가를 매고 발에 쇠사슬을 두른 채 행렬에 참여하는 나사레노도 있다. 사진=diariodesevilla.es(왼쪽), 최지윤(오른쪽)
눈만 보이는 고깔모자를 쓴 나사레노의 모습. 십자가를 매고 발에 쇠사슬을 두른 채 행렬에 참여하는 나사레노도 있다. 사진=diariodesevilla.es(왼쪽), 최지윤(오른쪽)

이 행렬은 한 시간 내외로 끝나는 그런 간단한 행사가 아니다.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 여러 종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는 의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행사로, 몇 시간씩 걸린다. 행렬의 첫 부분에는 눈만 보이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는 나사레노(나사렛 사람)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얼굴을 가린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손에 촛불이나 십자가를 들고 걷는다. 행렬의 가운데는 파소(paso)라고 불리는 가마가 있는데, 이 위에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이 있다. 이를 옮기는 사람들은 코스탈레로(costalero)라고 하고, 가마꾼으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코스탈레로의 연습 모습. 이들은 아주 무거운 성상을 들고 이동하는데 앞을 볼 수도 없어서 오로지 감독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무게가 익숙해지면, 눈을 가리고 연습한다. 스페인에 작고 굽이진 길이 많은데 앞을 보지 않고 성상을 옮길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사진=okdiario.com
코스탈레로의 연습 모습. 이들은 아주 무거운 성상을 들고 이동하는데 앞을 볼 수도 없어서 오로지 감독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무게가 익숙해지면, 눈을 가리고 연습한다. 스페인에 작고 굽이진 길이 많은데 앞을 보지 않고 성상을 옮길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사진=okdiario.com

열 명 남짓한 코스탈레로는 거대한 크기의 성상을 짊어져야 하는데 이 성상의 무게가 최소 몇 백 ㎏에서 최대 2톤이 넘기도 한다. 이 행진을 위해 참가자는 1년 내내 연습한다. 조각상 밑에 들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이 합을 맞춰 그것을 옮기거나, 십자가를 매고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이 행렬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명예로운 일로 여긴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감독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내고, 코스탈레로는 한 발 한 발 박자를 맞춰 성상을 옮긴다. 오직 사람 힘으로만 지탱해야 하므로 무거운 성상을 들고 오랜 시간 이동하는 건 간단한 게 아니다. 이동하다가 잠시 쉬고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통 세마나 산타 행렬이 있는 날에는 거리가 통제되고, 행렬을 따라가는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엄숙한 행렬을 보고 있으면, 없던 신앙심도 생길 정도로 웅장하고 깊은 무언가가 느껴진다. 오랜 시간 내려오는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기에 스페인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진면목이기도 하다. 행렬이 지나가는 와중에 갑자기 건물의 발코니나 관중들 사이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이 노래는 예수나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전통 노래로 ‘사에타’(Saeta)라고 부른다. 플라멩코 선율과 비슷한 사에타는 마치 한국 판소리처럼 한(恨)의 정서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구슬프다.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외국인조차 사에타를 들으면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마이크도, 반주도 없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불리는 이 노래는 행렬을 멈추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까지 다 들을 수 있는 정도여서 참여한 모든 사람을 집중시킨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에서 열린 십자가 축제. 정원이나 성당 옆쪽에 꽃과 함께 빨간색으로 십자가를 장식해 놓는다. 왼쪽 사진은 성모 마리아 그림 앞에서 시민들이 술을 마시며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최지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에서 열린 십자가 축제. 정원이나 성당 옆쪽에 꽃과 함께 빨간색으로 십자가를 장식해 놓는다. 왼쪽 사진은 성모 마리아 그림 앞에서 시민들이 술을 마시며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최지윤

세마나 산타가 스페인 전역의 행사라면, 지역마다 종교색이 묻어나는 고유의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여행했던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는 세마나 산타 후 도시 전체에 ‘십자가 축제’(Cruces de Mayo)가 한창이었다. 거리와 광장에 꽃으로 만든 십자가를 설치하는데, 시의회는 어느 구역의 십자가가 가장 잘 만들어졌는지 그 예술성을 평가해 시상하기도 한다. 꽃으로 장식된 큰 십자가 옆에서 각 교구는 술과 타파스를 판매하고, 얻은 이익을 성당을 위해 사용한다.

스페인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에게 가장 유명한 곳으로 꼽히는 곳 역시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까미노 데 산티아고)이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곱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당시 스페인의 왕 알폰소 2세가 처음 방문한 후 이곳은 순례길의 종착지로서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산티아고는 성 야곱의 스페인어). 이렇게 종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그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

스페인도 카톨릭 신자는 줄고 있지만

그러나 얼마 전,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종교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독실한 가톨릭 국가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성당에 직접 가서 미사에 참석하는 학생의 비율은 매우 적어 내심 놀랐다. 또 스페인 사회연구소(CIS)의 2018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본인이 가톨릭 신자라고 응답한 스페인 국민은 68.5%였는데 과거에 비해 무신론자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한 사람 중 겨우 14.1%의 신자들이 매주 미사에 참석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성당에 직접 가는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0년 스페인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퍼레이드를 하는 중에 한 동성 커플이 키스하고 있는 모습. 당시 스페인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교황의 방문으로 막대한 지출이 예상되자 많은 시민들이 교황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사진=english.elpais.com
지난 2010년 스페인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퍼레이드를 하는 중에 한 동성 커플이 키스하고 있는 모습. 당시 스페인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교황의 방문으로 막대한 지출이 예상되자 많은 시민들이 교황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사진=english.elpais.com

작년 3월 교황청은 동성 간 결혼은 가톨릭 교리와 불일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는 이미 2005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전통적인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고 이를 허용한 것은 이례적이고 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프랑코 정권은 종교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스페인에는 세속주의와 진보주의 바람이 불었다. 그 결과,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나라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길에서 동성 커플이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는 일을 보는 건 흔한 일이며,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도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서슴없이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던 가톨릭과 새로운 세대의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과학과 기술, 진보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종종 고리타분한 옛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종교의 힘으로 나라의 전성기를 꽃피웠던 스페인 가톨릭의 사회적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스페인 가톨릭 교구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고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당을 자주 찾는 신자가 줄고 무신론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종교를 제외하고는 스페인을 논할 수 없다. 스페인에서 종교는 단순히 신앙을 넘어서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문화 그 자체이며, 사회를 지탱해 주는 뿌리와 같기 때문이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