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자의 화려한 변신에 숨은 경제 코드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과자에서 읽어낸 북한 경제시스템의 변화
새삼 북한 과자를 들여다보는 이유
최근 공중파 방송은 물론이고 각종 유튜브에서도 북한 과자의 화려한 변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 5월이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기 때문일까? 물론 북한의 어린이날은 6월 1일 ‘국제아동절’이고, 더 크게 축하하는 날은 공휴일인 6월 6일 ‘조선소년단창립일’이라고 한다.
북한 과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 크게 변했고, 그 속에는 많은 변화의 메시지들이 숨어 있다. 북한의 식생활을 둘러싼 사회문화의 변천은 물론이고, 공업생산력과 경제시스템의 변화까지도 읽어낼 수가 있다. 2017년 이후의 초강도 경제 제제와 2020년 이후 코로나 상황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더 꽉 막혀 있다. 이렇게 안타까운 남북 관계 속에서 중국을 통해서 들여온 북한 과자는 북한 연구자들에게 공룡의 화석만큼이나 연구할 가치가 큰 지도 모른다.
건국대학교 전영선 연구교수의 책 『찾아라! 만리마 슈퍼마켓 새우맛 튀기과자』는 사실적 사진과 함께 북한 과자의 이름과 생산 회사를 재밌는 퀴즈식으로 풀어냈다. 먼저 이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자.
‘이건 무슨 과자일까’ 헷갈리는 이름
가장 헷갈리고 생소한 이름은 이런 것들이다. ‘젖’제품은 우유가 들어간 제품, 즉 유제품을 말한다. 젖사탕은 우유사탕이고 젖과자는 우유과자이다. 그래서 딸기향이 나는 우유가 섞인 사탕을 ‘딸기젖사탕’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생소한 ‘신젖’은 우유를 발효한 요구르트를 말한다. 요즘은 우유와 요구르트라는 이름도 보인다.
‘무당’은 설탕이 없는 무가당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당껌’은 무가당껌이다. 그래서 ‘무당봉지방울껌’은 무당=무가당, 봉지=비닐봉지포장, 방울=풍선을 의미하므로 무가당 봉지포장 풍선껌을 의미한다.
기름에 튀긴 과자 즉 남한의 튀김 스낵을 ‘튀기’라고 부른다. 록두맛튀기, 양파맛튀기, 낙지맛튀기(오징어맛 스낵) 등...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얼음보숭이’는 거의 쓰이지 않고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른다.

너무 길어서 더 이상한 과자이름
과자이름이 너무 길어서 부르기가 더 이상한 과자들도 있다. ‘대파맛튀기과’는 남한의 양파링과 같은 과자로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락화생닭알과자’는 락화생=땅콩, 닭알=달걀이므로 땅콩달걀과자인 셈이다. ‘락화생맛꼬치과자’는 락화생=땅콩, 꼬치=막대이므로 남한의 빼빼로 같은 땅콩을 입힌 막대과자이다.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쵸콜레트단설기’는 초코파이이며, ‘코코아향탄산단물’은 콜라이다.
남한의 과자 마케팅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위의 긴 이름 과자들은 과자에 대한 설명이지 고유한 과자이름이나 과자브랜드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언어학자들은 단어의 음절 수가 적을수록 그 단어가 오래 생존한다고 얘기한다.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워서 재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제품의 이름은 그 음절의 수가 적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부르기 쉬운 북한식 과자이름
‘음절수(音節數) 최소화의 원칙’과 상업적인 마케팅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과자 이름 중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 보이는 이름들도 있다. 우리가 흔히 ‘카스테라’라고 부르는 빵을 북한에서는 ‘설기’라고 부르는데, 2음절이 더 짧다.
우리가 과거에 ‘산도’라고 불렀다가 일본식 표현이어서 요즘 ‘샌드’라고 표시하는 과자가 있다. 과자와 과자 사이에 잼이나 특별한 재료를 넣은 과자를 말한다. 이 과자의 원래 영어이름은 sandwich cake인데, 영어로는 모두 3음절이지만 한국어로는 ‘샌드위치 케이크’로 무려 7음절이나 되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부르기에는 너무 긴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겹’이라는 말을 써서 가볍게 ‘겹’과자라고 한다. ‘우유크림겹과자’, ‘록차맛크림겹과자’, ‘빠다크림겹과자’등이다.
북한에서는 샌드위치를 2음절인 ‘겹빵’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 전달도 정확하고 매우 효율적으로 들린다. 우리가 햄버거라고 부르는 빵은 원래 영어이름이 hamburger sandwiches로 한글로 표기하면 ‘햄버거 샌드위치’이어서 7음절인데, 북한에서 이를 ‘고기겹빵’이라고 간단히 부른다.
남한에서는 없는 단어지만 짧으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담은 북한 과자 이름도 있다. ‘소빵’은 만두소처럼 빵 속에 크림이나 특별한 재료를 속에 넣은 빵을 말한다. ‘팥소빵’은 팥을 속에 넣은 빵이고, ‘딸기단졸임소빵’, ‘레몬단졸임소빵’은 단졸임이 잼을 뜻하므로 딸기잼과 레몬잼을 속에 넣은 빵의 이름이다. 실타래나 또아리를 틀어 놓는 것처럼 말아놓은 모양의 빵을 북한에서는 ‘계피말이빵’, 빠다말이빵‘처럼 ‘말이빵’이라고 한다.
과자 선물은 최고지도자의 사랑을 상징
전통적으로 북한에서 과자 선물은 국가 명절에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최고지도자의 생일이나 조선소년단창립절과 같은 명절에 당과 최고지도자의 은혜로운 사랑을 선물 과자에 담아 인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선물 과자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종류와 맛이 획기적으로 다양하고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소비자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정책적 배경이 있다.
김정은 시대의 식료품산업 육성과 국산화 정책
그 첫째는 식료품산업의 육성과 소비재 국산화라는 강력한 경제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식료품산업의 육성은 수입 소비재 제품에 대한 국산화 정책과 맞물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김정은 시대의 ‘위민이천’이나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정치적 구호 아래 더욱 큰 힘을 얻고 있다.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소비재 상품들을 경험한 인민들의 소비수준은 매우 높아진 현실에서, 먹는 식료품에 있어서는 중국 수입제품을 불신하는 풍조는 식료품산업 국산화의 필요성을 더욱 높였을 것이다.
시장화와 결합된 기업의 경영자율화 정책
둘째, 이러한 정책이 경제현장에서 실제로 작동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기반은 김정은 시대의 핵심 경제개혁 정책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법률에 명시되어 자리잡기 시작한 이 제도는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북한의 기업소법에 명시된 기업의 자율적 경영권한에는 경영계획권, 생산관리권, 인력관리권, 제품개발권, 품질관리권, 인재양성권, 무역 및 합영합작권, 재정관리권, 가격제정권, 판매권 등이 있다. 이러한 북한 기업의 경영 자율성, 특히 제품개발권, 품질관리권, 가격제정권 및 판매권 등이 없다면 이렇게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과자들이 생산 및 유통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북한 과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과자들을 만날 수 있다. 북한의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만드는 ‘쵸콜레트단설기’는 한때 개성공단을 통하여 북한 전역에 유통되었던 ‘초코파이’를 변형한 제품이다. 물론 세계적인 명제품이 된 한국의 초코파이도 미국의 ‘문파이’를 모방했다는 주장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새우맛튀기과자’는 남한의 ‘새우깡’을 모방했고, 이 새우깡은 일본의 ‘갓파 에비센’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인 지난 5월9일 국회에서 열린 ‘북한사회 제대로 이해하기’ 세미나에서 전병길 (재)통일과 나눔의 사무국장은 사진과 같이 인기있는 과자에 대한 국가별 모방의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북한 과자회사의 신제품 개발 노력
북한의 과자 회사들이 신제품 개발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이나 방문한 제과 업계의 대표 주자인데, 30종 1080가지의 과자 및 음료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리정호 사장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2016년 4월 25일자)에서 신제품 개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외국에 출장을 자주 다니는데 현지 상점에서 매 제품을 한가지씩 사서 뜯어 맛을 보면 그 중에 우리나라에 맞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중략) 거기서 우리 실정에 맞고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겠다 하면 무조건 도입해야 한단 말입니다.”

다양한 북한 과자는 치열한 경쟁의 산물
북한 과자의 다양하고 화려한 변신은 제과업체들의 경영 자율성에 기반한 신제품 개발노력, 특히 치열한 기업간 경쟁의 산물이다. 사활을 건 경쟁은 북한경제의 시장화를 전제로 하여 설계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가져온 새롭지만 당연한 기업 환경이 되었다.
북한의 잡지 ‘근로자’ 2015년 제4호에서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의 리정호 사장의 발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쟁대상들이 따라오는데 계속 1등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는가하는 기자들의 물음에 문제없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이 단위(회사라는 뜻)는 오늘날에 와서는 생산량에서나 제품 가지수에서나 우리 공장에 엄청나게 압도되고 말았다.”
장기간 경제 제재와 코로나 봉쇄 속에서의 생존비결
역사상 유래가 없는 초고강도의 경제 제재가 5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북한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국경봉쇄가 벌써 3년째이다. 북한 경제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한때 출렁거리던 북한의 환율과 물가가 다시 안정적 균형을 찾아가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북한 과자의 다양하고 화려한 변화는, 북한 기업들이 확대된 경영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여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을 진행 중이며, 그 속에서 단위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계획 시스템과 함께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시장 시스템이 경제전반에 걸쳐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외부 충격에 대한 북한경제의 내구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론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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