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산업을 키운 ‘최소율의 법칙’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생명체, 발육 성분 보충하면 크게 자라 한국 영화산업도 ‘최소율의 법칙’ 따라 부족한 한계자원들을 어떻게 보충할까

제 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배우. 사진= 연합뉴스
제 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배우. 사진= 연합뉴스

오래전 추억이지만 알래스카에서 광어 낚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초청한 분이 사냥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낚시를 할 것인지를 묻길래 경험이 없던 사냥 대신 광어 낚시를 택했다. 임대한 배의 선장은 우리 일행에게 “어느 정도 크기의 광어를 잡고 싶으냐”고 물었고, 필자는 “손바닥 정도 크기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손바닥 크기의 광어가 많이 나온다는 해역으로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갔다. 물고기의 입질은 대단했지만 잡아 올릴 수가 없었다. 낚시 바늘이 너무 컸던 것이다. 알래스카 지역에서는 그 사이즈의 광어를 잡지 않아 맞는 낚시 바늘이 없었던 것이다.

할수 없이 더 큰 광어를 잡기로 하고 배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더 큰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낚시 바늘에 꽁치 반 마리를 미끼로 걸고 바다에 던지니 5분도 안되어서 또다시 강한 입질이 왔다. 이번에는 잡은 고기를 끌어올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허리에 낚시대를 걸기 위해 요대를 차고 릴을 감았다 푸는 식으로 10분 정도 사투를 벌였다. 잡아 올린 광어는 이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초대형이었다. 광어 길이가 80㎝정도라면 쉽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또 한번 낚시대를 드리우고 20분 정도 지나 다시 사투를 벌인 뒤 잡아올린 광어 역시 비슷한 크기였다. 완전히 횡재한 기분에 취했다가 다시 도전하려 했더니, 선장이 더 이상 못 잡는다며 만류했다. 알래스카에서는 낚시 면허를 사서 하는데 그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광어는 두 마리까지만 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연어는 5마리까지만 잡을 수 있다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낚시를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알래스카 해역에서 광어를 잡는 모습.
알래스카 해역에서 광어를 잡는 모습.

알래스카 광어는 왜 저리 클까

한국에서 광어는 이 정도로 성장하지도 않지만, 알래스카에선 대략 5년생 정도가 되면 저런 정도 자란다고 했다. 이 바다의 광어들은 왜 그렇게 클까. 그 배의 선장이 이유를 설명해줬다. 이 곳 해역으로 흘러들어오는 빙하수에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광어가 미네랄 덕에 크게 자란다는 얘기였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 말이 맞았다. 실제 비슷한 사례가 바로 해양 심층수이다. 해양 심층수는 해면에서 600m 이하에 있는 바닷물을 말한다. 이 물은 미네랄 농도가 표층수와 다르다. 일반적인 바닷물에는 녹아있는 염류의 성분중 80%가 소금이고 20%가 미네랄 성분이다. 그런데 해양 심층수는 염류의 70%가 소금인 반면 30%가 다른 성분 즉 미네랄이다. 알래스카 해안의 물처럼 미네랄 성분이 많은 바닷물인 것이다. 실제 해양 심층수로 물고기를 양식하게 되면 성장 속도가 배로 빠르다고 한다.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가 바로 미네랄 함량이다.

이처럼 자연계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양 성분에 따라서 그 생명체의 특징이 달라진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 법칙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리비히이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화학자이면서 식물 생리학자로, 식물은 자신이 보충하는 영양분의 함량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최소량의 법칙’ 또는 ‘최소율의 법칙’이라 정리했다. 설명을 하자면 어떤 생명체가 단백질 100g이 필요한데 80g만 충족되고, 붕소(B)가 0.1g이 필요한데 0.05g만 보충됐다면 단백질은 80/100=80%, 붕소는 0.05/0.1=50%가 각각 충족됐지만, 붕소의 부족으로 이 생명체의 성장이나 생존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량이 아니라 필요 절대 비율에 의해서 생명체의 성장과 생존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초기 이론에서는 주로 무기질 성분을 중심으로 리비히가 주장을 했지만 그후 이론이 발전해 생명체의 환경요인 즉 기후, 온도, 수분, 무기질, 유기질 등 다양한 조건에서 생명체를 생육하는 한계 비율로 표현됐다. 즉 한계 환경 요인(limiting factor)에 의해서 생육이 결정된다는 이론으로 정립된 것이다. 리비히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무기질 비료를 만들어 비료를 산업화시켜 ‘비료화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운다.

이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바로 한국과 알래스카 광어의 생육 차이다. 한국 바다에는 광어의 성장을 결정짓는 특정 미네랄 성분이 많지 않았다. 반면 알래스카의 바다에는 성장을 촉진하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했기 때문에 광어의 성장이 달라진 것이다.

돌아가면서 부족한 성분 채우기

재미있는 것은 만일 특정 물질의 한계 영양분 비율이 충족되면 그 물질 대신에 또 다른 물질이 한계 영양 비율의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계 영양 비율이었던 붕소가 0.5g 보충돼 부족상태에서 벗어나면 또다른 한계 비율을 가진 물질이 생육 제약 요인으로 등장을 한다. 만약 인(P)이 필요한 양이 2g인데 1.5g 정도가 현재 보충이 되었다면 1.5/2=75%가 되어서 단백질 80%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붕소 다음으로 중요한 제약 요인이 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제약요인이 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물은 생육 활동을 진행한다. 이는 단순히 생명체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생태계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그 부족한 점을 어떻게 채워주는가에 따라서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으로 눈을 돌려보자.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거머쥘 만큼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적인 콘텐츠 강국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된 계기다. 한류의 확장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그 출발이 되는 시점이 중요하다. 1990년대에는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세계 최강 수준이 될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계기는 바로 ‘할리우드 영화 직배’ 문제였다. 할리우드 직배 문제는 한국 영화 산업이 세계적인 영화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영화 산업은 지속적으로 수익이 남는 기업형 산업이기 보다는 사안별로 수익이 결정되는 프로젝트 흥행산업이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3가지 요인이 주효했다. 첫째는 시장이고, 둘째는 투자 시스템, 셋째는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같은 제작시스템이다.

그때 한국 영화의 한계 비율 자원은 바로 영화 ‘투자’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 영화의 시장은 국내로 국한됐었고, 투자는 벤처 캐피탈과 같은 현대적인 투자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한국 영화 산업에서 한계비율 자원인 투자를 정부가 보충해줬다. 정부는 마중물로 영화산업 지원을 시작하면 언젠가 결과가 나올 것이고, 실패를 해도 최선을 다해 지켜려 했다는 평가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모태펀드를 만들었고 영화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초기 몇 년간 정부의 영화산업 투자는 평균 30% 정도 적자를 봤다. 100억원 투자하면 70억원 정도만 수익이 되고 나머지는 완전히 적자가 났던 것이다. 이런 수치였던 만큼 민간 투자자들은 투자를 할 수 없었다. 벤처캐피탈로는 할 수 없는 일에 정부가 적극 나섰고, 해마다 1000억원 이상씩 5년 정도 투자를 진행하니 서서히 투자시스템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어쩌다 대단해졌을까

이렇게 투자효과가 축적된 후 한국 영화 시장은 시장 통제가 없음에도 자국 영화 비율이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보다도 높아졌다. 즉 50% 이상을 자국영화로 채울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영화 통계를 보면 자국 영화 비율이 50%가 넘는 나라는 미국, 인도,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에 불과하다. 이중에 국가가 영화시장을 통제하는 인도와 중국을 제외하면, 미국 일본 한국 정도다. 한국의 영화가 잘 나가면서 지금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투자 시스템이 구축돼 드라마 한류를 키우는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왜 한국 영화산업에서 한계비율 자원이 ‘투자’였을까. 감독, 배우 등 제작시스템은 부족에서 벗어나 있었을까. 제작 시스템상 배우와 감독들의 실력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투자 시스템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역량있는 감독들은 의외의 공간에서 경쟁력이 길러져 있어 한계비율 요소에서 벗어나 있었다.

바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조선일보 출신으로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을 주도했던 문화공보부 장관이던 허문도가 주도해 만든 곳으로, 영화 산업을 통해 우민화 정책을 펼치려고 했던 전두환 정권의 작품이다. 이곳은 설립 초기부터 말이 많았지만 정책적인 지원 덕분에 이 곳에서 교육받은 많은 감독들이 한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개척자가 됐다. 실제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감독들 중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 많다.

1980년대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시점인 1990년대에 정부의 투자 시스템이 갖추어지자 빛을 발했다. 유능한 감독들이 육성된 상태에서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투자 시스템은 초기의 짧은 투자 실패를 딛고 효율화까지 가능해졌다.

영화시장 역시 어느 시점에서 한계 비율 요소에서 벗어났다. 이 역시 의외의 계기를 통해 풀렸다. 바로 ‘온라인 배급 시스템’이다. 한국 시장으로만 생각하면 한국의 영화 시장은 1년에 2조원 이내 규모로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도 흥행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준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가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넷플릭스 같은 OTT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잘 만들기만 하면 세계적인 흥행을 보장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요즘은 국내에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나 감독들이 시장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감독 그리고 배우만 준비되면 1000억원 정도의 할리우드식 제작 자금 조달도 충분히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생존과 성장 과정을 보면 특정 시기에 그 산업의 한계 요인이 되었던 것을 극복하면서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최소율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다. 초기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통해 수준급 감독들을 육성하고, 이어서 할리우드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투자가 이뤄지고, 그리고 한국이 초고속 통신망을 기반으로 온라인 세계 영화시장으로 진출하는 식으로 3단계 성공 방정식을 밟았다.

시기별로 특정 한계 요인들이 집중적으로 보충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의 자양분이 두터워졌다. 물론 영화 산업내에 생존과 성장을 갈망하는 내적 의지가 강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을 촉발시켜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는 ‘최소율의 법칙’에 의해서 생물이 생육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흡사하다. 그 단계에 맞는 생육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산업에도 ‘최소율의 법칙’이 통한다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은 하나의 성공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내 어느 산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 특정 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제약 요소들이 있다면, 그 단계별 시기에 맞추어 보충 또는 보완을 해주면 그 산업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영화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으리라고는 20년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별 볼 일 없는 산업이라고 하찮게 볼 일이 아니다. 이렇게 영화 산업이 성장한 과정을 참고로 한다면, 몰락하지 않고 새롭게 성장기반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산업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구축하는 일 말이다.

‘최소율의 법칙’을 잘 적용해 산업 전략을 세울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다른 산업에서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 이상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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