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상징’ 투우, 21세기에도 살아남을까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투우를 보고 투우사가 소를 죽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다양한 에피소드와 복잡해지는 시선들

세비야의 레알 마에스트란사(Real Maestranza) 투우장의 모습. 스페인의 투우 경기장중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남부는 매우 덥기 때문에 오후 여섯 시에 열린 경기인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투우를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그늘진 좌석의 표를 사는 것이 좋다. 사진=최지윤
세비야의 레알 마에스트란사(Real Maestranza) 투우장의 모습. 스페인의 투우 경기장중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남부는 매우 덥기 때문에 오후 여섯 시에 열린 경기인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투우를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그늘진 좌석의 표를 사는 것이 좋다. 사진=최지윤

헤밍웨이가 사랑한 ‘투우’

미국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과 인연이 깊다. 스페인 내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파시즘에 맞서고자 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발표했다. 이후 그는 스페인의 매력에 매료돼 말라가와 론다에 머물며 글쓰기에 대해 고찰하다가 격렬한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투우 경기를 관람하게 된다.

투우에 깊은 감명을 받은 헤밍웨이는 투우 안내서와도 같은 <오후의 죽음>을 출판한다. 투우 경기는 항상 오후에 있기 때문에 소의 죽음을 오후의 죽음이라 비유한 것이다. 스페인 대표 화가인 고야와 피카소 역시 투우를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투우사가 휘두르는 붉은 천, 소의 피. 강렬하고 역동적인 투우는 스페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말을 타고 있는 투우사를 공격한 소의 역동적인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고야의 그림 '투우사의 죽음'(La muerte del picador, 1793). 사진=wikipedia
말을 타고 있는 투우사를 공격한 소의 역동적인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고야의 그림 ‘투우사의 죽음’(La muerte del picador, 1793). 사진=wikipedia

투우는 스페인어로 ‘꼬리다스 데 또로스’(Corridas de Toros)라고 일컫는다.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500kg나 되는 큰 소를 오직 붉은 천 하나로 유인한 후 급소를 찔러 죽이는 투우를 강렬하다 못해 예술적이라고 한다. 최근 여러차례 투우를 관람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

근대 투우는 18세기 부터

이베리아 반도에서 소는 고대부터 중요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원전 1100년경 스페인 남부 과달키비르와 틴토강(현재 세비야, 카디스, 우엘바)을 중심으로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형성된 타르테소스의 문명에서는 전쟁에서 황소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의 12가지 과업을 끝내야 했다. 10번째 과업으로 지중해 서쪽 섬인 에리테이아의 괴물 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황소 떼를 데려오는 일이 있었다. 에리테이아는 타르테소스 문명에 있던 섬으로, 현재 스페인 카디스 지역이다. 머리와 몸통이 셋이라고 묘사된 괴물 게리온은 그 지역을 통치하던 에리테이아의 왕으로 추측된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배에 황소 떼를 몰아 넣고 게리온을 죽인다.

투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초의 역사적 언급은 중세인 10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빌라에서 열렸던 한 귀족의 결혼 축하 행사로 투우 경기가 진행되었다. 또한 1215년 세고비아의 꾸에야르(Cuéllar) 마을의 교구에서는 “성직자가 투우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참가한다면 자격이 정지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투우가 성행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스페인의 군주였던 카를로스 5세는 창으로 황소를 죽여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의 탄생을 축하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근대 투우는 18세기 프란시스코 로메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는 ‘근대 투우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현재 남아있는 투우 경기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것과 같이 투우사가 걸어 들어가 공연을 펼친 후 긴 검으로 소의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말을 탄 투우사가 긴 작살을 사용해 소를 죽이는 것이다. 경기에서 소를 자극하기 위해 빨간색 혹은 분홍색 천을 휘두르며 연기를 펼치지만, 사실 소는 붉은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소는 휘날리는 천의 움직임에 반응할 뿐이다.

투우 경기에서는 총 여섯 마리의 소가 등장한다. 세 명의 마타도르(주역 투우사)가 차례대로 나와 연기를 펼치는데 이게 두 번 반복된다. 따라서 투우사 한 명이 소 두 마리를 상대하는 꼴이다. 소 한 마리당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투우 경기 전체를 다 보려면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셈이다.

삐까도르, 마타도르가 등장하는 투우

경기는 총 3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먼저 시작 전 소의 나이와 무게를 관중에게 알린다. 투우가 시작되면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있던 거대한 검은 소가 매서운 흰 뿔을 자랑하며 경기장에 뛰어 들어온다. 갑자기 눈앞에 내리쬔 빛과 관중의 함성에 흥분한 소를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 마타도르를 중심으로 빠까도르, 반데이예로 등이 한 팀(cuadrilla)이 되어 공연을 펼친다. 투우 경기의 주인공인 승부사 마타도르(matador)가 3부에서 소를 죽이기 전, 조연 배우 격에 해당하는 숩알테르노(subalterno)들이 1, 2부에 먼저 등장해 그를 돕는 식이다.

투우의 첫 장면에선 두세 명 정도의 사람이 나와 분홍색 천을 휘두르고 소를 달리게 하는데 이는 소의 특성을 알아보고, 그의 힘을 빼기 위해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1부에서는 눈을 가린 말을 탄 삐까도르(picador)가 등장한다. 용맹한 검은 소를 본 말이 겁을 먹어 도망가 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말의 눈을 가린다. 삐까도르는 긴 창으로 소를 찔러 소의 기운을 누그러뜨리고 숨골을 잘 보이게 만들어 다음에 등장하는 투우사의 일을 쉽게 만든다.

2부에서는 장식이 달린 작은 작살을 손에 든 반데이예로(Bandeillero)가 등장한다. 소 근처를 돌다가 소의 급소가 잘 보일 때 높게 뛰어올라 작살을 몸통에 꽂아 넣는다. 이때부터 빛나는 검은 소의 몸에 벌겋게 흐르는 피가 보이기 시작한다.

2부에 등장하는 반데이예로가 힘껏 뛰어 소의 급소에 작살을 꽂아 넣는다. 작살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매우 재빠르게 행동해야 한다(왼쪽). 작살에 찔려 기운을 많이 잃은 소를 데리고 연기를 펼치는 마타도르(오른쪽). 사진=최지윤
2부에 등장하는 반데이예로가 힘껏 뛰어 소의 급소에 작살을 꽂아 넣는다. 작살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매우 재빠르게 행동해야 한다(왼쪽). 작살에 찔려 기운을 많이 잃은 소를 데리고 연기를 펼치는 마타도르(오른쪽). 사진=최지윤

경기장에 있는 악단이 3부가 시작되는 빠소 도블레를 연주하면 드디어 ‘마타도르’가 물레따(나무 막대기에 붉은 천을 감은 도구)를 들고 의기양양한 자태로 입장한다. 마타도르는 비단에 금과 은이 수놓아진 멋진 옷을 입고 등장해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아슬아슬하게 연기를 펼치는 투우사들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최고의 투우사와 소, 죽음 아니면 큰 영예

그러다 최후의 트럼펫 소리가 울리면 긴 검을 가지고 소의 목숨을 끊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순간, 투우사는 우아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한 번에 소를 죽이는 건 잘 훈련된 투우사에게도 몹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검에 찔린 소가 큰 눈을 끔뻑이며 비틀거리는 모습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소가 죽음을 맞이하면 관객은 뜨거운 함성을 지른다.

이후 세 명의 심사위원은 투우사의 연기를 평가한다. 멋진 경기였다면 관중이 심사위원을 향해 흰 손수건을 흔들며 휘파람을 분다. 일반적으로 좋은 경기를 펼치면 소의 귀 하나, 훌륭한 연기인 경우 소의 양쪽 귀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면 죽은 소의 꼬리와 두 귀를 받는다. 경기가 끝나면 관객이 꽃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던져 투우사에게 화답한다. 199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투우사 헤수스 하네이로는 여성 관객만 입장이 가능한 투우 쇼를 열었고, 그의 경기에 감명받은 관객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던졌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전해지고 있다.

투우 경기에서 소를 죽이지 않는 경우도 있긴 있다. 몇 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아주 드문 일이다. 소가 투우사의 기합에 맞춰 지치지 않고 멋진 연기를 펼치면, 3부에서 소를 죽이기 전에 심사위원이 흰색 손수건을 흔든다. 그러면 그 소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좋은 유전자를 지닌 소로 인정받는다. 소와 투우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이는 소를 키운 사람은 물론, 투우사에게도 가장 명예로운 일인 셈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소는 남은 일생 번식을 위해 힘쓰게 된다.

소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운명을 가진 마타도르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직업이다. 그래서 벌게 되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큰 인기를 얻어 승승장구하던 투우사가 죽는 일도 있다. 코르도바 출신의 투우사 마놀레떼는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소 가까이에 서서 연기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허벅지에 쇠뿔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를 죽인 소는 이슬레로(Islero)였는데, 람보르기니는 1969년 이 소의 이름을 딴 슈퍼카를 출시한다.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마놀레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2008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소가 투우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면 애석하게도 그 소를 포함해 가족 모두 죽임을 당한다. 사람을 죽이는 소는 그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뜻으로 말이다. 스페인 일간지 ABC에 따르면, 지난 20세기동안에 33명의 투우사가 사망했다. 2006년에는 투우사 빅토르 바리오가 경기 중 소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누구도 21세기 들어 투우사가 죽는 걸 감히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스페인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고, 투우를 반대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급기야 2010년 7월 카탈루냐 의회는 투우를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한다.

투우반대 여론에 밀리는 ‘스페인 투우’

투우가 예전에 비해 인기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엄청난 관중이 몰리는 국민 스포츠다. 지난 5월 마드리드의 산 이시드로(San Isidro) 축제 때는 오십만 명 이상의 관중이 마드리드 투우 경기장(Las Ventas)을 찾았다. 마드리드 주지사 아유소는 수요일인 지난 8일 “마드리드는 황소의 세계 수도”라는 말로 투우를 옹호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명실공히 투우는 지역 경제와 고용에도 이바지를 하고 있으며, 21세기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스페인의 오랜 전통이다.

지난 5월에는 유럽 각 국가의 대중음악 대표가 출전하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열렸다. 스페인 대표였던 챠넬(Chanel)은 투우사의 옷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이는 동물 학대를 옹호하고 투우를 정당화하는 일이라고 SNS상에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챠넬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단번에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며 그 의도를 밝혔다.

유로비전 2022의 스페인 대표로 출전한 차넬(마이크 잡은 이). 그녀가 입은 투우사 재킷에 수작업으로 오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달았다고 한다. 사진=el confidencial
유로비전 2022의 스페인 대표로 출전한 차넬(마이크 잡은 이). 그녀가 입은 투우사 재킷에 수작업으로 오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달았다고 한다. 사진=el confidencial

라틴 아메리카, 포르투갈,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도 투우가 행해지고 있지만, ‘투우’하면 누구나 스페인을 떠올릴 정도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소의 눈앞에서 펼치는 우아한 동작,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투우는 단순히 야만적인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동물권, 동물 복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 요즘, 투우의 명맥을 잇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물 보호 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고 투우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스페인 국민 역시 많아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스페인에서는 끝나지 않는 논쟁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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