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의 권유① 지상낙원을 향한 여정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이상향을 그린 시와 음악들
이제 코로나 팬데믹도 긴 꼬리를 내리고 있다. 마침 여름 휴가기간도 다가오고 있는 만큼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집단의 여행욕구가 봇물 터지듯 할 것이다. 지난 2년여, 비자발적 사회적 격리를 겪는 동안 인테리어와 가전제품 업계가 호황을 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휴가 때면 밖으로 밖으로만 향하던 여행 본능을 누르고 우리 각자를 집에 머물게 한 덕이다. 새삼 내 집의 안온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시간이었지만, 그 소중한 일상도 다시 반복되고 길어지면 벗어나고 싶어지기 마련. 여기 여행을 권유하는 시와 음악을 소개한다.
나의 사랑, 나의 누이여
꿈꾸어 보자
그곳에 가서 함께 사는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곳에서!
그 뿌연 하늘의 젖은 태양은
나의 마음엔 신비로운 매력
눈물 속에서 반짝이는
알 수 없는 그대 눈동자처럼
그곳엔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락 뿐
-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 중 제1연

감각적인 언어, 직관으로 포착한 영상을 세련된 시어로 형상화한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청년 시절 방황기를 보낸 그에게 부모는 인도 여행을 권했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보길 기대한 것인데, 보들레르는 여행 자체와 이국정취를 혐오한다며 첫 기착지인 인도양의 모리스 섬에서 파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세 명의 여성과 차례로 사귀게 되었는데,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여성은 세 번째 연인 마리 도브렝이었다. 그녀가 시인에게 신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는지, 이 시를 짓게 했다.
모두 3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첫 구절에서 동양의 신비가 깃든 감미로운 그곳으로 떠나자며 부드럽게 청하고 있다. 그리고 각 연마다 “그곳에는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락 뿐”이라는 후렴구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 후렴구에는 이국적인 정취 속에 감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조화와 질서가 있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다.
아름답고 몽환적 멜로디로 재탄생한 <여행에의 초대>
프랑스 작곡가 앙리 뒤파르크(Henri Duparc,1848~1933년)는 보들레르의 이 시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연을 가사로 취하여 노래를 만들었다. 뒤파르크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도 예술가곡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독일의 리트(lied)가 시어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결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장르로 크게 부각된 이후, 프랑스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프랑스어 특유의 어감과 리듬, 억양에 맞게 음악을 결합시킨 예술가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멜로디(mélodie)라는 가곡 장르이다.
독일 리트의 직접적인 감정표현과는 달리 멜로디의 표현방식은 훨씬 은근한 것이어서 시어(詩語)가 가진 일반적인 감정 표현보다는 언어적 울림의 아름다움과 음의 관능미, 뉘앙스에 집중했다.
뒤파르크는 생전에 500곡이 넘는 가곡을 썼지만, 30대부터 음악창작을 접고 이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사망할 때까지 오랜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을 거의 불태우는 바람에 40여곡만 전해지고 있다. 남겨진 곡목 수는 적지만 그의 멜로디는 아름답고 몽환적이면서 동시에 격정을 담고 있어서 프랑스풍 낭만의 극치를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뒤파르크의 멜로디 <여행에의 초대>는 잔물결이 일렁이듯 몽환적인 피아노의 음형으로 시작한다. 여객선이 희뿌연 안개 사이로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가는 양 조용하고 부드럽게 시작된 노래는 미지의 낙원을 향해 함께 떠나지 않겠냐는 청유형의 상행 선율로 진행된다. 프랑스어 특유의 풍성한 울림은 이국정취와 풍경을 기대하는 부푼 마음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잔잔하게 시작한 피아노의 물결 음형은 차츰 뱃전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되는 등, 크고 작은 물의 유희를 들려주며 여행의 설렘을 고조시킨다.

지중해연안의 유서 깊은 항구로 떠나는 음악여행
<여행에의 초대>가 인도양의 이상향을 향한 여행이었다면, 이번엔 교향모음곡 <기항지(Escales)>를 들으며 지중해 연안의 유서깊은 항구들을 돌아보는 함선에 몸을 실어보자. 프랑스 작곡가 쟈끄 이베르(Jacques Ibert, 1890~1962년)는 활동시기가 현대에 속하지만, 작품경향은 낭만적인 편이다. 견고하면서도 자유스런 음악어법과 풍부한 색채의 관현악기법, 여기에 변화 있는 리듬으로 청신하고 세련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1922년 작품인 <기항지>는 그가 1차세계대전시 해군에 입대하여 항해했던 지중해 연안 항구들의 인상을 세 곡의 관현악곡으로 그려냈다. 제1곡 ‘로마, 팔레르모(Roma, Palermo)’는 시칠리아 섬의 항구로, 플루트가 조용한 새벽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나타내고 이어서 트럼펫이 아침 항구의 활기를 전한다. 제2곡 ‘튀니스 네프타(Tunis Nefta)’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도시답게 아라비아풍의 신비함이 감도는 선율이 들린다. 제3곡 ‘발렌시아(Valencia)’는 스페인의 항구 도시를 캐스터네츠의 리듬을 곁들인 발랄하고 열정적인 춤곡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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