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들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마음을 정화시키는 슬픔의 음악들 ‘비탈리의 샤콘’,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등의 사연들
찬란한 슬픔의 ‘샤콘’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엔 유난히 슬픈 분위기로 사랑받는 곡들이 있다. 슬픔이란 주관적인 감정이어서 어떤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며 슬프다고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란 타이틀, 비록 음반사의 마케팅용 카피에서 비롯된 말이긴 하나,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곡들이 꽤 있다. 그리고 그 곡들은 대개가 아름다운 선율을 가졌고, 연주가의 독특한 연주법이나 창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 타이틀을 가진 대표적인 곡이 바로 비탈리의 <샤콘 g단조>이다. 저음의 반주가 있는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변주곡 형식의 이 곡은 첫 소절부터 바이올린이 비장하면서도 화려한 주제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변주에서 바이올린은 슬픔을 주제로 다양한 변주를 들려주려는 듯, 처연하게 또는 애절하면서도 달콤하게 슬픔을 변주한다. 바이올린이 뽑아내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려한 기교는 가히 ‘찬란한 슬픔’이라 이름 지을 만하다.
‘샤콘(chaconne)’은 원래 느린 템포의 무곡에서 시작되었지만, 후에는 ‘파사칼리아’와 함께 바로크의 대표적 기악변주곡 양식이 되었다. 이 시대의 변주곡은 처음의 주제선율을 그대로 반복하는 ‘바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고집저음)’가 특징이다. 상성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각 변주에서 화음과 음형에 변화를 주며 주제를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내는 동안, 저음의 반주는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도록 반복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탈리(Vitali, 1663~1745)는 오직 이 작품 하나로만 이름이 알려진 인물인데, 사실 비탈리가 이 곡을 작곡했다는 명확한 문헌은 없다고 한다. 단지 이 곡을 세상에 알린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드에 의해 ‘비탈리의 샤콘’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어서 작곡가가 확실치 않다는 설도 있다.
드라마틱한 슬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을 꼽으라 할 때, 그 둘째라면 서러워할 곡이 바로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라는 곡이다. 성모 찬가의 노래 ‘아베 마리아’는 대체로 명상적이고 차분한 곡조로 되어있지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그 곡조에서 한 편의 비극을 보는 듯하다. 성모 마리아를 향한 차분하고 경건한 기도의 노래라기 보다는 그 발아래 엎드려 간절하게 흐느끼다가 끝내는 오열하는 듯하다. 그 기도엔 다른 말이 뭐 필요할까, 가사는 오직 ‘아베 마리아’만을 되풀이한다.
서양음악사에서 작곡가 카치니(Giulio Caccini,1551-1618)는 르네상스 시대에 단선율의 성악곡 모노디를 개척한 음악가로서 오페라를 탄생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오페라를 창시한 피렌체의 카메라타 그룹의 일원이었고, 그의 오페라 <에우리디케>(1602년 초연)는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한동안 카치니의 곡으로 알려진 이 곡이 카치니가 작곡한 게 아니라는 설이 제기되었고, 이제는 작곡자를 블라디미르 바빌로프라고 소개하고 있다. 작곡자 명이 바뀌게 된 데에는 다소 복잡한 배경이 있다. 러시아의 류트 연주자이자 고음악 연구가였던 바빌로프가 20세기인 1970년경 발표한 노래라는 것인데, 사실 이<아베 마리아>를 들으면 카치니가 활동한 시대의 노래라고 하기엔 그 음악스타일이 좀 맞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바빌로프는 이 아름다운 곡을 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자신이 많은 애정을 기울여 쓴 이 노래를 음반으로 내면서 나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는 소련 시절, 그는 국영 음반사에서 ‘바빌로프’ 같은 무명음악가의 음반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곡들이 세상에 빛을 보고, 사랑받게 하려고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미상의 곡이라고 써넣었다는 것이다.
바빌로프가 죽고 2년 뒤인 1975년, 한 소프라노 가수가 이 곡을 다시 국영 음반사 멜로디야 레이블로 내놓을 때, 이번에는 ‘카치니’ 작곡으로 둔갑시켰다. 이건 또 어떤 연유인가? 바빌로프의 음반에 참여했던 오르가니스트 마크 샤킨이 이 곡을 ‘카치니의 것’이라고 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이 역시 유명 음악가의 이름에 묻어가려던 전략이다.
또한, 같은 곡이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종종 ‘월드 히트’급이 되기도 하고 평작에 그치기도 한다. 1995년, 이 곡은 드디어 작곡가의 염원처럼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라트비아 출신의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에 의해서다. 이네사는 자신의 데뷔앨범에서 드라마틱한 가창력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성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이네사 갈란테는 우리나라에도 와서 이 노래를 선보였다. 요즘은 “바빌로프 작곡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곡목 소개를 하고 있고, 이 노래만큼은 여전히 이네사 갈란테의 것을 최고로 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슬픈 음악을 통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에 즐겨 듣는데, 슬픔, 우울감을 비슷한 정서의 음악으로 다스려보는 것이다. 이런 음악 중에는 ‘눈물’이라든가, ‘비가(悲歌, Elegie)’ 같은 표제를 달아 작정하고 슬픈 곡임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표제가 없음에도 듣기에 따라 숙연케 하고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음악도 있다. 작곡자의 창작 의도와 무관하게 말이다.
울음을 삼킨 긴 흐느낌 ‘현을 위한 아다지오’
이 곡의 경우엔 유명인의 장례식에 자주 등장하고, 또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쓰임으로써 비감한 분위기가 더해진 게 아닐까 하는데,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플래툰’의 피날레를 장식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라는 곡이다.
영화에서는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피아의 구분도 어렵게 된 전장터는 살육의 현장이 되어가고, 무너져가는 인간성과 휴머니즘 사이에서 고뇌하던 주인공은 결국 큰 부상으로 헬리콥터에 실려 지옥같은 전장터를 벗어나게 된다. 그때 저 아래 밀림 사이에서 죽은 줄 알았던 선임병이 구조의 신호를 보내오지만, 헬기의 요란한 소음에 가려진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은 역설적이게도 느리고 고요하게 긴 여운으로 흐른다.
이 곡을 쓴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 1910-1981)는 현대 미국의 대표적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 for strings)>는 그가 젊은 시절에 쓴 현악사중주의 2악장을 손질하여 현악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것으로 초연 무대 이래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제목처럼 현악기로만 편성된 현악 오케스트라용 곡으로 제1,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참여하는데, 제2 바이올린과 첼로 파트가 다시 두 개로 나뉘어 모두 7개 성부로 되어 있다.
연주시간이 9분 내외인 이 곡은 딱히 무슨 형식이라고 하기 어려운, 기존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진행방식으로 되어 있다. 뚜렷한 리듬 패턴 없이 4분음표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형의 주선율이 성부(악기)를 달리하며 끊임없이 이어간다. 각각의 파트에서 차례로 들려주는 주선율은 처음엔 매우 여린 음으로 고요한 명상을 이끌고, 이때 다른 성부의 현악기들은 조심스럽게 지속음처럼 주선율에 화성감을 부여한다. 각기 다른 현악파트가 겹겹이 쌓일수록 곡은 점차 비감한 분위기를 더해가고, 서서히 크레센도로 고조되던 선율은 정점에 이르러 날카로운 협화음을 이루고는 뚝 끊기듯 멈춰버린다.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숨 막히는 짧은 휴지(침묵) 뒤에 음악은 다시 주선율을 들려주며 조용히 반복되다가 사라지듯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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