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수면제? ‘꿀잠’ 갈망이 만든 음악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유명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불면증 앓는 후원자를 위해 지은 곡 30개 변주곡에.치밀한 수학적 계산 깔려 ‘글렌 굴드 연주곡’ 유명...듣다보면 잠이?

불면증 치료에 쓰인 <골드베르크 변주곡>
여름 무더위에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인터넷 쇼핑몰엔 꿀잠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낸 각종 골든슬럼버 제품들도 많던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쾌적한 잠자리 환경을 만들어보지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고전적인 방법으론 지루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학교 때, 음악감상 시간에 클래식을 틀어 놓으면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들이 있었고, 선생님도 그걸 눈감아주는 분위기였다. 느린 템포의 반복적인 음률이 두뇌에 알파(α)파를 생성시켜 수면으로 유도한다는 뇌과학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든 음악을 듣다가 스르르 눈이 감긴 경험은 있을 터. 그래서 ‘클래식= 자장가’요, 아예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용 음악 작품을 의뢰한 이도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라이프치히 시절에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바로 그 곡이다. 원래 제목은 <클라비코드를 위한 G장조 아리아에 의한 30개 변주곡(BWV 988)>으로, 클라비코드는 쳄발로, 하프시코드 등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 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이다.
당시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전부터 바흐와 잘 알고 지내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1741년경, 백작은 업무차 라이프치히에 머물고 있었는데,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음악 애호가였고, 고트리프 골드베르크라는 쳄발로 연주자를 고용하고 있어서 매일 밤 골드베르크에게 연주를 시켜 잠을 자보려고 했지만, 불면증은 좀처럼 낫질 않았다. 급기야 불면증 치료를 위해 수면제 대용으로 쓰일 음악을 바흐에게 의뢰한 것이다.
바흐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백작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변주곡을 작곡했고, 과연 백작은 효과를 보았는지 바흐에게 크게 사례하였다. 이 작품에 깊은 애정을 보인 백작은 골드베르크에게 자주 연주를 시켰다고 한다. 그가 하사한 거금의 작곡료(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4천만원에 해당한다)는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바흐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후 이 곡엔 연주자의 이름을 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명칭이 쓰이게 되었다.
치밀한 수학적 논리로 연결된 주제와 서른 개 변주곡
반복 없이 연주할 경우 50분 정도가 걸리는,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단일 작품으로는 가장 긴 이 곡은 바흐의 건반음악에 대한 모든 작곡 기법- 카논과 푸가 양식, 전주곡이나 토카타, 또는 시칠리아노, 환상곡, 서곡 등의 양식과 기법-을 망라하고 있어서 바로크 건반음악의 종합선물 같은 작품이다. 또한 이 다채로운 양식의 30개 변주곡은 단순한 변주의 나열이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수학적 논리를 통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첫 곡이자 마지막에 다시 나오는 주제 ‘아리아’는 사라방드(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풍으로 되어 있고, 30개의 변주곡은 16번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6번 변주곡은 프랑스풍 서곡의 형태인 만큼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후반부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제1 변주부터 차례로 자유로운 변주곡, 기교적 변주곡에 이어 제3변주곡엔 카논 형식의 변주곡이 나온다. 이 제3 변주부터 세 곡 단위로 카논 풍의 변주곡이 배치되어 있는데, 제1 카논, 제2 카논, 제3 캐논... 이런 식으로 3의 배수에 해당되는 6번, 9번, 12번 등의 번호가 붙은 변주곡은 모두 카논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 장대한 변주곡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 30번째 변주엔 카논 대신 쿼들리베트(quodlibet)라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선율을 자유롭게 결합한 곡을 넣어 파격의 재미를 더했다.
이렇게 치밀한 구도를 갖는, 바흐의 역작이라는 이유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백작의 자장가용으로 작곡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 또한 음악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건반 음악의 명곡으로 알려지기까지
오늘날 이 곡은 바흐의 건반 작품 중 대작이자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원래 클라비코드를 위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법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피아노로 연주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다. 20세기에 이르러 현대적으로 복원한 쳄발로가 등장하면서 바로크의 건반악기 음악을 위한 연주곡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 변주곡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연주자에 따라, 악기에 따라 각양각색의 해석을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크의 건반악기인 쳄발로로 연주할 때와 피아노로 연주할 때의 느낌도 사뭇 다르고, 연주시간도 연주자에 따라 50분에서 70분 이상까지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이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극단적인 해석을 내놓은 연주로 유명한 굴드는 1955년 이 곡의 녹음을 처음 시도하면서 악보의 도돌이표(반복)를 다 빼고 전곡을 스피디하게, 38분 만에 연주하였다. 이 연주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굴드는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얻게 된다. 1981년에 그는 이 곡을 다시 녹음하였는데, 연주시간 52분 정도의 무난한 템포로 연주했고, 보다 성숙하고 밀도 있는 해석으로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 정격연주로는 1969년 빌헬름 켐프의 음반을 필두로 수많은 바흐 스페셜리스트들의 음반이 나와 있다.
쳄발로 연주가로는 일찍이 반다 란도프스카를 비롯하여 칼 리히터, 헬무트 발하, 트레버 피넉,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등의 연주가 사랑받고 있다. 비교적 근래의 연주자로는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앙타이를 꼽고 있는데, 지성과 뛰어난 기교, 즐거움이 잘 조화를 이룬 가운데 곡이 지닌 시심(詩心)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원칙을 잘 지켜가며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래식이 ‘자장가’로 변하는 순간
이쯤에서 ‘나도 한번 꿀잠을 위해 이 곡을 들어볼까’ 했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조용히 경건하게 시작되는 아리아의 첫 소절을 들으면 스르르 꿈나라로 들어갈 것 같기도 하지만, 제1 변주곡부터 꿀잠 모드는 깨지고 만다. 건반악기의 매력적인 기교와 때때로 흥겹게 달려가는 빠른 음들은 잠들려던 감각들을 일깨워 낸다. 차라리 일부러 호젓한 시간을 내어 감상용으로 들어보자. 주제선율로부터 변주곡 하나하나가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지를 음미하며 귀를 기울이다 보면, 바로크 건반음악의 담백한 매력과 다양한 기교로 펼쳐지는 음악의 흐름에 낮 동안 팽팽해진 신경줄도 좀 느슨해지고, 어느 지점에선가는 스르르 눈이 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명곡이 자장가로 변하는 순간은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터. 어릴 적, 고등학생이 된 언니는 생애 처음 클래식 음악회를 다녀왔다. “음악회는 어땠어?” “에효, 1층 맨 뒷좌석에 앉았는데, 그만 중간에 잠이 들어서 졸다 왔지 뭐야~ 교복 입은 여고생 둘이 앉아 쿨쿨 잠만 잤으니 ...”
자칭 클래식애호가인 나 역시 졸음에 무너져내린 흑역사가 있다. 세계 최고라 할만한 RCO(암스테르담 로열콘서트허바우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티켓을 얻어 들뜬 마음으로 ‘예술의전당’엘 갔다. 좌석도 좋은 앞쪽 중간쯤에 앉았으나, 1부 중간부터는 졸음과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결국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에 고개를 꺾어가며 졸다보니 어느새 음악회는 끝나버렸다. 대체 그날 레파토리가 뭐였는지, RCO의 연주가 어땠는지는 도통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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