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꽃들처럼 사랑스런 ‘소품들’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매혹적인 선율과 흥미로운 기교로 사랑받는 클래식 소품들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등

천리포 수목원에서 물가의 목련과 수선화. 사진= 장옥님
천리포 수목원에서 물가의 목련과 수선화. 사진= 장옥님

봄이 무르익는 요즘의 한반도는 각지에서 꽃몸살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난달 중순에 찾은 태안반도의 천리포 수목원엔 서울에선 이상 기온으로 이미 우르르 피고 진 봄꽃들이 한창이었다. 곳곳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수선화와 튤립, 가지마다 어른 주먹만 한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목련이며, 동백 등 각종 꽃나무와 화초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에게 계절의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어여쁜 꽃송이들을 들여다보며 음악에서의 소품을 떠올렸다.

수형이 잘 잡힌 거목들이 교향곡의 위용을 갖췄다면, 이 아기자기한 모양과 빛깔로 눈길을 사로잡는 꽃들은 소품(piece)에 비유할 만하다. 뭉뚱그려 ‘소품’으로 부르지만, 작곡가의 음악적 영감을 따라 자유로운 흐름으로 구성된 단악장의 곡으로 결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작품들이 많다.

소품류의 음악은 클래식 입문자들이 좋아할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대개는 연주시간이 길지 않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그중 하나다. 3분 내외부터 더러는 10분 이상의 길이를 갖는 것까지 다양하다. 매혹적인 선율이 돋보이는가 하면, 종종 악기의 연주기술을 한껏 과시하며 기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곡들도 있다.

<라 캄파넬라>, <사랑의 기쁨>, <아름다운 로즈마린>, <사랑의 인사> 같은 짧은 곡들은 무대에서 주로 앙코르로 들려주는데, 그보다 길이가 긴 <치고이네르바이젠>, <치간느> 같은 작품성 높은 곡들은 프로그램의 주요 레퍼토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유명 소품의 작곡자들은 주로 그 악기의 비르투오소(명연주가)인 경우가 많다. 바이올린의 경우는 파가니니를 비롯한 사라사테, 비에니아프스키, 크라이슬러 등이, 피아노에는 쇼팽과 리스트, 멘델스존, 슈만 등이 유명 소품을 많이 남겼다. 그밖에도 첼로, 플루트 같은 독주악기의 연주자들이 그 악기를 위한 소품을 작곡한 예가 많다. 관현악 소품으로는 오페라의 간주곡과 전주곡이 소품처럼 알려져 있는데, 잘 아는 <타이스의 명상곡>은 마스네 작곡의 오페라 <타이스>의 간주곡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따뜻하고 다정한 한마디 <사랑의 인사 Salut D’Amour>

‘사랑의 인사’는 제목만 들어도 어떤 음악일지 상상이 가는, 참으로 정겨운 제목의 곡이다. 여기에 작곡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더욱 훈훈해진다. 영국의 공식 모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행진곡 <위풍당당>의 작곡가 엘가(Edward Elgar,1857~1934)는 젊은 시절엔 신분이나 학력, 경제적인 면에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교회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음악의 기초교육을 받았고, 이후에는 거의 독학으로 작곡과 지휘, 연주법 등을 익혔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일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던 이 무명 작곡가에게 아홉 살 연상의 한 여성이 피아노를 배우러 온 것이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명문가의 딸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인 캐롤라인 로버츠는 엘가의 음악성을 높이 사고, 그를 격려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에 힘입어 엘가는 점차 음악가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해 갔다. 그러는 사이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지만, 무명의 작곡가와 결혼하려는 딸에게 분노한 아버지는 상속권까지 박탈하겠다며 그 만남을 극렬히 반대했다. 1888년 7월 둘만의 약혼식을 가진 엘가는 캐롤라인을 향한 사랑과 고마움, 미안함의 표현으로 <사랑의 인사>를 써서 선물했다. 이 곡을 헌정 받은 캐롤라인은 ‘바람부는 새벽’이라는 자작시를 지어 화답했고, 두 사람은 이듬해 5월 결혼하였다.

<사랑의 인사>는 처음에 바이올린과 피아노 2중주곡으로 만들었으나, 엘가가 관현악곡으로도 편곡하였다. 원래는 독일어에 능통한 캐롤라인을 위하여 독일어 제목인 ‘Liebesgruss’로 했으나, 출판사가 프랑스어 Salut D’Amour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랑의 헌사로서 태어난 이 곡은 오늘날 엘가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곡이자, 여타의 클래식 곡목 중에서도 가장 폭넓게 사랑받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결혼 후에 런던에 정착한 엘가는 1890년 우스터에서 거행된 합창음악제를 기화로 일반에게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영국을 위해 만든 기품있는 명곡들로 엘가는 기사(Sir) 작위를 받는 등, 영국의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다.

# 유튜브동영상= 사랑의 인사

낭만적 환상이 가득한 바이올린의 명곡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악기가 빚어내는 다양한 표정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는 전율의 순간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어린 소녀의 여린 숨결 같다가도 어느 순간 요염하게 쏘아붙이는 요부의 눈빛 같은 극적 반전의 순간들. 이 작고 여린 현악기가 뿜어내는 다양한 음색과 기교. 그윽한 중음부터 날카로운 고음까지의 음역을 바탕으로 대체로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지만, 겹음의 빠른 패시지로 치고 나갈 때엔 거친 포효도 서슴지 않는다.

클래식을 처음 좋아하던 시절의 명곡은 바로 이런 곡들이다. 짧지만 그 안에 극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이 곡이 아닐까? 곡이 연주되는 7분여 동안 바이올린의 풍부한 표현력에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다.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의 <치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은 ‘집시의 노래’라는 제목처럼 집시음악의 애상(哀想)과 흥겨움을 담았다. 거창하고 인상적인 도입부에 이어 심금을 울리는 애잔한 가락이 흐른다. 그리고 집시들의 격렬한 춤판인 양 바이올린의 불꽃 튀는 기교가 작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흥을 돋우며 끝을 맺는다.

스페인 출신의 사라사테는 어릴 때부터 신동(神童)으로 불렸는데, 당시의 이사벨 여왕을 크게 감동시켜 여왕으로부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사 받았다. 10대에 파리로 유학하여 달콤한 음색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특성을 흡수하여 더욱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파가니니의 뒤를 잇는 비르투오소로 이름을 날렸으며, 동시대의 작곡가인 랄로, 부르흐 등이 그에게 협주곡을 헌정하였다. 작곡에도 재능을 보여 <치고이네르바이젠> 외에도 <서주와 타란텔라>, <카르멘 환상곡>, <스페인무곡>등 스페인 전통 춤곡과 집시음악의 리듬을 살린 바이올린의 명곡을 다수 남겼다.

# 유튜브동영상= 치고이네르바이젠

‘파반느’라는 제목의 우아한 두 곡

포레(Gabriel Fauré,1845~1924)는 파리의 니데르메이에르 종교음악학교에서 작곡가 생상스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가로 성장했다. 후에는 음악가와 교육자로 인정받아 파리음악원의 원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라벨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을 여러 명 키워내는 등 프랑스 근대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목록은 교향곡 같은 대규모 장르보다는 실내악, 가곡, 피아노곡 등 소규모 음악들로 채워져 있는데, 모두가 프랑스적인 우아함과 서정성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1890년에 작곡한 <레퀴엠>은 그의 대표작이자 레퀴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파반느(Pavane)는 원래 16~17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궁정무곡으로 다소 느린 템포의 장중한 곡인데, 포레는 1887년에 합창이 가미된 관현악을 위한 <파반느>를 작곡하고는 “우아하지만 특별한 중요성은 없다”라며 크게 의미를 둔 작품은 아닌 듯이 말했다. 그러나 곡 전체를 감싸는 우수(憂愁)어린 서정성과 관현악과 합창이 신비롭게 어우러져 프랑스음악 특유의 에스프리를 전해준다. 작곡가가 합창 파트를 옵션이라고 써놓았기에 대개는 합창 없이 연주되고 있지만, 가능한 합창이 들어간 관현악 버전을 추천한다.

# 유튜브동영상=포레의 ‘파반느’

포레의 이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곡으로 라벨(Mauris Ravel,1875~1937)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다. 제목에서 풍기듯 다소 무겁고 우울한 느낌에 중세풍의 신비함도 더해진 곡이다. 원곡은 피아노를 위한 곡이지만,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많이 연주되고 있다.

# 유튜브동영상=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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