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하락의 예언서 된 ‘도어스테핑’

[박정인의 언론비평] 30% 지지율 만든 ‘도어스테핑’의 함정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의 교묘한 시도

미국 대통령은 장거리 이동에는 에어포스 원(Airforce one)을 타고, 캠프 데이비드 같은 워싱턴 DC 외곽 정도로 가는 중거리 이동에는 마린 원(Marine one) 헬리콥터를 탄다. Marine one은 백악관 앞 마당에서 이륙하는데, 건물에서 헬리콥터까지 걸어가는 길목에 출입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대통령이 잠시 멈춰 문답하는 걸 취재한다. 일종의 ‘도어스테핑’이다.

그런데 이 약식 기자회견의 환경이 묘하다. 헬리콥터 날개가 돌지는 않아도 엔진 소음으로 여겨지는 소리 때문에 기자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러 질문해야 하고, 대통령도 큰 소리로 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세밀한 질문을 하기 어려워서 보통 대통령의 일방적인 발언으로 끝나곤 한다.

출입기자들 입장에서는 대통령 말 한마디가 아쉬우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취재를 하려고 몰려가지만, 헬기 소음을 이용한 백악관의 교묘한 이슈 장악 시도에 들러리 서는 면이 없지 않다.

쿨한 듯 많이 부족한 ‘도어스테핑’

대통령이 캐주얼하게 걸어가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요즘 말로 쿨해 보일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도어스테핑은 국민 알권리 충족이나 소통의 본질과는 좀 거리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데일리 도어스테핑도 그렇다.

우선 느껴지는 문제가 과연 아침부터 대통령이 모든 현안에 대해 답할 준비가 돼 있을까 하는 점이다. 국정에 대한 정보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장관이 한 말을 대통령이 뒤집으면 혼란을 줄 수 있다. 미 행정부의 브리핑에서는 대변인들이 두툼한 폴더를 들고 연단에 선다. 백악관 브리핑을 비롯해 국무부 noon briefing이나 국방부 브리핑에서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이 폴더에서 나온다.

폴더는 당일 이른 아침부터 행정부 전체가 모든 현안에 대해 입장을 통일해서 정리한 자료철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백악관이나 국무부나 국방부 대변인의 답이 똑같다. 철저한 일관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데일리 도어스테핑이 정부 각 부처의 입장과 이 정도 일관성을 가지려면 아침 출근 전에 대통령실과 부처의 입장이 일관되게 정리돼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 입장을 듣고 기업은 투자를 할지 말지, 국민은 집을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오늘 얘기 다르고 내일 얘기 다르면 안된다. 실수로 한마디 잘못했다 정정하면 언론은 그런가 보다 하고 놔두지 않는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건 아닌지, 그 사이에 정책 갈등이 있어서 바뀐 건지 따지고 든다. 불필요한 의혹이 늘어난다.

둘째,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매일 언급하면 그 현안이 진행된 결과는 대통령 책임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이 매일 기자들에게 물가 잡겠다고 말하면 국민은 물가 잡는 일은 대통령의 직접 임무라고 인식한다. 그러다가 인플레가 악화되면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비난한다.

특히 정책과 관련한 메시지는 해당부처가 정책을 마련해 발표하고 그 뒤에 대통령이 살을 붙이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먼저 말하고 부처가 따라가면, 부처가 마련한 디테일한 정책 플랜이 한마디 툭 던지는 대통령의 말에 묻혀버린다. 국민이 정책의 제목만 보고 내용은 흘려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정의 포괄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개별사안까지 책임지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 전쟁에서 매일 전투가 벌어지는데 어느 하루 소대나 중대 단위 전투에서 졌다고 번번이 사단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은 경제운용 잘하라고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하고 부총리가 물가, 경기, 고용, 환율, 부동산 같은 세부 정책에 책임지는 게 맞다.

셋째, 국정에 대한 정보는 추가 질문(follow up question)으로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 복잡한 국정을 한 마디 툭 던져서 설명하기란 어렵다. 의문이 가는 부분은 기자가 계속 추가 질문하고 답변자가 충실하게 답변해야 한다. 도어스테핑은 말 그대로 문 열고 걸어 들어가다 잠시 멈춰서서 하는 방식이다.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정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고 소통하려면 정례 기자회견 같은 걸 자주 해야 한다. 준비된 답변이라고 식상해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미리 받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도 있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질문을 임의로 골라 답하지만 않는다는 전제로, 회견에서 나올 질문에 대해 미리 입장을 정리하고 자료를 챙기는 건 당연하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퀴즈대회나 순발력 테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이 코로나 확산을 명분으로 도어스테핑을 잠시 멈추겠다고 밝혔다. 내심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벌면서 어떤 방식으로 재개할 지, 아니면 대안을 마련할 지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웬걸. 중단은 단 하루로 끝났다. 대통령과 기자들 사이의 간격만 평소 1~2미터(m)에서 6~7미터(m)로 벌어졌다. 중단을 주장한 쪽은 참모들이고 재개를 결정한 쪽은 대통령이라는 소문이다.

그동안은 소통이 안된다고 아우성이더니 정작 매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니까 그게 문제라고 비판하는 꼴로 비치는 점은 인정한다. 명색이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소통도 못하면 곤란하다. 잘 준비된 도어스테핑은 훌륭한 소통 방식으로 정착할 수도 있어 보인다. ‘잘 준비된다’는 전제가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주는 부담을 감수할 수 있다면.

실제로 벌어진 일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데일리 도어스테핑은 그동안 ‘잘 준비된’ 대신 ‘준비가 잘 안된’ 소통의 속살을 여러 차례 들켜왔다. 시작은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앞 시위에 관한 6월 7일 문답 아닌가 싶다.

[6월 7일] 양산 사저 시위관련 질문에 대해

“글쎄 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습니까?”

검사 출신답게 모든 걸 법으로 해석하는 말투였다. 대통령은 법과는 별도로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사저 앞에 극우 세력이나 유튜브 장사꾼들이 몰려가 시위를 벌이면 그건 법을 떠나 정치적이고 도의적인 문제가 된다. 윤 대통령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나라를 위해 고생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합니다” 정도로 답했으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에게 갈수록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문답도 주목받았다.

[6월15일] 봉하마을 예방에 사적 지인을 동행한 사실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 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할지… 수행이나 비서팀이 전혀 없이 혼자 다닐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주시죠.”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단임이기 때문에 모두가 대통령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다. 과거 대통령들은 ‘처음’ 해보는 영부인 업무를 제2 부속실에 맡겼다. 그런데 역시 처음 해보는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을 없앨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공식, 비공식’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수행이나 비서 업무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건 뭔지 의아하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기발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봉하마을은 국민 모두가 갈 수 있는데 아닌가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거나, 봉하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일반 국민이 방문하는 것과 대통령 부인이 전직 대통령 부인을 예방하러 가는데 사적인 수행원이 따라간 것을 동급으로 본 시각이다. 사안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거나 왜곡하려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소통은 다른 어느 정책보다 정밀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발언을 되돌아 보자.

[6월20일]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대해

“글쎄 이게 지금 통화량이 많이 풀린데다 높은 인플레이션,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 전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지금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들이기 떄문에 이것을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습니다.”

이 발언 뒤에 민생을 우선으로 해서 해당 부처들이 열심히 대책을 찾고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장이 보기에 이 발언은 ‘우리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에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거구나…’라고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비슷한 발언을 했으면 아마 세계 금융시장에 태풍이 몰려왔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하게 하락해 30%대로 접어든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게 인사문제이다. 검찰중용, 지인인사, 검증부실 같은 문제들이 지적됐다. 실제 도어스테핑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여러 번 드러났다.

[6월 10일] 박순애 당시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 문제에 대해

“음주운전도 언제 한 것이며 상황, 가벌성, 도덕성 같은 걸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주운전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닙니다.”

[7월 4일/5일] 박순애, 김승희, 송옥렬 후보자에 대한 잇딴 논란과 관련해

“전문성과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빈틈없이 발탁했습니다. 도덕성 면에서 전 정부에서 밀어부친 인사들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음주운전에도 종류가 있어서 장관 시키는데 문제가 되는지 안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논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다. 이전 정부의 인사와 비교하는 발언은 ‘흠결이 좀 있어도 전 정부 인사보다는 낫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6월8일] 검찰출신이 대거 기용된데 대해

“과거 민변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나요?”

이전 정부가 -10점을 받았으니 나는 -5점만 받아도 5점이나 플러스라는 인식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민의 기대 척도는 다시 영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잇딴 인사 잡음과 영부인을 둘러싼 논란, 여당 내 갈등 같은 문제들이 겹치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급기야 30% 초반대까지 주저앉았다. 그걸 예견해서였을까? 지지율 하락세가 보이기 시작한 지난 4일에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 때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고…”

하지만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별로 유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아니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30% 초반대 지지율은 조만간 제대로 고개 숙여 사과하거나, 자신이 내세웠던 핵심 공약 가운데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경고등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지지율 30%가 깨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1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밑천 들켜버린 尹대통령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지지율 하락의 직접 원인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 발언을 잘 돌아보면 지지율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들을 대통령이 육성으로 간접 예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통에 나선 건 좋았는데 준비없이 너무 솔직하게 소통하는 바람에 밑천을 들켰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 도어스테핑의 역설이다. 국민도 그걸 안다. 도어스테핑 논란이 자꾸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대통령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답변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47.3%에 달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7월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 대상)

도어스테핑에 대해 “친절한 건 좋은데 국민이 불안해 하니까 오락가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의 충고가 의외로 따뜻해 보인다. 아니. 사실은 야당과 진보 언론이 도어스테핑에 대해 초반부터 의외로 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도어스테핑이 윤석열 정부를 위협하는 가장 예민한 뇌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사고칠 때까지 계속하라고 부추긴 건 아닐까? 터무니없이 발칙한 상상이라면 철회하겠지만, 내가 야당 사람이라면 충분히 유혹을 느낄 것 같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