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과 한동훈이 쏜 화살의 향배는?
[박정인의 정치 평론] ‘386세력의 퇴출’ 화두로 경쟁중 총선결과후 이들 정치 운명도 희비 민주당 승리시 이준석 ‘차기 보수 리더’로 국민의힘 승리시 한동훈, 대통령과 맞짱
이준석 : 1985년 서울생. 서울과학고 졸업. 미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컴퓨터과학 학사.
한동훈 : 1973년 서울생. 현대고 졸업. 서울대 법대 학사. 대학 재학중 37회 사법시험 합격.
총선을 한 달 남짓 앞둔 지금 선거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인물이다. 총선하면 아무래도 여야 거대 정당들의 맞대결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인데 언론과 대중은 두 인물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어쩌면 관심의 편중이 총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엄친아들의 머리속 생각들
이준석과 한동훈. 누가 봐도 황금 스펙을 갖췄다. 전형적인 ‘엄친아’들이다. 엄친아가 총선의 관심대상으로 떠오른 경우는 흔하지 않다. 총선에서 엄친아 시늉을 하다간 대중의 질시를 받아 표를 깎아 먹기 쉽다. 그래서 전형적인 엄친아 엄친딸인 나경원, 조윤선, 홍정욱도 선거 때만 되면 ‘서민 코스프레’를 하느라 바빴다.
이번 총선의 엄친아들은 좀 다르다. 서민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 없다. 별로 겸손해 보이지도 않는다. 한동훈은 넥타이 패션, 안경테 패션이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눈치다. 이준석은 일찌감치 ‘싸가지 없는’ 멘트로 악명이 높고, 하버드 시절 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준다면 그것은 우중충한 빛일 것이고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우리가 비빔밥의 고명을 갈아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테레오타이핑, 즉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이준석)
내가 잘나서 엄친아인데 남들 눈치보느라 일부러 맞출 필요가 없다는 자세다. 나는 나이지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다는 MZ 세대의 마인드다.
두 사람의 두 번째 공통점은 (어쩌면 중대한 공통점일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 대한 경험의 부재이다. 한동훈은 유치원을 다니며 80년 봄을 맞았고, 87년 체제의 출범을 중학생 때 겪었다. 이준석은 심지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절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는 유신 독재도. 신군부 쿠데타도, 87년의 질풍 같던 나날도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으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자부심이나, 참여하지 못한 부채의식 역시 없다. 요즘 세대가 그 시절을 ‘택시운전사’나 ‘서울의 봄’ 같은 영화로 이해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로 광주를 찾아갔을 때 과거 보수 정당 대표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조심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사과할 건 하고 아니라고 할 것도 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런 자세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보수정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광주에서 두 자릿 수 득표를 하는데 기여했다.
한동훈은 최근 자신은 5.18 당시 유치원에 다녔다면서 “우리 세대들도 열심히 살아왔고 그런 식으로 도덕적 훈계를 들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시절 학생들에 대해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는 임종석의 주장에 대한 답이었다. 보수든 진보든 우리 정치에서 5.18을 놓고 이렇게 당당하기는 어려웠다.
‘386세력의 퇴출’을 총선 화두로
엄친아가 5.18과 운동권에 대해 할 말 다 하면서 총선을 지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는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그러려면 겸손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고, 잘났다고 나대기 보다는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읍소해야 한다.
이들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설정한 총선의 화두에 있다. 바로 ‘386 운동권 세력의 퇴출’이다. 80년대에 부채가 없는 세대가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을 구세대로 몰아 내쫓을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보는 것이다. 무모하지만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한동훈은 함께 작업할 상대로 ‘동료시민’을 선택했다. 당 비대위원장 취임사에서도 열 번이나 반복했다. 동료시민이란 미국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my fellow citizen’의 번역이다. 실은 진보진영이 즐겨쓰던 표현이다. ‘국민 여러분’하면 국가주의의 냄새가 나는 반면 ‘동료시민’은 ‘내가 주인이고 우리가 함께 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보수정당의 대표가 동료시민을 반복하는 것은 지금의 진보세력이 더 이상 ‘우리가 함께 할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유권자 여러분은 저와 같은 편이고, 30여년 전 운동권 경력을 지금까지 재탕하면서 기득권을 붙잡고 있는 저들은 적입니다”라는 레토릭이다.
이준석은 ‘공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운동권 세력과 구 보수 기득권 세력을 한꺼번에 공격한다.
“학생들이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깔 때문에 꿈을 지워나가야 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경쟁의 출발선에 서기 전까지 아이들이 부족함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여러분을 모두 미래의 정치로 초대하겠습니다”라면서 과거와의 결별을 촉구했다. 여기서도 ‘시민’이 언급된 게 인상에 남는다. 한동훈과 이준석은 ‘보수는 더이상 보수정당 세력이 아니라 기득권을 움켜쥔 채 낡고, 변화를 거부하는 모든 세력을 뜻한다’고 외치는 듯 하다.
민주당의 약점을 공격하는 이들
민주당 사람 누구도 선거구도가 민주 대 반민주로 치러질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 상당수 인사들은 아직도 선거가 서민 대 부자, 소외된 자 대 기득권자 같은 고전적인 구도로 치러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서민과, 소외된 이들이 자기 편이라고 오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너무 오랜 기간 시대 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데 소홀했다. 80년대, 90년대부터 이름을 들어봤던 사람들이 아직도 당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 피를 수혈했다고 하지만 겉만 새 피였지 속은 낡은 민주당 정서 그대로였다. 과거 기업이나 중도, 보수진영에서 영입한 인사들 상당수는 정책과 이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 질려 발길을 돌렸다.
이 현실을 80년대로부터 자유로운 보수의 리더들이 마음껏 활용하기 시작한 게 이번 총선이다. 민주당은 선거구도를 윤석열-김건희 심판으로 잡고 싶겠지만 한동훈과 이준석이 운동권 386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공격에 나서면 대통령 부부는 관심사에서 빠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미 국민의힘 후보들은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 대신 한동훈과 어깨동무하는 사진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김건희씨가 디올백을 받았다 들키고,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를 맴돈다고 해서 민주당이 선거결과를 낙관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자칫 386 청산론이 바람을 타면 민주당은 대책없이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한동훈과 이준석의 화두에 맞춰 386을 몰아낼 것인가.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풀기 어려운 딜레마다. 벌써 당내 내홍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화 운동한 게 잘못도 아니고 잘라야할 이유인가?”라고 이재명 대표가 말한 게 그의 고심을 반영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한동훈, 이준석이 올린 깃발보다 더 높고 더 눈에 띄는 깃발을 들어야 한다. 그게 무엇일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거는 인물과 이슈 싸움이다. 눈에 띄는 인물이 나와 이슈를 선점하면 승산이 높아진다. 인물 면에서 이재명은 한동훈, 이준석에 비해 올드할 수 밖에 없다. 단지 나이가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관 때문이다. 이미지 주도권은 한동훈, 이준석에게 기울어져 있다. 내가 이재명이라면 두 사람의 이미지를 능가할 인물을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히고 배후로 물러나는 선택을 할 것 같다.

정치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닌 만큼
한동훈과 이준석이 던지는 메시지는 당연히 기존의 보수에게도 위협이다. 기득권은 386 운동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뿌리 깊은 기득권의 성곽이 여전히 보수세력을 에워싸고 있다. 386이 쫓겨나는데 대를 이어 권력을 유지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 온 세력에게 자리를 보전하라고 놔둘 수는 없다. 이준석은 TK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려 할 것이고, 한동훈은 공천을 통해 물갈이를 시도할 것이다.
한동훈이 TK 물갈이에 성공하면 이준석에게는 설 땅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모른다. 공천을 못받은 구세대 TK가 이준석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그가 반길 것 같지 않다. 이와 관련해 떠도는 소문이 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로 사퇴압박을 받을 때 이준석을 찾아가 ‘물갈이 불안에 떠는 TK 의원들과 함께 신당에 합류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이준석이 거절했다는 줄거리다.
그렇다고 이준석이 마냥 구세대 보수세력을 외면할 수도 없다. 신당이 자리를 잡으려면 새로운 중도세력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못지 않게 기존 보수의 영역을 상당 부분 점령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준석의 꿈은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세력의 중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에 비해 공략해야할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이준석에게는 부담이다.
한동훈도 부담은 작지 않다. 수도권에서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386 운동권 출신을 꺾어야 하고 TK의 물갈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그러다보면 윤석열 대통령과의 힘겨루기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뜻만 따르는 건 당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다고 여당이 대통령 뜻 무시하고 선거를 치르기도 곤란하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보내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사태가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어도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 이유다.
보수의 리더는 누가 될까
구도가 특이하다보니 선거결과에 더욱 관심이 간다. 누가 이길까. 국민의힘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경우를 보자. 한동훈은 대선을 향한 날개를 달게 된다. 여권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뜨는’ 흥미로운 정치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준석은 신당이 아무리 의석을 많이 확보해도 보수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절반의 승리에 그친다. 선거 패배로 분열의 길을 가는 민주당에서 이탈한 세력을 더 흡수해 힘을 키울 수는 있겠지만 버거운 싸움이 될 것 같다.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한동훈은 패배다. 원내에 앉을 의석도 없는 패장이 보스 자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이 때 이준석에게는 여소야대가 여러가지 옵션을 줄 가능성이 높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원내3당까지 된다면 중도 보수의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있을 것이고, 그보다는 못하더라도 일정 의석의 원내 교두보만 쟁취하면 기회의 불씨는 남는다.
여야 모두가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이준석의 신당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면 이준석에게는 ‘꽃놀이 패’가 주어지는 셈이다. 대선까지 이준석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의 회오리 바람이 불 것이다. 나는 졌지만 적도 졌으니 한동훈의 정치생명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했던 자사고와 과학고 출신이 보수의 리더 자리를 놓고 각축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흥미로운 선거다. 그 밥에 그 나물보다는 다양한 먹거리가 차려진 밥상이 좋을 수 밖에 없으니. 애초에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축제라면 각양각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어울려 노래하고 춤춰야 한다. 각자 자기 노래를 부르며 춤추다가 옆 사람과 리듬과 박자를 맞춰 즉석에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유권자들이 즐거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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