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미국에서 인내심 기르기

[김수영의 미국속 한인이야기] SK배터리 공장 한국 기술자들이 겪는 고초 독립기념일 연휴에 ‘최악의 인터넷 불통’

미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에 들어선 SK배터리 공장.
미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에 들어선 SK배터리 공장.

필자가 사는 미국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 이 도시에 한국의 SK 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들어온 지 약 3년이 됐다. 조지아주 역사상 최근 한 세기 내에 가장 큰 단일 투자 플랜트라 일컬어지는 공장이다.

이 공장은 주도(州都)인 애틀란타시 다운타운에서 약 65마일(100 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283에이커(118만5천여 ㎡)라는 대규모 부지 위에 세워졌는데, 한인들이 많이 사는 귀넷 카운티에서는 자동차로 85번 고속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야한다. 한인들이 특별히 사우스 캐롤라이나 방향으로 운전해 갈 일이 있지 않는 한 이 공장을 일부러 보러 가는 일은 많지는 않다.

SK배터리 공장의 위치도.
SK배터리 공장의 위치도.

현지인 기대 큰 SK배터리공장

필자는 이 배터리 공장의 한 부서의 ‘하우징 담당’이다. 한국에서 온 직원들을 위해 임대해서 살 집을 구해주기도 하고, 거주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들과 집주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근처 137번 도로출구까지 자주 가기도 하고, 가끔 SK 배터리 공장이 보고 싶어지거나 주변의 발전 상황이 궁금하면 돌아보고 오기도 한다.

가는 길에 가끔 차에서 내려 현지의 미국 사람들에게 SK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인근에 집을 짓는 건축업자들이나, 아파트 관계자들, 하다못해 차에 기름을 넣고 있는 주민들, 맥도널드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주변사람들에게도 지나가는 말투로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워낙 규모가 큰 공장이 들어섰다고 환영하면서, 잭슨 카운티는 물론이고 바로 옆인 뱅크 카운티까지 고용 창출 등 지역경제에 미칠 효과를 기대했다.

실제로 이 주변 동네엔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시골 깡촌 같았던 곳에 SK 연관 업체들 수요를 맞추는 하우스 렌트(주택 임대) 시장 붐이 일어나고, 한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하는 투자용 집구매도 늘었다. 이뿐 아니다. 그들이 찾게될 자동차 렌트 시장, 단기 숙소인 에어비엔비용 주택 구입 문의, 세입자를 위한 관련 보험 문의, 공장주변 창고나 호텔, 한국 식당 입점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한인 마켓이나 근처 월마트 등에서는 현지인과는 다른 분위기의 한국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지·상사 임직원, 기술자들, 그리고 3개월 무비자로 체류하는 ESTA VISA(전자여행허가)로 입국한 사람들. 낯선 젊은 한국인들이 거리 곳곳을 휘젓고 다닌다.

깔끔하고 감각적인 패션의 젊은 한국인들은 필자 눈에는 전기차 배터리 관련 기술자들이나 지·상사 출장 나온 임직원들이 분명했다. 필자의 마음같아서는 반가워서 말이라도 걸고 도와줄까 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낼까봐 그냥 지나가곤 했다.

인터넷 환경 열악...한국기술자 ‘고전’

필자의 역할은 한국에서 온 SK 배터리 소속 기술자들이 미국 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조지아주 현지에 입주하려는 한국 기술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30대 말이나 40대 초로, 초등학생 자녀를 한국에 두고온 젊은 가장들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이들은 조지아 촌동네에서 여러모로 고전중이다. 이들이 적응하는데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미국의 빈약한 인터넷 환경.

조지아는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한국처럼 기지국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몇몇 지역은 아예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새로 생기는 동네 중에는 인터넷 라인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입주한 지 거의 한달 이상이 되도록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천둥·번개라도 치면 인터넷 선을 뽑았다 꽂는 일을 반복해야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래도 속도가 느려 울화통 터지기 일쑤다.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며칠동안 인터넷이 안되는 곳에 사는 상황이라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은 터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종종 반복되고 있다.

가뜩이나 낯선 미국 땅에 친구들도 없고, 주변에 놀러 다닐 정도는 아닌 시간에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하고 싶은데, 인터넷이 터지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답답한 건 우리의 몫이고 인터넷 수리를 위해 현지 기술자를 부르면, 3~5일후에나 그것도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 사이에 알아서 오겠다고 기계음처럼 대답한다. 간신히 오는 날 일정을 잡아줘도 그 날은 하루종일 아무 것도 못하고 꼼짝 않고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고쳤다 싶었는데, 이게 또 먹통이라면… 거의 고문이다.

며칠 전 그런 상황이 폭발했다. 통상 미국 사람들은 독립기념일(7월4일)을 거하게 치른다. 이 날만 되면 도시의 모든 풍경이 휴가 모드로 바뀐다. 그런데 올해 독립 기념일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그 바람에 주택 단지 전체가 인터넷이 불통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수십 채 되는 단지에서 각 집마다 인터넷 불통을 해결해달라며 애원 겸 협박 섞인 단체톡과 보이스톡으로 난리가 났다. 필자와 필자 회사의 직원들이 나서서 인터넷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전화를 안 받거나, 전화를 받아도 독립기념일 휴가 이후에나 정상적인 서비스가 된다는 답이 고작이었다. 이 단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젊은 기술자들은 “뭐를 하고 있으라는 거냐”며 불평을 쏟아냈다. 폭우에 세상이 멈춰버리는 상황. 미국의 인터넷 인프라가 이렇게 후지다. 또 수리요청에도 휴가라며 매뉴얼에 책임을 미루는 태도 역시 한국 젊은 기술자들의 짜증을 더했다.

미국에서 전기나 기름, 물을 공급하는 서비스를 영어로 utility service 라고 한다. 서브디비전이라는 주택 단지가 형성되면서 처음부터 물(상하수) 서비스는 어느 회사가 맡고, 전기 서비스는 어느 회사가 맡는 식으로 서비스할 회사가 딱 정해졌다. 여러 회사가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그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비 온 후 인터넷이 느리다고 다른 회사로 바꿔달라는 항의를 하더라도 실제로는 서비스 제공회사를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미국생활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통신이 잘 되지않는 모습을 보면서, 초고속 인터넷에 익숙한 한국출신 젊은 기술자들은 미국을 미개한 나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조지아주정부 관계자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회장. 사진=연합뉴스
조지아주정부 관계자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회장. 사진=연합뉴스

선진국 미국의 부끄러운 민낯

한국에서 온 첨단IT 기술자들은 인터넷 만큼이나 미국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에도 치를 떨 것이다. 조지아주는 그나마 한국말을 하는 한국 의사들이 최근 몇년새 많이 늘어나 내과나 가정의학과 병원에서 한국어로 간단한 진찰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수술을 집도할 한국인 의사가 없어 미국 병원으로 가야 한다. 영어도 안되는데다 수술 날짜를 잡는데 한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오죽하면 필자의 지인은 맹장이 터졌지만 현지에서 수술날짜를 잡느라고 애태우느니 진통제 먹고 참으며 한국가는 게 낫겠다며, 아픈 배로 한국에 가서 수술을 한 경우도 있다. 물론 몇 가지 경우만 갖고 전체를 판단해선 안되지만, 이렇게 불편하고 울화통 터지는 것은 성격이 급하다는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다. 미국인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후진성이다. 우주선 타고 화성에도 가는 이런 시대에, 여러 사회 인프라 시스템의 발전 속도 차이가 현격해질 거라고,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역설한 게 생각난다.

최첨단 전기차에 들어갈 전기 배터리를 생산할 기술자들이 폭우가 쏟아진 미국 독립기념일에 인터넷 불통으로 조지아 촌동네에서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겐 힘든 기념일 연휴였을 것이다. 제발, 인터넷만 연결시켜주세요라고 빌지 않았을까.

글쓴이

김수영 美조지아주 칼럼니스트

김수영(Sonia Sooyoung Kim)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조지아주 부동산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Wealthpoint Realty Group LLC의 대표를 맡아 한인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부동산 법과 에이전트 규범등을 강의하며 커뮤니티 standard를 높이는데 열정을 가지고 있다. 미국사람이 잘 하는 일이면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국인의 이름과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전문분야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을 벌이는 열정의 부동산쟁이이자 유튜버이다. (유튜브: 김수영의 미국부동산 이해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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