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가져와” 북한식 표현이 먹히는 이유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북한/분단 콘텐츠가 세계에 인기끄는 비결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컷.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컷.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영화와 드라마에, 북한 콘텐츠가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할까? 이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북한/분단 콘텐츠 요소들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은 5개의 영화와 드라마를 찬찬히 살펴보자.

헤어질 결심,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깐느 영화제의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은 남성 형사와 여성 피의자 간의 의심과 관심이 사랑으로 혼돈스럽게 변해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핵심적으로 전달하는 대사를 고르라면 이것이 아닐까 한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중국인 서래(탕웨이 분)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소원을 빌듯이 말한 것을 통역기를 통하여 재생한 목소리 대사다.

요즈음 한국 표준어에서는 신체부위 ‘심장’을 ‘마음’이란 뜻으로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이 대사를 듣는 남한 관객은 굉장히 섬뜩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한 단어가 던지는 두가지 정반대 뉘앙스의 충돌 효과를 이 영화는 노린 것이다.

북한 문화어(평양말 중심의 북한식 표준 한국어, 조선어)에서 ‘심장’은 문학작품이나 로맨틱한 상황에서 깊은 속마음이나 애절한 마음을 나타낼 때 쓰인다. 남한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진 노래 가사 ‘심장에 남는 사람’이나 ‘내 심장의 속삭임’ 같은 표현이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시나리오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표현을 ‘북한식 문화어’라고 간주한다. 심장을 깊은 속마음으로 쓰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아이들에게 ‘그놈 참 골이 좋다’는 표현과도 비슷하다.

박찬욱 감독은 의도적으로 섬뜩한 의심과 애절한 관심을 묘하게 교차시키려고 하였다. 영어 자막에서는 “형사의 머리를 가져다 주세요”로 번역되게 했고, 불어 자막에는 “형사의 몸과 마음을 가져다 주세요”로 번역하도록 해 섬짓한 느낌과 음탕한 느낌을 표현했다고 한다.

기생충, “마침내 비핵화와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는 위대한 영도자...”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에서도 북한 콘텐츠는 등장한다. 이 영화 앞부분의 코믹하고 평온한 이야기를 어느 순간 극도의 긴장된 스릴러물로 급전환시키는 이는 비오는 날 등장한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이다. 그녀 연기의 클라이맥스는 북한 아나운서 패러디 장면이다.

문광은 비밀 지하실에서 기생해 온 남편을 구출하고 반지하의 기택(송강호 분) 가족을 제압한 후에, 남편의 등 위에 올라 비장하면서도 코믹하게 외쳐댄다. “마침내 비핵화와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 똑바로 안서 이것들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2018년에 제작되어 2019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패러디 장면은 깐느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외국인 관객들의 큰 웃음을 끌어내었다. 그들은 ‘아, 맞아. 이거 코리아 영화지’라고 느꼈을까.

이 장면은 가난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무자비한 투쟁, 지하 사람들과 반지하 사람들의 사활을 건 싸움 속에서, 뭔가 씁쓸하고 번뜩이는 페이소스 씬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장면은 둘로 갈라져서 70년간 물어뜯고 싸워온 바보같은 우리 모습을 비틀어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 “약속해 줘. 내 동생 꼭 챙겨준다고”

‘오징어 게임’(Squid Game)은 넷플릭스 전세계 시청율 1위 드라마다.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오영수), 미국 배우조합상 남자배우상(이정재)과 여자배우상(정호연) 수상에 이어, 최근 또 희소식을 전했다. 비영어권 최초로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이미상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녀주연상 등 14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 드라마의 놓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는, 456억원 상금을 놓고 극한 게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어둡고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에 방치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강새벽(정호연 분)은 어린 남동생을 보육원에 두고 온 탈북 여성이다. 그녀는 구조조정 당한 쌍문동 출신 이혼남 성기훈(이정재 분)과 고객 돈까지 동원한 투자에 실패하여 빚더미에 앉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조상우(박해수 분)와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3명 중 한명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탈북 여성 강새벽은 매우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이다. 의지할 곳 없는 여성 경계인이지만 마지막까지 가장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싸워나간 인물이며,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 즉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건 유일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조금 시선을 확대하면, 강새벽의 이야기는 남한 사회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 이슈인 이방인, 난민, 또는 경계인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전세계 관객 중에서 이러한 이슈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사실상 없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배우 정호연은 드라마 밖에서 인스타그램 2천만 팔로워를 넘기며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여러 곳의 광고 모델로도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실에서 거둔 정호연의 성공은 강렬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표현해낸 그녀의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새벽 캐릭터가 갖는 보편적 이슈에 많은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수 있다.

사랑의 불시착, “일없오. ... 맨날 일이 없대. 누가 이런 거예요?”

“일없오.” 남한의 청담동에 불쑥 나타난 북한 인민군 중대장 리정혁(현빈 분)의 한마디는 요즈음 남한이나 일본 남자들에게 찾기 어려운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리정혁은 키 크고 잘 생기고 집안 좋은 남자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거는, 어쩌면 딴 세상의 상남자다.

‘일없다’는 말도 남한 사람들에게는 순간적인 혼돈을 준다. 때로는 강한 거절을 넘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붙이지 말라고 쏘아붙이는 뉘앙스로 들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상대의 친절에 대한 완곡한 거절로서 ‘고맙지만 나는 괜찮아요(No Thanks. I’m O.K.)’로 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난 아무렇지 않으니 신경쓰지 마세요(Nothing. Never Mind)’로 들리기도 한다.

“맨날 일이 없대. 누가 이런 거예요? 진짜.” 윤세리(손예진 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 북한에 던져졌어도, 배다른 남자 형제들과의 무서운 상속 전쟁에서도 항상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불굴의 여성이다. 그런 점이 일본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 전(前)기자 나리카와 아야는 분석했다. (중앙 선데이 2020.08.08)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스틸 컷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스틸 컷

일본에서 3년째 계속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2019년 말에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은 일본에서 아직까지 역주행 중이다. 일본 넷플릭스 채널에서 2022년 상반기 시청율 1위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본 건 아닐까 싶다.

내용의 반 이상이 북한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는 특이하고 씁쓸하면서도 애절하고 달콤한 멜로드라마다.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처럼 여성 팬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유명 연예인들과 정치인들까지 이 드라마에 빠져 있다고 한다.

더욱이 남한과 북한을 마구 비난하고 조롱하는 혐한 성향의 극우 정치인들조차도 이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남들에게 이 드라마의 시청을 권했다고 하니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잘 만든 드라마나 문학은 뿌리 깊은 정치성향도 뛰어넘는다는 가설을 ‘사랑의 불시착’이 입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냉면 같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이 드라마는 북한 콘텐츠를 고명이나 토핑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면이나 육수 국물처럼 음식의 기본 그 자체로 정면 배치하고 있다. 주변인물이 주는 소소하고 재밌는 웃음을 선사하는 에피소드 또한 대부분 북한에서 벌어진다. 젊은 북한군 중대원들의 맑고 코믹한 모습들, 그리고 마을 아낙네들이 펼치는 순박하고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도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스틸컷.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스틸컷.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그저 북남으로 나눴을 뿐이야”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을 한국형으로 리메이크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1편은 같은 넷플릭스 채널의 인기 작품을 리메이크했다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많은 악평과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초기에 여러 아시아국가에서 1위를 하는가 하면 전세계 비영어 드라마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남북분단과 통일 직전의 경제통합 단계라는 새로운 설정을 도입함으로써, 스페인 원작 드라마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에피소드들을 변형시켜나갈 구조를 장착하고 있다.

베를린(박해수 분)은 평안북도 수용소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반란군 리더로 성장한 무자비한 인물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현장을 장악해나가는 행동대장으로서 공포를 활용하고 남북한 출신으로 나누어서 인질들을 통제한다. “내래 언제 비인간적으로 대했네? 그저 북남으로 나눴을 뿐이야. 70년 넘게 그래 왔디 않아?” 자기 가치관이 가장 분명하면서도 흡인력이 있는 중심인물이다.

도쿄(전종서 분), 그녀는 북조선의 BTS 아미이자 5년을 군복무한 인민군 여전사 출신으로 통일을 앞두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다 처참히 무너져 강도단에 합류한다. 차무혁(김성오 분)은 인민보안성 대위 출신의 경찰청 진압팀장이며 내부적으로 대립과 팀웍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인물이다. 통일 조폐국을 습격한 강도단은 물론, 이를 진압하고 협상해 나가는 경찰팀 구성원과 잡혀 있는 인질들도 남한과 북한 출신으로 나뉘어져 있어 손쉬운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하반기에 공개될 2편에는 스페인 원작과 차별화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예측불허 반전들이 있을 것으로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원천은 남한과 북한 출신 캐릭터들의 독특한 개성과 통일 직전 한반도의 다양한 사회문제일 것이다.

남북분단 K-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

다섯 편의 세계적 히트작 K-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확인되는 북한 콘텐츠 내지 분단 콘텐츠의 힘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첫째, ‘헤어질 결심’과 ‘기생충’에서 북한 콘텐츠는 메이드인 코리아 컬처의 새로운 개성과 특색을 드러내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콘텐츠 요소는 한국인들에게는 식상함과 답답함의 현실을 떠오르게 할 수 있지만, 세계인들에게는 오히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리얼하고 치열한 주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둘째, ‘오징어 게임’과 ‘사랑의 불시착’은 이방인과 경계인의 이슈 그리고 사랑의 현실적 장벽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의지를 형상화함으로써 가장 보편적 주제들을 북한 내지 분단 콘텐츠가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부터 가장 세계적이고 보편적 주제로 천착해 들어갈 수 있는 문화적 가능성이다.

많은 K-콘텐츠는 빈부 격차나 남북 분단과 같은 가장 부끄럽고 비참한 우리 스스로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인의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우리의 문제들을 인류 모두에게 보편적인 휴머니즘 기반의 아름다운 콘텐츠문화로 형상화한 것이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의 비결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북한 내지 분단 콘텐츠는 여러 분야와 장르에서 다양한 형태와 스토리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힘, 즉 소프트파워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다시 한번 새롭게 다가온다.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의 희망이요 이상이다. (중략)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중략)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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