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를 식혀줄 납량(納涼) 클래식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빙판 위 왈츠처럼 서늘한 음악
절기상으론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 8월의 한낮은 뜨겁기만 하다. 예전에 음악방송 PD로 일할 땐 여름철이면 으레 시원함과 청량감을 주는 음악들을 모아 방송하기도 했다. 주로 강과 바다, 호수, 숲을 주제(표제)로 한 음악들을 들으며 시원한 자연 풍경을 떠올리고 잠시나마 더위를 잊으시라는 의미에서였다. 스메타나의 <몰다우 강>, 드뷔시의 <바다>, 레스피기의 <로마의 분수>같은 표제음악이 단골메뉴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시원함을 넘어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감 조성을 위해 주로 귀신이나 좀비가 등장하곤 하는데, 클래식에도 이런 서늘함을 주는 음악이 과연 있을까? 열대야를 식힐 만한 기괴한 분위기의 음악 소개에 앞서 다음의 시를 먼저 음미해보자.
지그(Zig) 지그 지그!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한밤중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그 지그 재그 바이올린의 선율을 따라,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밤은 더욱 깊어만 가며
린덴나무로부터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얀 해골이 자신의 수의를 펄럭이며,
음침한 분위기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지그 지그 지그 해골들은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춤추는 뼈들이 부딪히며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중략)
쉿! 수탉이 울자 갑자기 춤을 멈추고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죽음이여 영원하라!
- 앙리 카잘리스(Henri Cazalis) ‘죽음의 무도’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유령 이야기
위의 ‘죽음의 무도’ 이미지는 중세 이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제목도 ‘죽음의 무도’라 붙여져 있다. 중세기에 전염병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당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죽음을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삶의 일부이자 보편적 현상으로 묘사하는 풍속을 가지게 되었고, ‘죽음의 무도’는 죽음에 대한 풍자가 반영된 일종의 시대적 풍속화였다. 이 그림에는 왕, 젊은이, 아름다운 아가씨(모두 해골들) 등이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무덤가에서 유령과 함께 춤을 춘다는 내용은 하나의 전설처럼 구전되어 전해졌고, 많은 화가들이 이를 소재로 판화나 유화와 같은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이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림 뿐 아니라, 앞서 소개한 앙리 카잘리스의 시처럼 문학작품으로, 또 음악작품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동물의 사육제>로 그 이름도 친숙한 생상스(Camille Saint-Saёns, 1853~1921년)는 프랑스 낭만파 음악의 대가이다. 교향곡과 협주곡, 오페라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작품들을 남겼고, 당시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던 프랑스 음악계를 부흥시키고자 ‘국민음악협회’를 만들어 프랑스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교향시<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 Op.40>는 1872년에 카잘리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예술가곡에서 비롯되었다. 가곡을 작곡한 지 2년 뒤에 생상스는 성악파트를 바이올린 독주로 바꾸고, 곡을 확장시켜 교향시로 개작하였다.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로 그려낸 유령 음악
상상력을 동원해 실제 음악과 싱크로율을 맞춰가며 들어보자. 으슥한 밤, 고딕양식의 교회 뒤 공동묘지. 무덤에서 해골들이 부스스 일어나 수의를 펄럭이며 모여든다. 음악에서는 밤 12시를 가리키는 하프의 스타카토 음이 들리고, 죽음의 유령을 상징하는 바이올린 독주를 중심으로 두 개의 주제선율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첫 번째 주제는 스페인풍의 리듬으로 유령들의 짓궂은 분위기를, 두 번째 주제는 명상적이고 반음계적 우수를 띄며 하강하는 선율로 어두운 밤의 이면을 암시한다. 해골들은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점차 열기를 더해가며 광란의 춤으로 바뀐다. 오케스트라 역시 모든 악기가 서로 경쟁하듯, 빠른 템포로 고조된다. 춤 잔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오보에의 스타카토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죽음의 유령들이 황급히 춤을 끝내고 흩어져 사라진다. 음악도 여운을 남기지 않고 가볍고 짧게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도 당시 잘 사용되지 않던 타악기들과 실로폰으로 해골의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묘사해낸 것이 신의 한수 같이 절묘하다. 여기에 독주 바이올린에서 E현을 반음 낮추어 조율하여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깊은 밤에 벌어진 유령들의 한바탕 춤 잔치를 우스꽝스럽고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교향시(Tone Poem, Symphonic Poem)는 19세기 중반 무렵 등장한 장르로, 리스트에 의해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은 악곡형태이다. 교향곡에 비해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대신 문학적 표제를 바탕에 두고 극적 분위기를 강조하거나, 또는 스토리텔링의 다악장 형태로 진행시키는 등 음악의 낭만성을 극대화한 장르이다.
우리에게 이 <죽음의 무도>는 특별히 익숙한 선율이 되었다. 바로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 덕분인데, 이 음악을 배경으로 김연아는 은반 위에서 마녀의 이미지에 어울릴 검은색 원피스에 날카로운 눈빛을 장착하고 스릴 넘치는 기술과 완벽한 연기로 관중을 압도하며 시원한 경기를 펼쳤다. 쇼트프로그램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2중주의 3분용 편곡을 사용했지만, 원곡은 7분여에 이르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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