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듣는 애국(愛國)의 음악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민족운동과 국민주의 음악에 대해 대표적인 곡, 스메타나 ‘나의 조국’

프라하 몰다우 강 주변.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몰다우 강 언덕. 위로 고성(固城)과 대성당이 보인다. 사진=장옥님
프라하 몰다우 강 주변.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몰다우 강 언덕. 위로 고성(固城)과 대성당이 보인다. 사진=장옥님

8월의 달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날은 아무래도 8.15가 아닐까 한다. 많은 국가기념일이 있지만, 8.15 광복절만큼 그 의미가 각별한 날도 없을 것 같다. 이 날에 즈음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역사속 그날, 일제강점기의 사슬이 끊어진 그날, 선조들이 맞이한 광복(光復)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민족이 겪은 수난의 세월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치욕과 고난은 우리만 겪은 일이 아니다. 지구상의 많은 약소국들이 시대에 따라 패권을 차지한 제국이나 강대국의 침략과 핍박, 분할통치, 식민통치 같은 굴욕을 당했던 동병상련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음악작품들이 있는데, 바로 국민주의 계열의 음악들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민족주의운동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 운동은 문학을 비롯하여 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음악에서는 국민주의 또는 민족주의 음악이 등장하게 되는데, 국민주의음악은 넓게는 19세기 후기 낭만파음악의 한 지류에 속하는 것으로 주로 동북부유럽의 약소국들과 러시아, 스페인 등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주변국에 속하는 나라에서 의식 있는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명확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그, 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독일·오스트리아의 기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과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민족 고유의 음악어법과 민족설화, 민요 등의 소재를 음악 속에 살려내고자 했다.

러시아에서는 글린카를 비롯한 5인조의 작곡가들이, 체코에서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가, 헝가리에서는 코다이와 버르토크, 스페인에선 파야 같은 음악가들이 대표적인 국민주의 음악가들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보헤미아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 1884년)는 한마디로 애국의 열정을 지닌 음악가였고, <나의 조국>이라는 작품은 우리가 광복절에 즈음하여 들어보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음악이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보헤미아라는 명칭은 체코의 다른 이름인데, 옛날부터 이 지역을 흔히 보헤미아라고 불러왔다. 이 지역은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분지로, 라베(엘베)강과 그 지류인 블타바(몰다우)강의 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기름진 농지와 풍부한 광산자원으로 프라하를 비롯한 많은 공업도시가 발달한 체코의 정치· 경제· 산업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체코는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손에 넘어가 독립왕국의 지위를 잃는다. 20세기까지 합스부르크가가 세습적으로 보헤미아왕의 지위를 차지하였는데 19세기에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체코에서도 민족주의운동이 일어났다. 스메타나는 바로 이런 역사의 현장에 음악가로서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작품 활동으로 동참하였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특히 피아노연주에 두각을 나타내어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 청년기가 되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라하로 진출하여 리스트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했는데, 피아노의 대가이자 교향시를 창시 한 리스트에 심취하여 그 자신도 웅대한 구상의 교향시를 작곡하고자 했다.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서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에서 음악가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 스메타나는 여기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그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을 받게 되어 스웨덴으로 도피했다. 에테보리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일하는 한편 작곡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음악가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1859년경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을 본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 민족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1862년 프라하에 국립오페라극장이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팔려간 신부(The Bartered Bride)>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주의 오페라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초연 때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지휘자와 작곡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18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귓병을 앓게 되고, 점차 악화되어 결국엔 청력을 잃게 된다.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작곡에 전념하여 보헤미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조국의 자연과 역사를 음악으로 써내려 간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을 수년에 걸쳐 완성했다. 민족주의적 작품 활동을 총결산하는 작품이자 작곡가의 최고 걸작을 쓴 것이다. 그러나 청각상실에 겹쳐 1882년경부터 정신 이상이 생겼고, 2년 뒤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몰다우 - 조국의 산하를 흐르는 강물의 여정

교향시 <나의 조국>은 모두 여섯 곡으로 되어있다. 여섯 곡은 각각 보헤미아의 역사적인 사건과 유적지,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소재로 하였고, 모두 낭만적 영감이 넘치는 웅장한 관현악 작품들이다. 각 곡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 1곡 비셰흐라트(프라하의 옛성), 제 2곡 몰다우(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의 독일어 명칭), 제 3곡 샤르카(전설 속의 여전사 이야기), 제 4곡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제 5곡 타보르(전쟁과 조국의 흥망성쇠), 제 6곡 블라니크(숲 속에 잠든 영웅들을 추모).

이 가운데서 특별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 두 번째 곡 <몰다우>인데, 이 곡에 대해 스메타나는 블타바(몰다우)가 작은 샘에서 시작하여 점차 강이 되어 보헤미아의 숲과 들판, 역사적인 장소들을 거쳐 흐른 뒤, 결국엔 더 큰 강에 합류하는 여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무릇 강의 시작은 작은 샘에서 비롯되듯이 <몰다우>의 음악 역시 샘에서 흘러나온 작은 물줄기를 플루트의 독주로 들려주며 시작한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또 다른 물줄기를 표현하고, 두 물줄기가 한데 어울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된다. 음악은 현의 합주로 옮겨가 유려한 주제선율을 들려주는데, 시냇물이 이제 어엿한 강의 자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강물은 본격적으로 보헤미아의 숲과 평원을 가로지른다. 강가 숲에선 사냥의 나팔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마을의 결혼식에서는 사람들이 폴카를 춘다. 밤이 되어도 강물이 쉼 없이 흐른다. 달빛에 물든 고요한 강물 위로 물의 요정이 나타나 신비로운 춤을 춘다. 아침이 밝고, 다시 강물은 협곡의 급류를 거치며 격하게 휘몰아치듯 박진감 넘치는 음악으로 바뀌고, 이제 더 넓고 깊어진 강물은 프라하의 옛 성 주변을 장엄하게 흘러간다. 음악도 힘차게 끝을 맺는다.

스메타나 교황시 ‘나의 조국’중 몰다우. 지휘= 카라얀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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