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가격은 얼마일까
[박정인의 정치비평] 권력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윤대통령 ‘국민 맘 얻을’ 비용 외면 대가 지불하지 않으면 큰 탈날 수도
마야제국의 ‘피의 제전’
권력에 가격을 매기는 게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옛 마야문명의 역사를 뒤져보면 흥미로운 사례를 만날 수 있다. 마야제국의 최대 국정과제는 저녁에 지는 해가 다음 날 아침 반드시 떠오르도록 신에게 잘 보이는 일이었다. 그걸 못하는 황제는 민심을 잃어 권좌를 위협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야의 지배층은 해마다 네 번씩 제전을 열어 산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진행했다.
신에게 바칠 희생양을 고르는 일은 스포츠 경기로 치러졌다. 온통 돌로 뒤덮인 경기장에서 반라의 선수들이 고무공을 공중에 띄워 역시 돌로 만든 링 안에 넣는 게임이었다. 공을 다룰 때 손과 발을 쓰면 안 되는 룰이 있었다.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온 몸을 돌 바닥에 부딪쳐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 범벅이 된 채 뛰어야 했다.
경기의 승자는 자신과 온 가족이 지배계급에 편입되는 상을 받았다. 반면 희생양이 되는 건 패자일 거라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웬걸.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은 승리한 팀 주장이었다. 방금 치열한 경기를 마친 제국 최고 영웅의 가슴에서 아직도 요동치는 심장을 꺼내 신께 바치는 의식! 그래야 세상이 어둠에 묻히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마야에서 한 가문이 권력층에 편입되려면 가장의 목숨이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했던 셈이다.
현대에 더 비싸진 권력의 대가
권력을 사는 비용으로 목숨을 치르는 사례가 과하거나 잔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까지도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요소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되는 것 또한 목숨이다. 단지 마야시절보다 실천방법이 문명적일 뿐이다. 예컨데 영국 리더십의 산실인 이튼스쿨 출신 가운데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동문이 2천명을 넘는다거나, 한국전쟁에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했다는 집계들이 그렇다.
대중이 요구하는 권력의 가격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며 권력의 가격이 급등했다. 집권 세력을 포함한 어느 정파도 혼자서는 값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1992년에는 민정당과 YS, JP가 손을 잡고 비용을 분담해 정권을 잡았다. 그 다음에는 DJ와 JP가 역시 더치 페이를 해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권력의 값은 더욱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였다.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노무현 정권은 취임 초 하늘을 찌르던 인기를 순식간에 잃어 버리는 롤러코스터 신세를 반복했다. 권력의 가격을 만만하게 봤던 이명박 정권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의 물결을 명박산성으로 막지 못하고 사과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외상으로 권력을 빌려 줄 고정 지지층 덕에 순항하는 듯 했지만 외상에도 만기는 있었다.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권력의 값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서민이 중심이 된 다수 유권자에게 값을 치를 의지가 보였다. 대중은 이전까지 하도 시달리다 보니 좀 저렴한 값에 권력을 갖게 해줄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지불 수단으로 내놓은 정책은 번번이 현금화에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조국 사태를 맞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반면교사 취급을 받다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권에 조국 사태라는 폭탄을 안긴 장본인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권력을 잡은 쪽이 국민에게 솔선수범하고 헌신과 희생을 보이지 않으면 정권이 어떻게 된다는 걸 잘 지켜본 인물이었다. 권력의 값은 비쌌지만 지불 방법은 명확했다.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럴까
그런데 왜 취임 100일도 못돼 솔선수범이나 헌신과 희생과는 정반대의 이슈만 생산하다 졸지에 지지율 20%대로 주저앉았는지 의아하다. ‘아빠찬스’ 복지부장관 후보자, ‘음주운전과 조교갑질’ 교육부장관 후보자, 윤핵관 지역구 유지 아들 출신 행정관… 잇따른 인사 잡음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답은 “전 정권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국민은 윤 대통령이 권력의 값을 치를 뜻이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변주였다. 누구든 ‘나는 신데렐라가 되고 싶지만 남이 신데렐라 되는 건 질투하는’ 정서가 부담을 줬다. 이것만 놓고 비판을 받으면 억울할 텐데 마침 지인 동행 논란이 번졌고, 논문 표절 문제 같은 과거 이슈가 다시 불거졌다. 역할을 하고 싶어 조바심이 나더라도 잠시 미루고 국민 마음을 얻기 위한 값을 먼저 치러야 했다.
지지율이 50%에서 25%로 떨어졌으면 50%가 하락한 것이지만 25% 지지율에서 다시 50%로 돌아가려면 상승률이 100%에 달해야 한다. 이전보다 두 배로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두 배 값을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힐 걸로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두루뭉술한 답변들 뿐이었다.
“인사쇄신을 지지율 같은 정치적 목적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회견 발언은 백 번 맞는 말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비서실장이나 수석을 교체하는 건 책임전가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 목적인 아닌 진짜 인사쇄신도 시급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주변에 감동을 주고 소통할 수 있는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 장관이 한달 만에 경질된 교육부나 아예 새 정부 장관을 맞아 보지 못한 복지부에 국민이 “이런 사람 쓰려고 그동안 뜸을 들였군”하고 무릎을 탁 칠만한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정치가 풀수 있는 게 더 많다
대통령이 ‘법대로’ 대신 정치를 했으면 하는 간절함도 여전하다. 법으로 안 되는 걸 정치가 풀 수 있다. 법은 실선이지만 정치는 점선이기 때문이다. 점선에는 상대 편 영역으로 서로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예컨대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고 비대위를 구성한 조치는 당헌과 당규에 따랐다고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대통령이 과거처럼 호프집에서 이 대표를 만나 “솔직히 당신도 나한테 좀 심했잖아. 나도 내부총질 운운해서 미안하니 다 털고 우리 한번 잘해 보자고”라며 건배하는 게 정치다. 같은 맥락에서 “민생에 매진하느라 다른 정치인 (이준석)의 발언을 챙기지 못했다”는 기자회견 발언은 정치적이지 못했다. 아무리 싸움의 상대라도 무시하는 느낌을 줄 필요는 없었다.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이들을 법은 막을 수 없다지만 정치는 설득해 돌려보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잘 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요즘 갈 길을 잃어버린 친문 지지자들이 어디로 고개를 돌릴지 한번 시험해 볼 만하다. 법은 내 편이 줄어들든 말든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지만 정치의 본질은 어떻게든 내 편을 늘리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빨리 털어내야
김건희 여사 이슈의 해법은 더욱 간단하다 첫 100일은 놓쳤으니 지금부터 100일 간이라도 멋진 패션 대신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연회장 대신 밥퍼 급식소에서, 지인 대신 장관 수석 부인들과 함께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떨까? 싫어하는 이들은 그래도 ‘쇼한다’고 비판하겠지만 대통령 부인이 100일 연속 자원봉사 쇼를 하는 모습을 과거 한 번도 보지 못한 입장에서 비판할 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양극화가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가속화하는 고령화에 세대 갈등, 젠더 갈등까지 번지고 있는 현실에서 권력의 값은 갈수록 비싸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마야제국이 요구하던 수준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헐값이다. 당장 적군과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앞장서 뛰어들어야 하던 시절보다도 훨씬 저렴하다.
그렇다면 빨리 일시불로 치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다. 외상을 기대하거나 할부를 노리다간 가는 발걸음도 느려지고 쌓인 이자가 나중에 어떻게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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