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공천이 ‘진박’ 공천보다 위험한 이유

[박정인의 정치평론] ‘이재명 제 사람 심기’ 실망감 커져 여권 분열 없을 때 공천 파동은 ‘필패’ 문 전대통령 침묵에 친문의원들 ‘실망’ 명분과 기준 없는 공천, 국민 외면할 것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운데) 등 당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운데) 등 당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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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과 2024년의 살풍경

20대 총선을 눈 앞에 둔 2016년 3월, 새누리당은 뚜껑 열린 팝콘 기계 같았다. 한편에서는 최경환, 조원진 같은 이른바 ‘진박’ 감별사들이 대구, 경북을 휩쓸고 다니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을 세례주듯 지명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박’ 김무성 대표가 ‘친박’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을 재가할 수 없다면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내려가 버리는 ‘옥새(玉璽) 런(RUN)’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방으로 팝콘 튀는 소리가 들렸다.

안철수가 민주당을 뛰쳐나가 국민의당을 만들자 ‘야권 분열 덕에 새누리당이 개헌선인 180석도 얻을 수 있겠다’고 자신했던 1년 전과는 다른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140석까지 추락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 자료가 언론에 유출돼 팝콘이 또 한번 후두둑 튀어 나오기도 했다.

진박 공천은 정파적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고, 당 대표 선거에서 친박 서청원이 ‘탈박’(과거 친박) 김무성에게 패배했다. 심지어 원내대표 자리마저 같은 탈박인 유승민에게 빼앗겼다. 유승민은 대통령이 사실상 공개 신경질까지 내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불안감은 증폭됐다. 야권 분열로 총선은 어차피 이기게 돼 있으니 대구 경북 같이 당선이 확실한 곳부터 진박으로 물갈이 해서 세력을 보전하자는 계산이 나왔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감별사로 자처하던 최경환 전새누리당 의원. 사진=SBS캡처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감별사로 자처하던 최경환 전새누리당 의원. 사진=SBS캡처

2015년 12월19일 유승민에 대항해 대구동을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이재만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친박 조원진 의원이 축사에 나섰다. “내가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입니다.” 이른바 진박 감별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한 달 전 “국회가 법안을 정쟁의 대상으로만 삼는다”며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 감별사를 부르는 신호였다. 얼마 안지나 TK에서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곽상도 전 민정수석,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 윤두현 전 홍보수석, 전광삼 전 춘추관장 등이 진박 딱지를 달고 출마를 선언했다.

뚜껑 열린 팝콘 기계는 결국 선거일인 2016년 4월13일 멈춰섰다. 새누리당은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선거 직전 의석과 비교하면 민주당이 102석에서 123석, 새누리당이 146석에서 122석, 국민의당이 20석에서 38석이 됐다. 새누리당은 서울 49석 가운데 강남3구에서조차도 3석을 빼앗겨 12석을 건지는데 그쳤다. 진박 공천이 절정을 이룬 대구에서는 진박들이 나름 선전했지만, 수성갑에서 김부겸에게 의석을 내주는 등 두 군데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친박 이정현을 대표로 뽑아 전열을 정비했지만, 해가 가기 전에 탄핵의 절벽으로 추락했다.

8년 전 얘기를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지금의 민주당 모습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어렵지 않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하는 분위기다. 한동훈 체제가 나름 순항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민주당내 공천 갈등이다. 민주당의 ‘친명’ 공천이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많다. 자연히 20대 총선의 진박 공천과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친명 공천의 환경이 8년 전 진박 공천의 환경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점이다. 환경이 열악한데 무리수를 두면 사고가 난다. 여기에 친명 공천의 위험성이 숨어 있다.

‘비명횡사’ 공천이 위험한 4가지 이유

친명 공천이 진박 공천보다 위험한 첫 이유는 “안철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진박 공천 당시 새누리당은 안철수라는 훌륭한 완충판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총선보다 1년 앞서 적진이 보기 좋게 분열된 것이다. 그냥 의원 몇몇이 나가 만든 신당이 아니라 강력한 차기 대선 주자와 현역 20명을 보유한 원내교섭단체였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의석을 두 배 가까이 늘렸을 뿐 아니라, 광주광역시 전체를 포함해 호남권에서 단 3석을 제외한 전 지역구를 휩쓸었다.

야권 분열의 효과는 컸다. 새누리당이 승리한 지역구 가운데 51곳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의 합이 당선된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을 넘어섰다. 최종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새누리당이 33.5%인 반면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합한 수치는 52.2%였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을 야권 분열이 상쇄해 준 셈이다.

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에게는 ‘여권 분열’의 반사효과가 없다. 여야가 나란히 분열하고 있고,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아무리 보수표를 잠식한다 하더라도 2016년의 안철수 같은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나아가 개혁신당이 자칫 국민의힘이 아니라 민주당 잡는 매가 될 수도 있겠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천 파동이 자초한 일이다.

친명 공천이 진박 공천보다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이재명의 그립이 박근혜의 그립보다 약하다‘는 점이다.

친명 의원들과 개딸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그립이 약하다는 게 무슨 말인가. 우선 박근혜는 대통령이었다. 이보다 강력한 리더십 프리미엄은 없다. 보스가 현역 대통령인 것과 대선에서 한 번 떨어진 야당 대표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똑같이 내 사람 공천을 해도 잡음의 정도가 다르다. 여당은 공천 안 주는 대신 공기업 사장 자리 주는 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진박 공천으로 선거에 참패한 뒤에도 친박 대표를 옹립할 수 있었다.

반면 이재명의 리더십은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버티기도 버거울 상황이다. 최근 벌어지는 공천 파동을 보면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나온다. 친명을 자처하며 공천을 기다리는 예비 후보들 사이에는 “공천만 받으면 이재명과 거리를 두고 자기 장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무엇보다 사법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당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리더십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선거법 위반의 대가로 당이 국고보조금 460억원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 비명을 몰아내고 친명 친위대를 창설하려는 취지는 알겠지만 친위대의 충성을 담보할 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친명 공천의 위험성 세번 째 이유는 “김무성이 없다“이다.

20대 총선 공천 당시 김무성 대표는 이른바 ‘옥새 런’으로 대통령과 친박의 미움을 사고, 유권자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총선에서 참패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122석이나마 건질 수 있었던 이유를 따질 때 김무성을 빼기는 어렵다.

그가 옥새 런이라도 한 덕에 일부 핵심 비박의 생환이 가능했다. 대구 동을에서 유승민이 살아났고, 서초갑에서 비박 이혜훈이 친박 조윤선을 따돌렸다. 무공천 지역 가운데 은평을과 송파을에서는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볼 때 폭주하는 기관차 같던 진박 공천에 그나마 제동이 걸리면서 상당수 보수 유권자들이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많다.

지금 민주당에는 김무성이 없다. 누군가 어느 정도 힘과 지분을 가진 이가 “공천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외쳐야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당 소속 전직 국회의장 출신들이 우려를 표시했다는 기사가 났지만 당 지도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당 원로들로도 안 되면, 결국 기댈 곳은 경남 양산 뿐이다. 이 정도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기 사람들 학살 당하는 현실에 대해 점잖게 한 마디 할 법 한데 조용하다. 외려 탈당하려는 친문 의원들을 말렸다는 얘기가 들린다. 당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한 충정이라는 해석이 있고, 어떻게든 당 안에서 살아 남아 총선 후 전당대회를 통해 뒤집어 보자는 계산이라는 설도 있다. 그 사이 비명들은 하루 하루 한 사람 한 사람씩 정치적으로 비명횡사하고 있다.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것은 일견 이재명 대표에게 편리한 조건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위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견제없이 달리다 보면 리더 본인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 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친명 공천이 과하다는 판단이 들어도 쓰나미 같은 지지세력의 압박 때문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슈 경쟁의 문제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이슈 선점에 큰 무리가 없었다. 분열된 야당끼리 싸움이 치열했고 여느 총선이 그렇듯 집권당은 달콤한 공약을 쏟아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슈를 선점한 건 여당 같아 보인다. 오래 전부터 ‘김포 서울 편입론’으로 한바탕 유권자들 마음을 흔들어 놓더니 최근에는 한동훈의 개인기까지 더해 정책 이슈, 이미지 이슈 모두 점유한 모양새다.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받다가 몰카에 들켜도, 대통령 행사에서 야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입이 틀어 막힌 채 잇따라 끌려 나가도 이슈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게 안되면 경제 이슈라도 선점해야 한다고 영입 인사들이 조언해도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공천 파동을 이슈가 덮어야 하는데 공천 파동이 이슈를 덮는 꼴이다.

새누리당에서 진박 감별사라는 말이 나왔을 때 기자들끼리 우스개로 양계장 병아리 감별사 얘기를 하곤 했다. 병아리 감별사가 암수를 감별할 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명분이 있고 엄격한 기준이 있다. 누가 달걀을 품을지는 알아야 하니. 하지만 ‘진실된 사람을 공천’한다는 친박의 감별조건에는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

김영주, 박광온, 박용진, 윤영찬 같은 비명들이 된서리를 맞는 민주당 공천 역시 명분과 기준이 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2016년의 새누리당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을 안은 채 친박이 걸어간 몰락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일 뿐이다. 명분과 기준이 안 보이면 유권자들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게 모든 선거의 교훈이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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