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저출산...’연대’만이 답이다
한국, 세계에서 출산율 꼴찌, 자살률 선두 서로 연대하며 사회 지키는 노력 있어야 한국, 사회적 연대 지표 OECD중 꼴찌 각자도생 대신 ‘연대 의식’ 공유해나가야
2018년에 우리나라는 0명대 출산율에 도달했다. OECD 국가중에 0명대 출산율에 도달한 국가는 아직 없다. 1980년대에는 매해 60만 명이 태어났지만, 2020년에 20만 명 대로 추락했다. 같은 해에 사망한 사람이 30만 명이었으니,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또한 2006년부터 줄곧 OECD 자살률 통계에서 맨 위 줄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OECD 자살률 평균은 10만 명당 11명이다. 우리나라는 그 두 배가 넘는 23명이다. 국내에서 2020년에 자살한 사람은 1만3195 명이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약 30여 명씩이니, 매일 고등학교 교실 하나가 삶을 포기한 셈이다.
대체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 답은 우리의 ‘연대 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이웃과 연대하고 있을까
사회가 얼마나 두텁게 연대하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GDP 대비 국민부담률과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이 그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연대는 정부가 모두에게 비용을 분담해서 복지제도를 운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국민이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얼마나 감당하는지, 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복지제도에 쓰는지를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연대 의식이 높은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두 분야에서 모두 하위권이다. 민주화 이래로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과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단 한 번도 OECD 평균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프랑스나 북유럽 국가들이 GDP의 40%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거두고, 30%를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하는 동안, 우리는 이제 겨우 26%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거두고, 고작 12%를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했다. OECD에서 우리보다 적게 거두고 적게 쓰는 나라는 칠레, 멕시코 정도다.


우리는 연대하기 보다는 각자도생하고 있다. 그 대가로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쪼그라들고 있다. 새로운 사람은 태어나지 않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줄지 않는다. 비극은 머지않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일상마저 위협할 것이다.
진작에 충분히 연대했더라면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다. 출산할 때 발생하는 위험 부담과 심리적 한계에 내몰린 사람을 돕는 비용을 모두가 분담했더라면, ‘출산율 꼴찌’와 ‘자살률 선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일본, 핀란드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프랑스 원주민 출산이 많은 이유는
프랑스는 GDP의 4%를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에 투여한다. 이는 OECD 국가들중 두 번째로 큰 예산 규모다. 프랑스는 그 예산으로 공공보육 시설을 확대하고, 가족 수당을 지급하고, 육아휴직 제도를 강화했다. 결혼 없이 동거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도 동등하게 보호했다. 프랑스는 출산과 육아에 드는 비용을 철저히 분담했다. 그 덕에 프랑스는 출산율 하락에 제동을 건 성공 사례가 되었다.
프랑스가 순전히 이민자 덕에 출산율을 지켰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 이민자 여성이 원주민 여성보다 출산율이 높은 건 맞다. 2017년 기준으로 프랑스 이민자 여성의 출산율은 2.6명이고, 프랑스 원주민 여성의 출산율은 1.8명이다.
하지만 이민자 여성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아이를 낳은 이민자 여성은 전체 아이를 낳은 여성 인구의 19%를 차지할 뿐이다. 19%의 여성이 아무리 많이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나머지 프랑스 원주민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전체 출산율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민이 아니라 연대의 힘으로 추락하는 출산율을 붙잡은 것이다. 프랑스는 서로의 짐을 분담하는 것이 출산에 얼마나 도움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일본, 핀란드의 자살률을 낮추는 방법
한편, 사람은 3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자살을 결심한다.
하나,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변이 가하는 고통에 익숙해지거나 자해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은 자연히 그런 능력을 얻게 된다.
둘, 소속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주변에 자주 소통하며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다면, 사람은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소속감의 부재는 자살 충동을 유발한다.
셋,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 때 결심하게 된다. 자신이 무능해서 주변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은 자살을 유발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다.
이 세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이라는 생명의 근본 욕구를 포기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그러고도 자살 준비가 허술하거나 생존 욕구가 다시 살아나면 다시 살기로 마음 먹게 된다.
이렇듯, 자살은 선뜻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이 말은 곧 예방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은 자살 미수자가 정신과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해서 근로자가 한계에 몰리지 않도록 감시한다. 여러 정책들 덕에 일본의 자살율은 10만 명당 20명 수준에서 14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가장 모범적인 자살예방 성공사례로 꼽힌다. 핀란드는 우리 돈으로 6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자살 예방에 활용한다. 500만 명이 사는 핀란드의 자살 예방 예산은 인구가 9배나 많은 우리나라의 3배나 된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따돌림과 과로, 가족 해체에 대응하는 비용을 충분히 감당하면 자살률 상승을 막을 수 있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의식을 높여야
우리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출산율을 회복해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살률은 서서히 개선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견디려면, 이제라도 서로의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연대만이 각자도생이 초래한 비극의 상영을 금지시킬 수 있다. 늦었어도 해법은 연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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