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북유럽 모델을 따를 수 없을까
GDP 40%를 나라에 내는 북유럽 사람들 그 돈으로 국방·교육·복지·고용 공동구매 한국은 26%만 내고 사회서비스 개별 구매 보편증세 못한다면 약자 보호하는 모델로
북유럽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 자본주의 모델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에 변화한 세계 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복지규모를 조절했지만, 여전히 북유럽은 전국민이 창출한 부가가치의 약 4분의 1을 복지예산으로 활용합니다. 그러는 중에도 미국에 뒤처지지 않는 생산성과 경제성장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북유럽은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이상적인 균형을 잡은 사례입니다.
제헌헌법이 제정된 이래로 우리나라도 복지 자본주의를 기본가치로 삼았지만, 충실히 실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1980~90년대에도 충분한 복지제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GDP의 10분의 1을 복지예산으로 활용하게 된 시기도 비교적 최근입니다. 그마저도 일본과 영국의 절반 수준입니다. OECD 국가들중 우리나라보다 복지지출 비중이 낮은 나라는 터키, 칠레, 멕시코 뿐입니다.
몇몇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우리나라도 북유럽을 뒤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나친 소득격차를 완화하고 경제적 불안을 덜기 위해서, 북유럽 모델을 옮겨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북유럽화’하는 데에는 한 가지 큰 난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난관을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북유럽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GDP 40%를 내놓는 북유럽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의 북유럽 경험담을 들어보면, 북유럽이 생각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고 합니다. 굉장히 평화롭고 안정적이지만, 생활수준이 우리나라보다 크게 높지 않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간혹 들립니다. 이런 피상적인 인상은 북유럽과 우리나라의 생활방식이 다른데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복지 예산을 포함한 모든 정부 지출은 국민이 돈을 모아서 재화나 서비스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방비 지출은 국민이 공동으로 무기를 구매하고 군인도 고용하는 것이고, 교육비 지출은 국민이 공동으로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고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지 지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지출은 곧 전국민적 공동 구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는 전국민적 공동 구매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는 가장 흔한 방법입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올라간다는 말은, 국민이 자신의 소득에서 마음대로 지출하는 비중을 줄이고, 대신 다른 사람과 함께 지출하는 비중을 늘린다는 의미입니다.
북유럽 사람은 각자의 돈을 함께 쓰는 데에 익숙합니다. 북유럽 국가는 GDP의 40%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거두고, GDP 25%를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합니다. 이 말은 곧 북유럽 사람은 평균적으로 국민소득의 40%로 전국민적인 공동 구매 예산을 마련하고, 국민소득의 25%로 복지 서비스를 공동 구매한다는 뜻입니다. 북유럽 사람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과 1인당 GDP를 자랑하지만, 그렇게 창출한 소득을 각자가 온전히 쓰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데에 쓰고 있습니다.
북유럽 사람은 각자가 비싼 커피와 자동차를 구매하는 대신, 세상에서 혜택이 가장 큰 고용지원 서비스를 공동으로 구매하며 살아 온 것입니다.
북유럽이 각자의 돈을 함께 쓰는 곳이라면, 우리나라는 각자의 돈을 각자가 쓰는 곳입니다. 우리는 북유럽 사람만큼 높은 소득을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각자가 자기 소득을 마음대로 쓰는 데에 익숙합니다. 우리나라는 GDP의 26%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거두고 GDP 12%를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람은 더 큰 혜택을 보장하는 고용보험 서비스를 만들기보다는, 점심시간마다 스타벅스에 들리고 무리해서 자가용을 마련하는 데에 돈을 썼습니다.
우리는 북유럽 사람처럼 살아 본 적이 없습니다. 북유럽 사람은 1백 년 넘게 전국민적인 공동 생활을 영위해 왔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 생활은 가족이나 병영, 기업 등 작고 위계적인 집단에 적응하는 것일 뿐,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연대 의식에 기반해서 협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유럽의 공동 생활이 평등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이라면, 우리나라의 공동 생활은 권위주의적이고 관계주의적입니다. 따라서 북유럽식 생활방식은 우리에게 너무 낯선 것입니다.
각자도생 방식을 버릴 수 있을까
다른 불평등한 선진국 사람처럼 우리나라 사람은 과시적 소비 경향이 있습니다. 가난해도 명품 패딩,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고, 친구나 연인과 놀 때에는 1천원짜리 캔커피 대신 6천원짜리 스타벅스 카페 라떼를 마셔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시선에서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하는 북유럽 사람의 생활은 굉장히 궁핍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은 궁핍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번 돈을 혼자 쓰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북유럽 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명품 패딩과 슈퍼카 대신 국민 전체를 위한 사회보험과 학교를 구매합니다. 한 사람이 소유하는 기호품의 양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부의 크기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합니다. 북유럽 사람은 1백 년 넘게 부를 공동으로 축적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각자도생에 익숙한 우리와 다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런 생활방식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당장 북유럽화하자고 하면, 전국민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북유럽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데도 고스란히 따라하려면, 모든 사람이 비싼 스타벅스 커피 대신 값싼 캔커피에 만족하고, 자가용 대신 카풀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기존의 과시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생활방식을 다 버리고 공동체주의적인 생활방식을 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북유럽 모델도 따라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북유럽 사람처럼 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작은 복지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북유럽 모델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유럽 사람은 1920년대부터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독특한 복지 자본주의 체제를 다듬어 왔습니다. 그 기반에는 세계에서 가장 동질한 국민과 두터운 사회적 신뢰가 있습니다. 북유럽 사람이 자신들의 환경에 맞춰서 1백년 동안 가꾼 제도를 다른 나라가 짧은 시간에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북유럽 모델은 훌륭하지만, 너무 특수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조건에 어울리는 복지 자본주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당도 북유럽식 생활방식을 국민에게 강요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는 복지 확대를 위한 부자 증세에는 찬성하지만 보편 증세에는 찬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 큰 복지제도를 원하는 사람이 적응해야 할 조건입니다. 우리가 처한 조건을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당장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것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로장려금 인상처럼 당장 가능한 개선책을 차곡 차곡 쌓으며 ‘대한민국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북유럽 모델은 우리의 미래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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