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 극복의 첫단계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제 선거제 개정만으로 승자독식 못막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시켜야

19대 문재인 대통령과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9대 문재인 대통령과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유럽 국가의 의회는 다채롭습니다. 독일 연방의회에서는 7개 정당이 736개 의석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스웨덴 의회에서는 8개 정당이 349개 의석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가의회 제2원(하원)에서는, 무려 17개 정당이 150개 의석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이 중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집권 중인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체 의석의 28%, 206석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온건당은 전체 의석의 19%, 68석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자유민주국민당은 전체 의석의 23%, 고작 35석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당이 비교적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유럽 정치는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의회에서 활발하되 질서 있는 경쟁이 이뤄지는 덕에 유럽 시민들은 다양한 정당 중에서 더 유능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까운 정당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양당 정치에 지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 정치의 이런 점을 가장 부러워할 것입니다.

독일 연방의회. 사진=나무위키
독일 연방의회. 사진=나무위키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국회는 굉장히 단조롭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이 전체 의석의 95%, 300석 중에서 284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내에 총 5개 정당이 있지만, 사실상 국회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정당은 이 거대 양당 뿐입니다.

우리나라 국회는 경쟁이 부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거대 양당은 매번 무능, 부패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권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면 여당, 지면 제1야당 지위를 돌아가며 맡았습니다.

국회에서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싫은 정당이 집권하는 일을 막기 위해 덜 싫은 정당을 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정치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과 정치를 향한 관심이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민주주의자가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문제다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 우선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허락하는 승자독식 구조부터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거대 양당으로 나뉜 이유는 정치의 중심에 지나치게 강력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좋은 공약을 제안하는 동시에 그 공약을 실현할 방법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어도, 행정권을 한 손에 쥐고 입법권에도 개입할 수 있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면 정치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면, 자연히 사람들은 대통령을 응원하는 진영과 견제하는 진영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계산해 볼 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기를 바란다면, 자신과 가장 생각이 비슷한 대통령 후보 밑으로 결집해서 그 후보가 이길 가능성을 키워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당은 대통령 또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전설 같은 3당합당 사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은 노태우 대통령을 지원하고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연합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민주자유당’이라는 새 이름 아래 뭉쳤습니다. 그 유명한 3당합당 사건입니다. 세 정당이 통합되자, 단독으로 299석 중 218석을 차지하는 거대 여당이 되었습니다.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을 발표하는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사진=나무위키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을 발표하는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사진=나무위키

3당합당 직전에는 5개 정당이 299개 의석을 비교적 고르게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125석(41%)으로 과반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1야당인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은 70석(23%), 통일민주당은 59석(19%), 신민주공화당은 35석(11%), 예춘호 대표의 한겨례민주당은 1석(0.3%)을 각각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3당합당 이후에도 정당은 대통령 또는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5대 총선 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정당의 의원들을 적극 영입했습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한국당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은 긴 시간 동안 물밑 협상을 진행한 끝에 일명 DJP연합을 성사시켰습니다. DJP연합은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서 선거 단일화를 이뤄냈습니다.

친박 친위 정당의 탄생

새누리당 역시 그 중심에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있었습니다. 19대 총선 전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여러 보수 정당을 통합해서 새누리당을 창당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사실상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대통령으로 옹립해서 보수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정당이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전부터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보수 정치인 중에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비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박 비대위원장을 앞세운 새누리당은 보수표를 결집해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진보 표심도 민주통합당으로 결집해서 뚜렷한 양강 구조를 형성했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를 앞세운 새누리당의 약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치러진 새누리당 18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84%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선거법 개정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

물론 양강 구도가 형성된 데에는 소선거구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정치학자들은 소선거구제가 거대 양당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영국, 인도 등 소선거구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는 하나 같이 거대 양당이 정치를 주도합니다. 이런 소선거구제의 악영향을 억제하기 위해 21대 총선 때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연동형 비례제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애초에 비례투표로 뽑는 의석 수 자체가 적은 탓도 있지만, 거대 양당이 연동형 비례제에 대응하기 위해 비례 정당을 창당한 탓이 컸습니다. 연동형 비례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례 정당을 위성 정당이라고 부르며 비난했지만, 위성 정당을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성 정당인지 규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비례 정당이 아닙니다. 비례 정당을 만들어서라도 힘을 결집해야 하는 승자독식 구조가 근본 원인입니다.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서든 견제하기 위해서든, 거대 양당은 단 한 석도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유권자들도 기존 군소정당이 아니라 거대 양당에서 분리되어 나온 비례 정당에 표를 몰아줬습니다. 원내에 남은 군소정당인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은 다 합쳐서 12석(4%)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공화당과 민중당, 민생당은 남은 의석을 모조리 잃었습니다. 비례 정당은 양분된 민심이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거대 양당을 지지해주려 한다면 선거제도와 무관하게 거대 양당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중대선거구제나 완전 비례대표제였더라도, 결국은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과 대통령을 유의미하게 견제할 수 있는 제1야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만약 선거제도가 이런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 제도는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적인 선거제도라면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을 중심으로 양분된 민심을 반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공멸하는 의자 뺏기 게임을 멈춰야 한다

대통령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양극화의 진원지나 다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자리만 차지하면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 탓에 사람들은 서로 양보하기 보다 격렬하게 싸워서 단독으로 승리하는 쪽을 고르기 쉽습니다. 정치 양극화는 결국 과열된 권력 싸움이 초래한 것이라는 제 생각입니다.

물론 대통령제를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제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결실이고, 나름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한 사람에게 권한을 몰아주기 보다 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열된 의자 뺏기를 멈추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정당과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권력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바로 공멸하는 권력 싸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조건이 갖춰진 것과 갖춰지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은 대통령 자리의 기운을 가라앉히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글쓴이

이완 청년칼럼니스트

이완은 여러 정치 사상을 소개해서, 인물 중심 정치를 생각 중심 정치로 바꾸고 싶어한다. 의심의 힘을 믿는 회의주의자, 경제를 최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게 재조직하고 싶은 사회주의자다. <더 칼럼니스트> 창간 1주년 기념 칼럼 공모전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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