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함께 존경하는 그가 돌아오다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안중근은 분단된 조국에 뭐라고 할까

안중근 의사 영정. 사진=연합뉴스
안중근 의사 영정. 사진=연합뉴스

소설 ‘하얼빈’에서 다시 만나는 ‘청년’ 안중근

8월15일 광복절과 9월2일 안중근 탄신일을 맞이하면서 김훈의 소설 ‘하얼빈’이 주목받고 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단어를 꼽으라면 ‘청년’과 ‘평화’가 아닐까 한다. 먼저, 이 소설에서 안중근은 ‘청년’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하얼빈’은 ‘청년’ 안중근의 모습을 너무나 담백하면서도 그래서 더 기백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안중근처럼 다면적인 인간상(人間像)도 드물다. 안중근은 황해도의 사냥꾼이기도 했지만, 국채보상운동을 펼친 계몽운동가이자 영어를 가르치는 신식학교를 세운 교장선생님이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나 들었던 의병장군이기도 했지만, 국제정세를 꿰뚫고 있는 평화사상가이기도 했다. 김훈 작가에 의해 안중근은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순수한 청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자네는 왜 나를 따라나섰는가? 왜 이토를 쏘려고 하는가.”
“그런 것은 말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

이토를 쏘기로 한 청년 안중근과 우덕순의 대화는 짧았다. 그들은 이틀 뒤에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하얼빈행 열차를 탔다. 권총 두 자루와 단돈 백 루블을 나누어 가지고.

소설 '하얼빈' 표지
소설 ‘하얼빈’ 표지

두 가지 동양평화론의 하얼빈 대충돌

두 번째로 소설 ‘하얼빈’을 관통하는 단어는 ‘평화’이다. 소설책의 표지를 열면 한반도와 만주의 지도가 있다. 대련을 출발해 장춘을 거쳐 하얼빈으로 이동하는 이토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분하를 거쳐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이동 경로다. 이 그림은 소설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약육강식과 식민지 살육을 문명개화로 거짓 포장한 이토의 가짜 평화론, 그리고 조선과 아시아 각국의 자주독립을 중심에 놓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하얼빈에서 만나 대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격돌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안중근의 재판을 취재한 영국의 신문 ‘더 그래픽’은 이렇게 썼다.

“그날 서른 살의 안중근은, 일본 제국에서 가장 영항력이 큰 인물을 파렴치한 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안중근은 재판의 진정한 승리자로서 월계관을 쓰고 법정을 걸어나갔다.” (“A young 30-year old, Ahn Jung-geun, was able to make the most influential figure in the Japanese dictatorship into a shameless figure in one day. That day, Ahn was the true victor of the trial and he walked out of the court room with a crown.” (The Graphic, 1910년2월14일))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 ‘하얼빈’의 주제를 압축하여 말한다.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안중근, 남북이 함께 존경하는 애국열사

안중근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실상 유일한 근현대사의 인물이다. 안중근은 지리적으로 이북사람이다. 황해도 해주와 신천에서 성장하였고 남포에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황해도 고향에는 그의 발자취가 잘 보전되어 있고, 남포시에는 안중근이 세운 남흥중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그 고장 사람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외할아버지는 창덕학교에서 안중근과 같은 인물이 한명만 나와도 영광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애국자가 되라고 하였다”고 회고했다. 1928년 항일투쟁 시기에 김일성은 안중근의 의거를 연극으로 창작해 중국 길림시 인근과 백두산 북부 및 두만강 지역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캡처.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캡처.

이를 바탕으로 1979년에는 김정일의 지도 하에 10만 명 이상이 동원된 대작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제작됐고, 1998년 남한에서 이 영화는 SBS를 통하여 공중파로 방영됐다. 북한의 작가 림종상은 이 내용을 같은 이름의 대하소설로 다시 만들었으며, 남한의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2006년 이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는 본인의 유해를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의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을 지키려는 노력은 북한에서 먼저 진행됐다. 남한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유해발굴 노력을 진행한 반면, 북한은 1970년대에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을 단장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1986년에도 대규모 발굴단을 뤼순에 보내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2022년 여름, 안중근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

2022년 여름, 남과 북은 더욱 멀어졌고 한반도와 아시아에는 전쟁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남과 북은 서로를 불신하고 비난하는데 머물지 않고 섬짓한 말전쟁도 불사하고 있으며, 무모한 무기개발 경쟁과 군사 훈련에 몰입하고 있다. 나아가 편을 가르고 힘을 겨루는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력마저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남과 북은 더욱 갈라져 대립하고, 한반도에 평화는 멀어지고 전쟁은 더 가까워졌다. 부끄러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 온전한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안중근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다. 2022년 여름 안중근이 다시 부활해서 나타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

안중근은 분단된 조국을 보고 뭐라고 할까

안중근은 “미안하지만 아직 내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내가 목숨을 던진 이유가 무엇이더냐. 온전한 자주독립은 어디 있으며, 동양 아니 한반도의 평화는 어디 있느냐”라고 우리를 꾸짖지는 않을까.

소설 ‘하얼빈’을 통하여 안중근의 삶과 죽음, 그의 정신을 다시 새겨 보게 된다.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라는 안중근의 정신으로 돌아가 우리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DMZ에 동양평화를 위한 공동참배구역을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안중근의 손자 안웅호 선생은 말한다. “남과 북은 모두 할아버지 안중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는 분단된 코리아가 아니라 온전한 코리아를 위하여 목숨을 던졌습니다. 사람 몸과 같이 코리아도 둘로 잘라져 있으면 영원히 피를 흘리게 됩니다.”(2010년, 춘천MBC 다큐멘터리 ‘안중근, 분단을 넘다‘)

안중근의 증손자 토니안은 안중근의 유해가 발굴된다면 그것이 묻힐 곳은 남과 북을 가르는 38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중근의 꿈은 온전한 하나의 코리아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유해가 묻히면 남과 북이 안중근 의사에게 절을 하게 되고, 그것은 곧 남과 북이 모두 서로를 마주 보고 상대에게 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2009년, 춘천MBC 다큐멘터리 ‘안중근, 북위 38도‘)

DMZ에 안중근의 묘소를 조성해 공동참배구역으로 만들기를 소망해 본다. 이 곳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 모두가 안중근의 정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아가 이 곳이 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성역으로 인식된다면, 남과 북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안중근을 존경하고 그의 동양평화 정신을 받드는 중국과 일본의 뜻있는 자들도 꽃을 들고 찾아와 조용히 고개를 숙일 것이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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