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음악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드로브자크의 Going home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초상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초상

거대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산지 수십 년이건만,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괜시리 향수에 젖곤 한다. 딱히 찾아갈 고향도 없는 사람의 가짜 향수병(鄕愁病)인데, 이런 심사를 달래줄 음악으론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제격일 것 같다. 마침 지난 글에서 국민주의음악의 대표적 작곡가 스메타나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또 한 명의 체코 작곡가가 바로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이기도 하다. 스메타나가 체코 음악의 아버지였다면, 그보다 17년 후에 태어난 드보르자크는 체코음악의 대중적 보급자라 하겠다.

중학교 때인가, 음악시간에 국민주의 음악과 작곡가 드보르자크에 대해 배우고 난 후, 시험문제에 음악가의 이름을 쓰는 주관식문제가 나왔다. 채점을 마친 선생님께서 매우 어이없는 표정으로 “니들은 왜 남의 이름을 쓰다 말았냐? 답안에 ‘드보르’라고 쓴 것은 오답처리다”하셨다. ‘드보르 作’으로 알고 ‘드보르’까지만 쓴 학생이 꽤 있었던 것 같다.(당시 한글 표기는 ‘드보르작’이었다) 그때 배운 노래가 바로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으로 시작하는 <꿈속의 고향 >이다.

드보르자크는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 종교음악, 합창곡, 관현악곡, 실내악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작품을 남긴 작곡가다. 보헤미아지역 슬라브 민족의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작곡가답게 그의 음악엔 향토색 짙은 시골의 정취가 가득하다. 외모에서도 그는 부지런한 시골농부처럼 큰 체구에 다부져 보이는 인상이다. 후기 낭만주의에 속하지만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이 새로운 시도와 경향을 추구하며 독창적인 작풍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때, 드보르자크는 그저 자연스럽게 보헤미아의 민족음악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그러다보니 혁신적이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은 대신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작풍의 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형식적 기반은 고전양식에 기반을 두었지만 삶의 터전인 보헤미아의 흙 냄새와 슬라브 민족의 음악적 감수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편안하고 건강한 아름다운 음악들이다. 때론 단순하고 원색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의 음악을 촌스럽게 여기는 평론가도 있기는 하다.

1841년 9월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의 외딴 시골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다. 여관 겸 푸줏간을 운영하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싹튼 음악적 재능과 매사에 적극적인 태도는 이 보잘 것 없는 시골 집안의 아들이 미래의 음악가로 성장하는 큰 원천이 되었다. 고향에서 바이올린과 성악의 기초 교육을 받던 중, 다행히 친척의 경제적 도움으로 열여섯 나이에 프라하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프라하 음악원을 졸업하고 청년시절의 얼마 동안은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해 어려운 생활이 계속 되었지만, 그는 주로 베토벤을 연구하면서 실내악과 교향곡의 습작에 힘쓰는 등 작곡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선배 음악가 스메타나가 민족음악 운동의 불씨를 살려 국민극장의 오페라 관현악단이 발족됐다. 드보르자크는 이 악단에서 비올라 주자로 활동했는데 스메타나의 민족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브람스의 인정과 격려...체코음악의 일인자로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애국적 소재를 다룬 칸타타를 만드는 등 자신감을 갖고 본격적인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바그너, 리스트의 음악을 자주 접하면서 그 때까지의 작품보다 더 진지한 작품을 쓰고자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빛을 던져준 것은 대작곡가 브람스에 의해서였다. 1875년 서른넷의 다소 늦은 나이에 오스트리아 정부 장학금에 응모하게 되었는데 심사위원이었던 브람스와 한슬리크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아 1등으로 합격하게 되어 명실공히 유럽음악계에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독자적인 슬라브 양식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창작활동을 격려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생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누었다.

당시 브람스가 추천하여 베를린의 유명 출판사로부터 <슬라브 무곡>의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1878년에 출판된 <슬라브 무곡> 제1 집(op.46)엔 모두 여덟 곡의 무곡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곡에 쓰인 다양한 민속 춤곡의 요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이 곡들이 민속음악의 선율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모두 드보르자크의 창작에 의한 것이다. 이 슬라브 무곡들은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고, 훗날 두 번째 슬라브무곡집(op.72)의 작곡까지 이어졌다.

<슬라브 무곡>의 성공으로 드보르자크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미국과 영국에까지 전해졌다. 그 결과 수년간 영국 연주 여행이 이어졌고, 1891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자식 셋을 잇따라 잃는 큰 슬픔을 겪기도 했다. 그 비통함을 종교음악 <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로 승화시켰는데, 이 작품은 초연 이래 명작 칸타타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고, 이어서 슬라브적 색채가 짙은 교향곡 8번과 피아노 3중주곡 ‘둠키’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되었다. 그는 이러한 음악적 성과들을 인정받으며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신세계로부터

1892년에 미국 뉴욕의 국립음악원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원장직에 취임하기로 하고 그는 신대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접한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들의 음악에 슬라브적 색채까지 가미한 신대륙에서의 첫 작품, 교향곡 제9번이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드보르자크는 뉴욕에서 받은 환대와 호의에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이 교향곡에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를 붙였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이면서 선명한 선율 흐름과 함께 박진감이 넘치는 이 작품은 그의 교향곡중 최후의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이 되었다. 특히 2악장 라르고에서 잉글리시호른이 연주하는 아련한 느낌의 주선율은 작곡가 자신이 고향 보헤미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것으로, 그의 미국인 제자 피셔(William Arms Fisher)가 이 선율에 가사를 붙여 ‘Going home(꿈속의 고향)’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만들어 전세계 사람들 마음에 향수(鄕愁)를 지피는 곡이 되었다.

이 외에도 미국에 머물면서 그는 현악4중주곡 ‘아메리카’, 첼로협주곡 b단조 등 명작들을 완성했다. 뉴욕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음악원 원장 재임 중인 1904년 5월 예순셋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병사하였다.

유튜브 : Going home

우리네 추석의 하이라이트는 보름달 구경이 아닌가! 밤하늘 높이 뜬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보는 풍습이 있는데, 관련하여 드보르자크의 작품 중에도 이런 정서를 담은 매우 아름다운 곡이 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유사한 내용의 오페라 < 루살카(Rusalka)>에 나오는 아리아다. 루살카는 슬로바키아 지방 전설에 나오는 인어의 모습을 한 물의 정령이다. 어느날 호수 근처에서 어떤 잘생긴 인간 왕자를 본 후 사랑에 빠지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가슴만 앓고 있다가 마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마녀는 인간이 되어 왕자와 결혼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하지만 그 대신 평생 벙어리로 살아야 한다. 뿐만아니라, 만일 왕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면 루살카 뿐만 아니라 왕자까지도 영원히 저주를 받는다는 것, 또한 루살카가 왕자에게 키스를 하면 왕자가 죽는다는 조건이다. 그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마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루살카와 왕자는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오페라에서 루살카의 아리아 ‘오, 은빛 달님이여’는 제 1막에서 밤하늘을 떠도는 달님에게 왕자를 만나면 자신의 사랑을 알려달라며 간절하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낯선 발음의 체코어로 불러짐에도 여인의 절절한 심정이 드라마틱한 곡조와 신비로운 관현악반주에 실려 공감을 자아낸다. 이 곡을 들으며 우리도 달님에게 한번 간절하게 빌어보자. 동화 속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대신 가족과 친지의 평안, 아니 지구촌 모든 이의 평안을!

동영상: To the moon(드보르자크의 오페라 중 1막의 아리아)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