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연대란 무엇인가
‘사회연대’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하며 로마에서 교회, 베른슈타인까지 ‘연대의 역사’ “연대, 사회구성원의 ‘인간적 삶’ 책임지는 일”
- 목차. 1. 연대란 무엇인가 2. 왜 연대해야 하는가 3.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4.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 5.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사람들이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경제는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확실한데, 누구도 고난의 무게를 덜어주지 않습니다. 실업, 빈곤, 산업재해, 심리적 고통은 고스란히 각자의 고난, 각자가 짊어져야 할 짐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은 옆 사람에게 어깨를 기댈 수 없습니다.
외로움은 절망이 되고, 절망은 비극이 되고 있습니다. 고시원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청년이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빈곤한 어머니가 조현병에 걸린 딸을 죽이고 자신도 삶을 포기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누군가는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냉소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고난을 자기 힘으로 극복해서 개천에 난 용이 되어야 한다며 다그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깨를 빌려주려는 정부를 가로막으며, ‘자유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지원마저 끊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냉소 가득한 각자도생의 길을 고를 것인지, 한 겨울에도 절망하지 않게 돕는, 작은 핫팩 같은 연대의 길을 고를 것인지. 이 글에서, 저는 우리나라가 연대의 길을 골라야 하는 이유를 나열해 보려 합니다. 연대란 무엇인지, 왜 연대해야 하는지,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나라는 태풍을 기다리는 가로수입니다. 처참히 뽑혀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서로 어깨를 기댄다면, 태풍 힌남노가 다시 한 번 들이닥쳐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연대는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태풍도 극복하게 해줄 힘입니다. 부디 이 글이 우리가 서로 어깨를 기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제6장 2절
1. 연대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저는 우리나라가 더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 주장이 의미 있게 전달되려면, 먼저 연대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논의든, 그 시작은 단어를 정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어떤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모른다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연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고도로 훈련된 철학자들도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완전히 합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정치사상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어떤 정치 개념을 하나로 정의하지 못한다는 고백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조지 H. 내쉬는 보수주의를 일괄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를 중단했고, 도리어 “나는 그 내용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엄청나게 각양각색이었던,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복잡한 현상을 만족스럽고 포괄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주의는 본질적으로 정확한 정의를 거부한다는 말은 진실인지 모른다” 라고 적었다.” -피터 콜로지, ‘자본주의에 맞서는 보수주의자들’
“자유주의를 수은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은은 고체처럼 보여 집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집으려고 하면 갈라져버려 도대체 잡을 수가 없다. 즉 그 실체를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하나의 포착할 수 있는 단단한 자유주의로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속의 자유주의는 “자유주의들” 즉 복수의 자유주의로 존재하고 있었다.” - 김명환, ‘영국 자유주의 연구’
“사회민주주의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의미를 규정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와 사회민주주의를 결부시키고 있다. (...) 이론적 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하나로 통일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토비아스 곰베르트, ‘사회민주주의의 기초’
연대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학자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연대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전세계 학자들이 합의한 하나의 의미는 아직 없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시대와 공간,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어를 둘러싼 맥락입니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서 저는 연대의 절대적인 의미, 어떤 시간대, 어떤 공간에서도 통하는 단 하나의 정답을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연대 개념이 활용된 사례와 함께 연대의 의미를 나름대로 소개해보려 합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연대의 의미는 여러 의미 중에서 제가 고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연대’는 법률 용어였습니다. 고대 로마와 근대 프랑스에서 연대는 법적으로 함께 빚을 갚을 책임을 지는 것, 즉 ‘연대 보증’을 의미했습니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히는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는 연대를 “여러 채무자가 그들이 빌렸거나 빚진 액수를 되돌려줄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어떤 의무의 성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연대 보증이라는 채권법적 의미에서의 연대 개념은 1696년의 「프랑스 학술원 사전」에도 나타난다.” - 라이너 촐,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계몽주의 시대에 연대 개념은 법률 용어를 넘어 일상, 정치 용어로 확장되었습니다. 김 씨가 박 씨를 위해 보증을 서준다는 말은 박 씨가 돈을 갚지 못할 때 김 씨가 대신 갚아준다고 약속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연대 보증은 곧 법적인 공동 책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연대의 새로운 의미가 도출되었습니다.
연대는 채무관계를 넘어서 박 씨의 여러 문제가 곧 김 씨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김 씨가 박 씨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책임을 지는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누군가가 서로 연대한다는 말은 여러 영역에서 서로 상호의존하며 책임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연대를 일상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나 혼자 주의하며 운전한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운전자도 안전에 주의할 때, 내 안전 운행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무리하게 과속하는 순간, 무고한 운전자들이 함께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은 서로의 안전을 함께 책임지고 있습니다. 즉,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은 서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운전자들이 타인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무리하게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일으킨다면, 운전자들의 연대는 무너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책임을 공유한다는 의미의 연대를 사회 전체로 확장한 것이 ‘사회연대’입니다. 공동채무자나 운전자를 넘어서 사회 구성원 전체가 여러 영역에서 책임을 공유할 때, 사회 구성원은 서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국민의료보험을 운영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분담해서 서로의 건강을 책임진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보건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특정 책임을 공유하는 상태를 사회연대라고 부릅니다.

19세기 사회연대 사상의 확산
19세기 유럽에서 여러 정치 세력이 사회연대를 핵심 가치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사회연대를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유럽 전체가 산업화와 함께 새로운 사회 문제를 마주한 시기였습니다. 산업화는 생산 능력을 극적으로 발전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 농촌 공동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영주 밑에서 함께 모여 살던 사람들은 연고 없는 도시로 끌려와서 공중에 홀로 떠다니는 원자처럼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개인, 자본가에게 종속된 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 사회는 대혼돈에 빠졌습니다. 농사할 땅을 잃은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도시로 이주했지만, 모두가 일자리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도 낮은 임금을 받으며 과로와 건강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간혹 불황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모든 것을 잃고 부랑자로 전락해야 했습니다.
과거에는 왕과 귀족이 한 가정의 아버지처럼 나머지 사람들을 보호했습니다. 위 사람은 아래 사람을 지도하고 보호해야 했고, 아래 사람은 위 사람을 공경하고 위 사람에게 충성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불평등했지만, 각자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유대 관계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질서를 ‘가부장주의 질서’라고 부릅니다.
산업화는 자본가 계급을 성장시키고 인구를 이동시켜서 가부장주의 질서를 위협했습니다. 가부장주의 질서에서는 모두가 계급사회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이익에 종속되어 있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각자의 계급 이익에 더 신경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자, 정치도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귀족은 가부장주의 질서를 지키려 했고, 자본가는 개인주의적인 적자생존 질서를 세우려고 했으며, 빈민과 노동자는 참정권을 요구하거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급진적인 사회운동에 가담했습니다. 1830~40년대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과격한 혁명이 일어나서 유혈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정치인과 사상가들이 이런 혼란을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산업화 탓에 원자화된 사람들을 다시 결속시키고 사회 질서를 회복할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한 개념이 바로 사회연대였습니다.
‘가부장주의 질서’를 위한 사회연대
19세기 유럽에서 사회연대 사상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가부장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엄격한 계급질서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에 기초한 사회연대를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은 황제가 각자의 이해관계 위에 군림해서 자본가의 이익을 국가에 종속시키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야 노동자들을 다시 제국의 충성스런 신민으로 통합해서 혁명을 예방하고 독일 제국을 산업화가 초래한 대혼란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사회입법’은 이런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1881년 2월 15일 하원이 개원될 때 황제가 보낸 메시지는 사회보험을 향한 비스마르크의 돌진을 위한 신호탄이 되었다. 그 메시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적 질병의 치유는 단지 사회주의적 일탈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고 노동자의 복지를 적극적으로 증진시키는 방법이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술은 물론 비스마르크의 입장을 빈틈없이 반영하고 있다.” - 가스통 림링거, ‘사회복지의 사상과 역사’
비스마르크가 사회입법으로 구현한 사회연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황제와 제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입법은 전통 가부장주의 질서를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일부 도입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사회입법은 산업화가 초래한 대혼돈을 진정시켰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사회입법은 철저히 국가의 이익을 위한 억압적인 질서를 전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노동자가 실업이나 노령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에만 개입하는 사회보험 위주로 구현되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명령한 사회연대
원래 가톨릭 교회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황 레오 13세가 1891년에 발표한 회칙을 시작으로 사회문제, 특히 노동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연대를 교회의 공식 교리로 인정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연대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교회는 개인주의를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교회는 개인이 오직 사회 속에서만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상호 협력에 의존하는 유기체의 일부라고 규정했습니다. 사회 구성원이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자연히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동선을 증진하는 데에 참여할 책임이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교회가 말하는 공동선이란, 집단과 개인이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통틀어서 말합니다. 이 조건에는 사회 전체의 번영과 정의로운 분배, 생활수준 보장 등이 포함됩니다.
“공동선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더 충만하게 더욱 쉽게 자기완성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체를 포괄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쁨과 희망’
교회는 국가과 기업, 가족과 개인 모두가 이 공동선을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더 큰 집단이 작은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국가가 기업과 가족이 해야 할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국가는 어디까지나 작은 집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기업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족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런 역할 분담은 하늘이 정해 준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이 자유롭게 결성한 집단은 각각 최선을 다해서 공동선을 증진해야 하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선포한 사회연대는 곧 모든 개인과 집단이 공동선을 증진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다른 책임을 짊어지되, 다른 사람의 책임에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규모가 작은 하위조직에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규모가 큰 상위조직이 스스로 침해하는 것은 불의요, 중대한 해악이며, 바른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다.” - 교황 비오 11세,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회칙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회칙’
가톨릭 교회의 사회연대 사상은 현대 유럽의 ‘기독교민주주의’로 계승되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독일의 기독교민주주의 정당은 국가가 모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동시에, 국가의 역할을 작은 집단을 지원하고 작은 집단이 할 수 없는 일을 대리하는 것으로 제한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1조 제1항
“시민이 혼자서, 가정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자발적인 협력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과제이다. 국가와 자치단체는 각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이 수행할 수 없는 과제를 맡아야 한다.”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강령, ‘독일을 위한 기본 원칙’
기독교민주주의 정당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독점을 예방하고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민주주의 정당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도입했지만, 이는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동등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장에 참여해서 어떤 결과를 창출할지는 개인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민주주의가 말하는 사회연대는 각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도록 지원할 책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세기 가톨릭 교회와 현대 기독교민주주의 정당이 말하는 사회연대 역시 한계가 분명합니다. 두 집단은 자기 책임을 너무 폭넓게 규정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속재산과 여기서 발생한 불로소득 탓에 순수히 자신의 힘으로 경쟁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시장은 결코 노력을 있는 그대로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이는 자유시장을 옹호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거나 우연히 갖게 된 재능은 분명 다른 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 아주 흔한 지 아주 희귀한 지에 대해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좋은 성품이나 멋진 목소리, 아름다운 용모나 훌륭한 손재주, 뛰어난 위트, 매력적인 성격 등은 대체로 그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다. 그가 가진 기회나 경험이 그가 자초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 모든 경우에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서비스의 가치는,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의 정도는 도덕적 능력이나 자격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저)’
하지만 두 집단은 상속과 불로소득이 초래하는 불공정을 방치한 채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두 집단은 절대 빈곤을 퇴치하고 교육서비스와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상속과 불로소득이 초래한 불공정을 교정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결국 두 집단은 사회연대를 통해 계급 갈등을 진정시키고 사회를 다시 결속하는 일에 실패할 것입니다.

베른슈타인의 ‘보다 연대하는 사회’
19세기에 사회연대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애초에 연대 개념을 유럽 전체에 퍼뜨린 것이 생시몽주의자 ‘피에르 르루’였습니다.
“나는 연대 개념을 철학과 종교에 처음으로 도입하기 위해 법학자에게서 이 개념을 빌려 왔다. 나는 기독교의 자비를 인간적인 연대로 대체하려 했다.(피에르 르루)” 이 단어의 일반적 사용에 관해서라면 르루의 주장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이 개념을 새로운 의미에 상세하게 관련시키고, 그것을 토론하고 철학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 라이너 촐,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하나의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여러 사회주의들이 공존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방임을 거부하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서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19세기에 활동한 여러 사회주의자 중에서, 현대 유럽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었습니다.
1890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러 노동자 운동조직을 통합해서 ‘독일 사회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미움받은 비스마르크가 실각하고 반사회주의법이 폐지되자, 사회민주당은 독일제국 의회에서 주요 정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은 독일을 개혁하는 데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당 내부가 노선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당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베른슈타인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너무 무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서 새로운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제안했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따르던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이란 대략 이렇습니다.
생산력이 발전하면 새로운 계급 갈등이 나타납니다. 역사는 계급 갈등을 거치며 진보합니다.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는 모든 계급이 폐지된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을 겪으며 필연적으로 궁핍한 무산자를 대량 양산할 것입니다. 사회는 점점 극소수의 자본가 계급과 절대 다수의 무산자 계급으로 분열될 것입니다. 무산자들은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혁명을 갈구하게 될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임무는 그 무산자들을 조직하고 훈련시켜서 다가올 혁명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며, 자본주의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노선에 따라 독일 사회민주당은 적극적인 개혁 활동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사회입법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산발적인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의회에 진출했지만, 무산자가 인구의 절대 다수가 되어 계급 갈등이 보다 격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사회민주당은 혁명적인 정당이지만, 혁명을 만들어 내는 정당은 아니다. (...) 혁명은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그것이 언제, 어떤 조건 아래서, 어떤 형태로 니타날 것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다.” - 카를 카우츠키, ‘정치가 우선한다(셰리 버먼 저)’
베른슈타인은 수동적인 대응만 반복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이 틀렸다고 선언했습니다. 사회는 극소수의 자본가와 최대 다수의 무산자로 양극화되고 있지도 않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산 소유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기보다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조화를 강조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더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정치가 우선한다(셰리 버먼 저)’
실제로 비스마르크의 사회입법 이후로 계급 갈등은 격해지기 보다 진정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경제 성장의 효과가 폭넓게 분배되자, 주식을 소유하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중산층이 늘어났습니다. 자본주의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안정되고 있었습니다.
베른슈타인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필연적인 혁명을 기다리기 보다, 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해서 보다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를 보다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으로 정의하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사회연대를 강조했습니다.
“내가 다섯 사람에게 제시했던, 사회주의를 무엇으로 이해하느냐는 질문에서 나는 한 나이 든 노동자에게서 고전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의 종이에는 단 한 단어가 씌어 있었는데, 그것은 연대성(Solidarität)이었다. 내가 볼 때, 그것은 한 단어로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옳은 대답이었다.”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는 곧 사회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베른슈타인의 사회연대는 앞서 이야기한 가부장적 보수주의자와 가톨릭 교회의 사회연대와 크게 다릅니다.
베른슈타인의 사회연대에서 국가는 지나친 경쟁과 재산권 남용을 규제하고,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중요한 산업을 직접 경영해야 합니다. 이때 경쟁과 재산권을 완전히 파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지나치게 경제를 통제한다면, 노동자는 철저히 국가에 종속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른슈타인은 튼튼한 복지국가와 함께 국영기업, 민영기업, 여러 협동조합들이 공존하는 혼합경제를 제안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의 사회연대는 다른 사회연대 사상보다 더 깊은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독일 사회민주당은 히틀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그 날까지 노선 투쟁에 발목 잡혔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는 사회민주당의 강령을 바꾸고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할 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생활의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의 원칙에 적합하여야 한다.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 독일제국 헌법(바이마르 헌법), 제151조 경제생활의 기본원칙 제1항
베른슈타인의 반란은 독일을 넘어서 유럽 사회주의 진영 전체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베른슈타인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지였고, 스스로도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였기 때문입니다.
“한 논평자가 지적한 대로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주의적 예언의 정확성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마치 교황이 예수의 재림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과 같았다.”-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베른슈타인의 사회연대는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유럽 복지국가 중에서 베른슈타인의 영향권 밖에 있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자인 저 역시 베른슈타인에게서 사회연대 사상을 배웠습니다. 사회 구성원은 더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일을 책임져야 합니다.

의미있는 삶을 향한 연대
다만, 저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표현보다 ‘행복한 삶’ 또는 ‘의미 있는 삶’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인간다운 삶이라는 표현은 너무 광범위합니다. 수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의미 있는 삶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측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연대한다면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주장하는 사회연대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땅한 책임을 의무적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땅한 책임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이 법이 정한 질서에 따라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능력껏 세금을 납부해서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연대는 베른슈타인이 이야기한 복지국가와 혼합경제라는 모습으로 구현될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이후에 ‘4.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고,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제공해야 하며, 인간적이고 행복한 노동이 될 수 있도록 안전조치들을 취하고, 충분한 여가를 주어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그런 조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다. 물론 직업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인 주거와 생계, 의료, 교육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 이오갑, ‘칼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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