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사람들은 왜 신용카드를 안쓸까?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개인당 1.3장 카드 보유...한국의 1/3 명품구매 위한 할부 안해...발급도 까다로와 ‘가진 것 안에서 검소하게 소비하는’ 문화

엘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 카스테야나(마드리드) 지점내 모습. 한국의 '신세계 강남점', 혹은 '롯데 잠실점' 정도의 위상을 가진 지점이다. 코로나 이후 관광객 감소로 명품 판매가 주춤했지만, 재도약을 위해 현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벌이고 있다. 입점된 브랜드가 다양하고, 매장도 널찍한 편에 속해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사진=최지윤
엘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 카스테야나(마드리드) 지점내 모습. 한국의 '신세계 강남점', 혹은 '롯데 잠실점' 정도의 위상을 가진 지점이다. 코로나 이후 관광객 감소로 명품 판매가 주춤했지만, 재도약을 위해 현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벌이고 있다. 입점된 브랜드가 다양하고, 매장도 널찍한 편에 속해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사진=최지윤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문 동안 본 조국의 모습은 많이 변해있었다.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 시스템이 상용화되고, 공공장소에서는 서로 접촉을 조심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긴 것 같았다. 가장 눈에 띈 변화라고 한다면, 현재의 삶에 집중하고 자신의 경험과 행복을 위한 소비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명품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명품 소비가 이루어지는데, 한국에서는 MZ세대가 또다른 ‘큰손’이 되어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과거에 중시되던 내집마련, 결혼과 출산 등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가 되자 한국의 청년들은 자기 자신에게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으며, 명품 소비에 나서고 있는 있는 듯 보였다. 특히 ‘플렉스(flex: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 뽐내다’라는 뜻-편집자주)’와 같이 구매를 과시하고자 하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는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2030세대의 명품 구매가 먼나라 이야기인 곳이다.

요란스런 명품 구매는 아시아인들만

스페인의 EAE 비즈니스 스쿨이 내놓은 2021년 명품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명품 구매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1위는 40~50대, 2위는 30~40대가 차지했다. 30대 미만은 3위에 그쳤다. 실제로 현지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스페인의 엘꼬르떼 잉글레스(El Corte Inglés) 백화점 브랜드는 스페인을 방문하는 관광객, 특히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명품 시장의 주요 고객이라고 밝힌다. 마드리드에 가장 큰 백화점이 있는 카스테야나(Castellana) 지역에서는 2019년 기준으로 아시아 관광객의 소비가 매출의 70%를 차지했다. 그래서 백화점에는 중국인 직원이나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직원이 상시 대기하고 있으며, 안내 방송도 중국어로 나오고 새해에는 중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큰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한다.

여러 백화점 브랜드가 경쟁하며 매출을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과는 반대로 스페인에는 백화점 브랜드가 하나밖에 없다. 사실상 ‘엘꼬르떼 잉글레스’의 독점 체제다 보니, 가격이나 서비스 향상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주는 백화점 상품권, 물건 구매후 쌓는 포인트 제도 또한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97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엘꼬르떼 잉글레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2% 증가한 약 17조 3860억원(125억 8백만 유로)을 기록했다. 한국은 대형백화점 브랜드 전체 매출이 아닌 한 백화점 지점이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곳이 11곳이나 된다. 11개 지점의 매출이 총 15조 2606억원 정도이던데, 스페인의 유일한 백화점 브랜드 1년 매출과 맞먹는 것이다.

엘꼬르떼 잉글레스(Serrano, Madrid) 백화점 사진=엘꼬르떼 홈페이지
엘꼬르떼 잉글레스(Serrano, Madrid) 백화점 사진=엘꼬르떼 홈페이지

직불카드 같은 신용카드...필요성 못느껴

스페인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 물건을 사면 10만 원을 넘지 않는 금액이라도 “할부 어떻게 해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점원으로부터 받는데, 스페인에 거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흔한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다. 스페인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해도 주유, 쇼핑 할인, 호텔, 라운지 이용등의 다양한 혜택이 없다는 것도 한국과 매우 다르다

어떤 조사를 보면 한국인은 2021년 기준 1인당 4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스페인의 신용카드 발급수는 2022년 1분기 기준 3941만장이다. 이는 전년 대비 5.42%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스페인 경제활동인구(퇴직자 포함)를 약 3000만 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1명당 1.3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당장 주변을 봐도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는 현지인이 별로 없다. 왜 스페인 사람들은 신용카드 사용을 선호하지 않을까?

스페인에서는 직장 유무, 월급여액, 주택 융자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는 등 신용카드 발급이 매우 까다롭다. 뿐만 아니라, 무이자 할부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이자를 내더라도 할부 서비스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려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리고 카드의 혜택이 기껏해야 주유, 항공권 마일리지 적립이 전부이기 때문에 굳이 발급받을 이유가 없다.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웬만해선 할부 결제를 하지 않고 직불카드와 차이점을 못느끼기에 전체적인 사용금액도 적은 편이다.

스페인 사람은 대체로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저축해서 구매하자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을 무리해서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진 것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스페인의 검소한 분위기에 적응한 것일까? 필자는 한국에서 신용카드를 자주 사용했지만, 스페인 은행에서는 신용카드를 단 한 번도 발급받지 않았다.

‘실속의 소비’ 추구하는 지혜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스페인의 가계부채비율은 58.4%이라고 한다. 반면 2022년 1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GDP 대비 104%를 기록해 36개국중 유일하게 국내총생산을 넘어섰다고 한다. 경제 전문가들중에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과 같다고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백화점과 쇼핑몰은 멋스럽게 장식된 거대한 쇼윈도에 상품을 진열해 소비자를 자극한다. ‘오픈런’, ‘대기 등록’을 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명품 매장은 입장조차 쉽지 않다. 여러 브랜드는 매년 가격을 인상하고 있지만 ‘오늘이 제일 저렴하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은 쉽게 지갑을 연다고 한다.

각 나라마다 사회 분위기,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개인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어떤 사회와 삶의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결국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것으로부터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고, 실속을 챙기며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스페인에서 소소한 행복과 실속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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