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혈질’ 꿈나무가 테니스 황제 되기까지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테니스 광이 정리하는 ‘위대한 페더러’ 오래 가르쳤던 코치의 죽음에 큰 충격받아 반려자 미르카의 내조로 온화한 성격돼 나달과의 명승부...이어진 우정과 기부

팬들 사이에서 '울보'라고 불리는 페더러(왼쪽)는 코트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 현역으로서 마지막 경기였던 레이버컵 경기에서는 더욱 만감이 교차해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을 터. 나달도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슬퍼했다 사진=lasexta.com
팬들 사이에서 '울보'라고 불리는 페더러(왼쪽)는 코트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 현역으로서 마지막 경기였던 레이버컵 경기에서는 더욱 만감이 교차해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을 터. 나달도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슬퍼했다 사진=lasexta.com

오지않을 것 같은 ‘황제’의 은퇴

테니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로저 페더러는 알고 있다. 그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처럼 테니스의 상징이자 황제로 여겨지는 선수다. ATP 랭킹 237주 연속 1위, 최고령 세계 1위, 남자 단식 그랜드슬램 20회 우승 등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로저 페더러가 최근 레이버컵을 마지막으로 은퇴 의사를 밝혔다. 부상 등 신체적 한계가 이유였다. 페더러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나달, 조코비치를 비롯해 떠오르는 테니스 스타인 치치파스, 베레티니, 루드 등의 선수가 대거 참여했다. 페더러는 나달과 복식으로 경기에 참여했고, 두 선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되어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페더러는 1981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했고, 여덟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페더러의 10대 시절은 경기 흐름에 상관없이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경기에서 패배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라켓을 집어 던지는 등 다혈질 성격을 가진 소년(hothead)이었다고 한다. 17살 때부터 약 2년 동안은 스위스의 스포츠 심리학자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위대한 선수’ 계기가 된 코치의 죽음

페더러의 이런 태도는 성인이 되고 차츰 커리어를 쌓아가며 나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아홉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페더러를 가르쳤던 코치 피터 카터가 2002년 신혼여행 도중 갑자기 사망했는데, 이 사건이 페더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피터는 페더러에게 선수로서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늘 말했지만, 페더러는 이를 잘 따르지 않았다. 코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페더러는 이 일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2019년 호주오픈을 앞두고 가진 CNN 인터뷰에서는 “코치가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나를 일어나게 일깨워주는 일이었고, 정말 열심히 훈련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코치와의 이별 약 1년 후, 2003년에 페더러는 보란 듯이 윔블던에서 우승하며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거머쥐고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완벽한 자세, 날카롭고 우아한 샷을 구사하는 페더러는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을 매료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는 상대편과는 다르게 여유 넘치게 플레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테니스가 쉬운 스포츠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뛰어난 실력과 함께 준수한 외모, 신사적인 태도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페더러의 인기는 치솟았다. 특히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연이어 65연승을 기록할 정도로 잔디 코트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숙명의 라이벌’ 나달과의 명승부

그렇게 페더러의 독주 체제가 계속되나 싶었는데 2004년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서 페더러는 숙명의 라이벌인 라파엘 나달을 만난다. 나달은 페더러보다 다섯 살 어린 열일곱 살의 신예였고,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선수였다. 이미 그랜드슬램 우승 경력이 있던 페더러는 두 세트를 전부 내주며 나달에게 지고 말았다. 나달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테니스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두 선수는 ATP 투어에서 총 40번의 경기를 펼쳤고, 상대 전적은 나달이 24승 16패로 페더러를 앞선다. 페더러는 흙신이라고 불리는 나달에게 밀려 클레이코트인 프랑스 오픈에서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2009년 프랑스 오픈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나달이 4라운드에서 탈락했고, 페더러는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한다.

페더러와 나달은 라이벌 관계였지만, 둘의 우정은 끈끈했다. 지금까지 서로가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모든 경기가 박진감 넘치고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2008년 윔블던 결승, 2009년 호주오픈 결승 경기가 명경기로 회자된다. 네 시간 넘는 혈투 끝에 나달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눈물을 보였던 페더러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깊게 남아 있다. 두 선수는 잦은 부상의 어려움을 딛고 기적적으로 20번 이상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우뚝 섰다. 페더러는 2018년에 36세 10개월의 나이에 역대 최고령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마지막까지 자신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스페인 마나코르에 위치한 나달 아카데미의 개장 행사에 참여한 로저 페더러(오른쪽). 이곳은 테니스 코트는 물론 수영장과 기타 체육 시설이 있어서 전문적으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아카데미다. 올해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카스퍼 루드는 이 아카데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elpais.com
스페인 마나코르에 위치한 나달 아카데미의 개장 행사에 참여한 로저 페더러(오른쪽). 이곳은 테니스 코트는 물론 수영장과 기타 체육 시설이 있어서 전문적으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아카데미다. 올해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카스퍼 루드는 이 아카데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elpais.com

두 선수의 빛나는 우정은 코트 밖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 나달이 고향 마나코르에 나달 아카데미를 열 때 페더러는 축하하러 그곳을 방문했다. 페더러는 “나중에 자녀들이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 하면 여기로 보내겠다”고 말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020년에는 페더러 재단에서 주최한 테니스 경기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아프리카 어린이의 교육 프로젝트를 위한 자선 경기였는데 나달은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 화제가 되었다. 오랜 시간 나달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페더러는 스페인 내에서도 인기가 정말 많다.

평생의 반려자 미르카...조용한 내조

페더러는 나달이라는 좋은 라이벌이 있었다면, 그의 곁에는 도전을 늘 응원해 주는 평생의 반려자인 미르카가 있었다.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으며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자리잡는 데는 부인 미르카의 내조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페더러는 언제나 아내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여정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르카는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 가족과 스위스로 이주했다. 테니스 선수로 WTA 100위권 내에 들기도 했지만, 발 부상으로 인해 2002년 조기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에는 페더러가 투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녀 역시 테니스 선수였기 때문에 선수로서의 고충을 잘 이해했을 것이고,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복식 경기에서 페더러는 4살 연상이었던 미르카에게 사랑에 빠진다. 페더러는 끈질기게 구애했고, 올림픽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는 두 사람이 키스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미르카는 아랍 왕자와 약혼한 상태였지만 페더러는 그 사실을 몰랐다. 미르카는 연하인 페더러가 너무 어리게 느껴졌지만 결국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을 받아들이고, 약혼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2009년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딸 쌍둥이, 아들 쌍둥이로 겹쌍둥이 자녀를 두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2017년 윔블던 결승전에서는 관중석에 앉은 네 명의 자녀를 보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페더러의 모습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전성기가 지났어도 페더러의 경기는 여전하 우아했다. '황제'라는 칭호가 그에게만 붙여진 이유다.
전성기가 지났어도 페더러의 경기는 여전하 우아했다. ‘황제’라는 칭호가 그에게만 붙여진 이유다.

얼마나 벌었을까...사회 기부도 적극

오랜 시간 테니스의 황제로 군림한 페더러는 17년 연속 테니스 선수 연수입 1위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연수입 1억630만 달러(약 1519억원)를 기록하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르브론 제임스 등을 제쳤다. 1990년대 이후 테니스 선수로서는 첫 1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많은 돈을 벌어들인 페더러는 기부 스케일도 남달랐다. 2003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로저 페더러 재단을 설립해 스위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페더러 모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고, 페더러 역시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당시, 로저 페더러 재단은 아프리카의 불우한 가족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고국인 스위스의 취약 가정을 위해서도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를 돕기 위해 5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은퇴 후에도 사회를 위한 페더러의 자선 사업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페더러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며, 이 완벽한 여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자기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치열하고 외로운 경쟁의 세계에서 GOAT(Greatest Of All Time)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테니스의 매력을 보여준 로저 페더러.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페더러의 은퇴가 다가오고야 말았다. 여자 선수로서 오랜 시간 승승장구했던 세레나 윌리엄스 역시 지난 8월 US오픈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테니스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테니스 전설들의 경기를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허전해진다. 최연소 US오픈 우승을 거머쥔 스페인의 알카라스를 비롯해 새로운 선수들이 이제 그 뒤를 이으려 하고 있다. 테니스의 세대 교체로 새로운 흐름이 물론 기대되지만, 아직은 나달과 조코비치, 앤디 머레이 같은 선수들이 멋진 경기를 더 보여줬으면 하는 게 테니스 팬으로서의 작은 바람이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