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북한 젊은이들이 떼창한다는데?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군대가는 한반도 젊은이들의 애환과 고통 왜 ‘이등병의 편지’를 빠르게 떼창할까 북한 군입대 문화, 남한과 다른점 있어 젊은이들 고통의 온전한 해결은 ‘평화’
빡빡머리 아들과 성묘길에 들은 노래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필자의 막내 아이가 빡빡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드디어 가는구나...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는 의미에서 군대가는 아들과 아버님 산소로 성묘를 갔다. 이동하는 자동차의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뒷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들에게 북한의 젊은이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군대 간다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상 교류도 없고 단절된 두 문화권에서 사는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똑같이 이 노래를 부른다? 누가 억지로 보급시키려 해도 안될텐데, 발이 없는 노래가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넘어서 북녘 젊은이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다니... ‘이 노래, 참 힘이 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등병의 편지’와 공동경비구역 JSA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작곡·작사자 김현성은 1986년 군대 가는 친구를 서울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썼다고 한다. 집을 떠나서 훈련소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면서 가족, 친구들과 이별하는 풍경은 가장 전형적인 군입대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김현성 뿐 아니라 윤도현, 전인권도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으나, 우리 기억엔 1992년 ‘다시부르기’ 앨범에서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만 남아있다. 김광석은 큰형이 군대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6개월만 군복무하고 이등병으로 제대했다. 그래서 이등병 출신인 본인이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이등병의 편지’는 2000년 청룡영화제 최우수상을 받고 2001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공동경비구역 JSA’에 의해 다시 한번 인기 가요가 되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DMZ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미스테리 기법으로 그려냈다. 특히 주제곡인 ‘이등병의 편지’를 바탕으로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과 애환을 애잔하게 표현해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은 서태지의 노래를 넣기로 된 원래 시나리오를 바꿔 ‘이등병의 편지’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589만 관객을 동원하며 1999년 영화 ‘쉬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이 영화로 흥행 감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완벽에 가까운 평양 말씨로 실감나게 연기한 송강호 배우도 온전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결과적으로 노래 ‘이등병의 편지’ 그리고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이 영화에서 만나 함께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야, 야! 광석이를 위해서 딱 한 잔만 하자우.” 조선인민군 중사 오경필(송강호 분)의 이 대사는 남북한의 병사들이 서로 반대 진영에 서 있지만, ‘이등병의 편지’에는 함께 그리고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 젊은이들은 좀 다르게 부른다?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북한 젊은이들이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남한 젊은이들보다 복무 기간이 5배 이상 길고, 남한보다 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군대가는 북한의 남녀 청년들. 그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나 친구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애절할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북한 젊은이들은 느리고 슬픈 분위기의 독창이 아니라, 빠른 템포의 떼창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북한에서 군대를 갔다 온 몇 분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았다. 두 가지 정도로 군대 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첫째는 군대 복무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의 차이다. 남한도 70년대, 80년대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듯이, 북한에서는 군대 가는 것을 ‘조국을 위한 도리’ 또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구실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
군입대 대상자를 모은다는 용어에서부터 강제적인 느낌을 주는 ‘징집(徵集)’ 대신에 초대하여 모은다는 느낌의 ‘초모(招募)’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 ‘초모환송회’를 시끌벅적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때 눈물을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많지 않다고 한다.
둘째는 군복무에 따른 사회적 혜택이 분명하다. 우리가 보기에 기나긴 복무기간이지만, 이를 마치고 나오면 대학 진학이나 직장 배치 등에서 사회적 배려가 있다. 나아가 군복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면 조선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다. 즉 당원이 되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젊은이들의 희생, 그 뿌리는 분단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는지♬
누구의 의도와도 관계없이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수십년 동안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각각 불러왔다. 이것은 이 노래가 다른 어떤 노래보다 군대에 가는 남과 북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바탕에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집과 고향마을을 떠난다는 점,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물론 친구들과도 오랫동안 헤어진다는 점, 군인으로서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과제와 역할에 대한 두려움 등이 깔려있을 것이다. ‘이등병의 편지’는 남한과 북한,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공통으로 짊어지고 있는 희생과 고통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해방이후 70년 이상 계속되어 온 한반도 젊은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노래와 춤으로 한국 문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BTS 멤버 조차 예외이기 어려운 의무적 군사복무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올해초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군복무 기간의 단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최근에는 병사들의 복지 관련 정부 예산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1년의 신생아 수는 55만 9934명이었으나 인구감소로 인해 2020년에는 26만 500명 즉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2020년 신생아들이 군대를 가는 20년 뒤에는 현재의 병력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문제는 ‘평화’라구, 바보야!(It’s the PEACE, stupid!)”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한반도 청년들이 70년 이상 겪어 온 군대생활의 고통을 원천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모병제를 논의하면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가게 된다는 계층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여성의 군복무와 관련해서는 젠더 갈등이 더 커질지 모른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상처에 약만 바르는 대증요법(對症療法)에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평화’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앞당겨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과 고통에는 분단과 전쟁위험, 그것도 같은 민족끼리의 대립과 갈등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고통을 온전하게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전쟁 위험을 낮추고 화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대립과 갈등의 벽을 허물어 가야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해법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를 갈망하는 한반도 젊은이의 노래이기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언젠가 ‘이등병의 편지’가 과거의 분단 고통을 기억하고, 한반도 젊은이들의 애환과 희생을 위로하는 평화의 노래로 불러지기를 소망해 본다. 군 복무의 고통에서 벗어난 남과 북의 청년들이 함께 손을 잡고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을 그려 본다.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로 지금도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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